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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25~27 남편들아! 2013. 12. 29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013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지막이 있다는 사실이 좋은 사람은 지금 고통 중에 있는 분일 겁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마지막이 오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과 끝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끝을 모르는 자는 지혜가 없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텔레비전에서 축구중계를 보는데 그것이 재방송인줄 모르면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방송을 본 사람은 그 경기의 결론을 알고 있기에 별 재미가 없습니다.


이사야 46:10절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처음부터 하나님은 종말을 알려주셨습니다. 이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마당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이 이루어지면 이 역사라는 시간과 공간은 폐기처분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들은 불에 타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무엇만 남겠습니까? 우리가 소중하다고 목숨처럼 여기는 것들이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만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시는 뜻만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봅니다.


지난주에 아내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아내 되시는 분들이 지난 한 주간 동안 남편을 주께 복종하듯이 복종하셨습니까?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고 한 것이 아내의 단장이라고 한 말씀대로 아내들이 머리를 꾸미고 패물로 장식하는 단장이 아닌 남편에게 복종하는 그 단장을 잘 하셨습니까? 이 말씀을 듣고 남편들이 기분좋아하였다면 말씀을 잘 못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이기에 남편들도 그리스도의 아내이기에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여야 마땅합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25절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남편들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는 것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종종 결혼의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의 관계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사랑을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이사야 54:4~8절입니다.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바로 앞의 말씀을 보시면 잉태하지 못한 여인과 홀로된 여인에게 노래하라고 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잉태하지 못하면 결혼한 여인의 가장 큰 수치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여인에게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어 주신다고 하십니다.


6~8절입니다.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 함으로 인하여 잠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버림받은 아내처럼 되었지만 영원한 자비로 긍휼히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호세아 2:14~20절입니다. “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19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실 때에 아내로 불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서 그들이 짓지 않은 집도 주셨고 그들이 심지 않은 과일나무도 주셨습니다. 남편 되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남편 되신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풍요와 다산을 준다는 우상 바알을 섬긴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결국 바알의 이름을 제거하시고 다시 자기 아내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영원히 함께 사시는데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들므로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알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 31:31~33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새 언약도 결혼의 관계로 말씀합니다. 옛 언약은 법으로 맺어진 부부관계입니다. 그런데 아내 된 이스라엘이 연약하여 아내의 임무를 다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면 왜 법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부부관계는 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유지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법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법 이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일방적은 은혜의 언약으로 불러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법을 주신 것은 어느 인간도 자신의 행함으로 법으로는 하나님의 아내 될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시고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만 자기의 아내를 맞이하시는 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


다시 본문 25절을 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아내가 된 이스라엘의 반역과 배신이 얼마나 엄청난지 구약 전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아내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자기 자신을 주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남편들이 이러한 사랑으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갑자기 남편들이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이런 말씀으로 인하여 남편만이 아니라 아내들도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알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22:19~20절입니다. “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자신의 몸과 자신의 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이란 예수님의 피로 세운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백성, 자기 신부로 삼으시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세운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은 죽기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어떻게 말합니까? 아내가 자신에게 적용해야 할 말씀은 싹 빼버리고 남편에게 죽도록 사랑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남편에게 복종하겠다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네가 먼저 복종하면 내가 너를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합니다. 둘 다 잘못 적용하였습니다. 아내는 아내에게 주신 말씀에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남편은 남편에게 주신 말씀만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재판관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2절입니다. “11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우리가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으면 항상 이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부부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전부 재판장으로 눈을 부라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으로 싸움만 합니다.


로마서 5:8~11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자기의 신부가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 되어 있었고 우리가 원수 되어 있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이미 창세전에 언약하신 그 사랑을 가지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죄인과 원수들에게 이런 저런 조건을 충족시키면 사랑하여 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완성된 그 사랑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 완성된 사랑의 확증이 십자가입니다. 그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허물과 죄로 죽어 원수가 된 자들을 자기의 신부로 맞이합니다.


에스겔 16잘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태어나면서부터 버림받은 여자아이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도 가끔 화장실 휴지통이나 길가에 버려진 갓난아기 이야기가 뉴스로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이렇게 태어난 아이처럼 들판에 버려졌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고 물로 씻고 소금으로 정결하게 하여 강보에 싸야하는데 이 모든 것을 하나도 하지 않고 버려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버려진 계집아이를 불쌍히 여기셔서 살리시고 가장 아름답게 키우셨는데 이들이 한 짓은 온갖 음행이었습니다. 창기는 몸값이라도 받고 몸을 팔지만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남자들은 돈을 주고 싸서 음행을 합니다. 이것이 남편 되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힘을 위하여 바벨론과 애굽을 의지하는 모습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구원하십니다.


에스겔 16:60~63절입니다. “60 그러나 내가 너의 어렸을 때에 너와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너와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라 61 네가 네 형과 아우를 접대할 때에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네게 딸로 주려니와 네 언약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62 내가 네게 내 언약을 세워 내가 여호와인 줄 네가 알게 하리니 63 이는 내가 네 모든 행한 일을 용서한 후에 네가 기억하고 놀라고 부끄러워서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기 언약으로 구원하십니다. 구원 받은 자의 특징은 입을 열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다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죽도록 사랑하고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도 남편과 아내에게도 교인에게도 목사에게도 너무 할 말이 많습니다.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기는 한 것입니까?


본문 26~27절입니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에스겔 16장과 같은 자들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자기의 신부로 삼으시고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셔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십니다.


에스겔 36:23~26절입니다. “23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아내로 삼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늘 애굽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약속의 땅에서도 끊임없이 우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스겔 16장의 버려진 계집아이를 공주로 왕비로 키웠더니 하는 짓이 음행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심판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시고서 다시 돌이키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짓이라고는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일 뿐입니다. 이 땅의 교회의 현실과 마찬가지입니다. 지난주에 어떤 분과 이야기를 하였는데 부인이 남편에게 교회를 가자고 하니 남편이 하는 말이 그런 교회라면 가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교회가 전도를 막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교회가 된 것은 바로 우리들의 탐심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고 다 불러내시는데 자신의 거룩한 신부로 불러내십니다. 그 모습이 예레미야 31장과 에스겔 36장의 새 언약입니다. 맑을 물을 뿌려서 온갖 더러운 것에서 정결하게 하고 새 영을 그 마음에 두어 새 마음이 되게 하십니다. 새 마음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전에는 마음이 돌과 같이 딱딱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부드러운 살과 같은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능력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의 죄와 비참함을 알게 되기에 십자가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만이 사랑의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본문 26~27절을 봅니다.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이 두 절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이사야, 호세아, 예레미야, 에스겔서를 보았습니다. 교회의 남편이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를 위하여 어떤 사랑을 하셨는지를 알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피로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씻고 깨끗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는 것입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도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십니다.


디도서 2:12~14절입니다.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남편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죽기 까지 사랑하셔서 자신을 주신 것은 재림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세상에서 통용되는 정욕적인 사랑으로 합리화 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복종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정욕을 위하여 복종과 사랑을 말하는 것도 또 다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처럼 부부가 살아간다면 그들은 반드시 주의 재림의 날을 사모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