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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5:25~27 영광스러운 교회 2014. 1. 5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014년 첫 주일입니다. 이런 날은 새해의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면서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우리가 잘 되는 길이며 교회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1월 1일 수요일 저녁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인간들이 하는 일이란 것이 해아래서 새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들이 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헛되지 않는 일이란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시는 일들만이 헛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 헛되지 아니한 일들이 오늘 말씀에서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영광스러운 교회! 어떤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수천억의 돈을 들여서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을 지으면 그것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부동산 건물을 교회라고 하는 것도 엉터리이지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하는 정신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고신대 이상규교수가 경남기독신문에서 개혁에 관한 글을 기고하였습니다. 아직도 한국교회의 신학적인 미숙함으로 인하여 성전, 제단, 제물 등과 같은 용어를 분별없이 사용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용어들은 구약의 성전과 제사가 있을 때에 사용하던 것들인데 아직도 제사가 있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면 가톨릭의 사제주의에서 개혁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것은 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제사를 완성하신 그 십자가를 무효화 시키는 일입니다.


그러면 영광스러운 교회가 어떤 것입니까? 우리는 교회당 건물을 가지지 않고 헌금의 절반은 전도와 봉사를 위하여 사용하고 모든 교회의 재정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아니면 정의사회구현을 외치며 사회문제를 고쳐내고 가난한 이웃과 소외받는 자들을 돌보며 그들의 복지에 앞장서면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오늘날 교회들이 세상의 영광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비판하며 이러한 방향으로 나가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을 함으로 우리 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다르다는 차별성으로 특화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들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영광스러운 교회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7:38절에 보시면 스데반 집사가 성령에 충만하여 설교하는 내용 중에 광야 교회라는 말을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 하여 나왔습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도 교회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별하여 나온 사람들을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구약의 교회가 어떠한지를 보아야 합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남은 구약의 교회가 애굽이라는 세상을 빠져나와 홍해를 건넜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이 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0:2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도 교회란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어린 양의 피의 능력 안에 거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출애굽기 15:13~18절입니다. “13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14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15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교회입니까? 주께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는데 주의 힘으로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사람의 손길이 들어간 것이 없습니다. 이 소식으로 인하여 주변의 싸움 잘하는 영웅들이 떨림에 사로잡히고 낙담을 하게 됩니다. 주의 팔의 권능이 두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구속하신 백성을 약속의 땅에 심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삼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처소가 성전입니다. 이런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건물이 아니라 성도를 말합니다. 이것이 구약의 교회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힙니다. 건물로 된 성전을 더럽히는 것만이 아니라 온갖 죄악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더러워지는 것입니다.


이사야 59:4~8절입니다. “4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실하게 판결하는 자도 없으며 허망한 것을 의뢰하며 거짓을 말하며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으며 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6 그 짠 것으로는 옷을 이룰 수 없을 것이요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을 것이며 그 행위는 죄악의 행위라 그 손에는 포악한 행동이 있으며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 그 생각은 악한 생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있으며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신부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의 실상입니다.


이사야 64:6~7절입니다. “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악행을 잉태하여 죄악을 낳고, 독사의 알을 품어 독사나 나오고, 거미줄로 옷을 짜서 만든 것들이 어떻게 자신을 가릴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더러운 옷을 입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신부인 교회로 세워질 수가 있겠습니까?


이사야 61:1~4, 10절입니다.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구원의 옷과 공의의 겉옷을 입혀주신다고 합니다.


누가복음 4:16~2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랬을 때에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엘리야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사렙다 지역의 과부에게 엘리야가 보냄을 받았다는 말씀과 엘리사 시대 때에 이스라엘의 수많은 나환자가 있었지만 수리아 사람 나아만만 고침을 받았다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기들은 버림받고 이방인이 구원받았다는 소식에 분노한 것입니다. 이들이 결국은 예수님을 죽이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십자가로 걸어가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신부를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9:30~35절입니다.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31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32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33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35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십자가에서 무엇을 다 이룬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어내셨습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자기 백성이 곧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된 교회를 위하여 벌거벗겨 졌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속옷 까지 다 벗겨지심으로 자기 신부의 벌거벗음을 가려주셨습니다. 창세기에서 아담의 그 옆구리에서 신부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의 창에 옆구리를 찔리심으로 피와 물을 쏟으셨습니다. 그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십니다(요1서 1:7). 그 물은 올리어지신 분에 의하여 주어지는 성령과 영생의 상징입니다(요7:38,39. 4:14).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기 신부를 완벽하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30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화롭게까지 된 그리스도의 신부를 누가 더럽다고 정죄하겠습니까? 그 어떤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1:3~6절입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 말씀은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계성에서 아들보다 더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표현은 신부에게 더 적절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 목자와 양, 너희는 내 백성 나는 너희의 하나님, 신랑과 신부로 말하지만 결국은 아무 흠이 없는 영광스러움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9:7~8절입니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나아갈 신부들이 무슨 옷을 입고 있습니까? 스스로 만들어낸 옷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구약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만이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이며 이 거룩한 의의 옷이 성도의 옳은 행실이 됩니다. 이 영광스러운 교회, 영광스러운 신부가 된 자들은 예수님의 보혈만 덧입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