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다운받기] 

에베소서 5:30~33 그러나 너희도 2014. 1. 19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의 자기 영광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영광이란 바로 그 아들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곧 아버지의 영광입니다. 그래서 천지만물의 모든 것들, 보이는 것이나 보지지 않는 것이나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간에 모든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골1:16).


그러므로 남녀의 결혼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것을 나를 위하여 행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성경에서 보면 선악과의 유혹을 받을 때에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의 모든 후손들은 자기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모든 일을 자기를 위하여 하게 되었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기를 위하여 합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자기를 위하여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어떻게 흘러오게 되었는지를 우리의 역사를 통하여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우리가 태어난 환경을 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자연적인 환경도 있지만 그런 환경보다 종교적이 삶의 자리들이 어떠한지를 대략적으로 보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릇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그릇 안에 우리의 조상으로부터 물려온 정신들이 함께 담겨집니다. 삼국시대이전의 종교적인 내용은 무속종교입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나 다 있는 것입니다. 자연의 위력 앞에 연약한 인간이기에 무당의 힘을 빌어서 자연의 힘과 그 자연을 움직이는 어떤 신적인 대상을 향하여 제사를 드림으로 자신의 안녕을 구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우리의 조상들의 마음에 가득 담겨 우리의 살과 뼈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무속신앙은 부족국가 정도에서 통용됩니다. 국가로 발전하면 좀 더 고등한 종교가 도입되어야 하는데 그 때가 삼국시대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앞서거니 뒤서기니 하면서 불교를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불교가 들어오지만 그 불교란 무속종교의 바탕위에 들어오게 됨으로 한국의 불교는 무속의 영향으로 변질됩니다. 불교가 타락하여 권력과 야합하게 되고 자기부인을 통하여 해탈을 해야 할 종교가 권력을 가지게 됨으로 민중들에게 배척을 받습니다. 그 즈음에 유교를 도입합니다. 유교는 종교가 아님에도 무속종교와 불교적인 영향들이 깔려지게 됩니다. 이러한 바탕에서 근대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들어오게 됩니다. 역시 그 바탕은 무속적인 것과 불교와 유교들이 혼합이 되어있는 환경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태어난 우리들의 삶의 근본도 결국 자기중심입니다.


자기중심의 일들 중에 큰일들을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라고 합니다. 그래서 관혼상제(冠婚喪祭)를 대사로 여깁니다. 관은 성인식입니다. 옛날에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과 상례와 제사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이렇게 교회라고 모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인륜지대사는 무엇입니까?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그 정신들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무속적이고 불교적이고 유교적인 것들이 다 혼합되어 있습니다. 그 혼합된 내용들은 결국 이 세상에서 얼마나 보암직한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관혼상제와 같은 인륜지 대사를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결혼도 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를 장사지내고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자를 향하여 죽은 자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마8:22). 세상에서 죽은 자나 살아있다고 하는 자나 간에 다 죽은 자로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이며 진리며 생명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그 안에 없으면 그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이 아무리 멋들어진 관혼상제를 하여도 그것은 죽음의 행렬입니다. 바울사도는 때가 단축하여졌기에 오히려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잘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7:8).


이러한 말씀들이 명명백백하게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환경은 관혼상제를 중요하게 여기며 남의 이목을 중요하게 여기는 체면문화가 팽배합니다. 그래서 목사가 성경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하는데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에서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런 문화적인 현상으로 하나님께 영공을 돌리자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원하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과 세상의 영광이라는 것들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로 포장하여 상품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 잘한다고 하는 유명한 젊은 목사의 설교 속에 신앙의 명문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신앙의 명문가인지 예를 드는데 어느 집안의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목회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보통의 장로와 권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가지고 많은 수익을 내며 세상 사람들도 부러워할만한 그런 가문을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목회자와 선교사도 개척 교회를 하며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성공적인 목회와 선교를 하는 그런 집안을 신앙의 명문가라고 합니다. 아주 매력 있는 상품을 개발하여 내놓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그 목사가 말하는 여러 가지 헌신과 충성과 봉사를 기꺼이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고 있는 현실입니다.


저는 텔레비전에서 성공시대를 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옛날에는 성공시대인데 요즈음은 글로벌 성공시대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들을 보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일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하면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명문기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집안은 역시 명문가가 됩니다. 그런데 그런 세상의 성공을 패러디해서 신앙의 명문가가 되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설교를 호객행위를 위하여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여 내어놓은 것이라고 봅니다. 만약 그런 것이 신앙의 명문가라면 성경이 어떻게 되는지 성경의 주인공인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을 보겠습니다.


모든 성경이 증거 하는(요5:39) 예수님께서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었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구유에 태어나시고 자라나시기를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그는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습니다. 많은 질고를 겪으셨습니다. 그래서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싫어버린 바 된 분입니다. 얼마나 싫었든지 십자가에 메달아 죽여 버렸습니다. 그 저주 받아 죽은 예수님이 신앙의 명문가 입니까? 이 예수님을 증거 한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울사도는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고, 세 번 태장을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을 하고, 한번 파선에서는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고 온갖 고난을 당하여 만물의 찌꺼기 같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런 성경의 인물들 말고 오늘 우리의 현실을 봅시다. 여러분들은 신앙의 명문가를 이루었습니까? 남편이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아내가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우리의 자녀들이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까? 부모가 예수님을 그렇게 잘 믿더니 자식들도 그렇게 잘 되었다고 하는 그 잘되었다는 기준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나의 남편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존경을 받고 돈을 잘 벌어오면 그런 남편에서 복종하겠다고 하는 아내들이 여러분들이지 않습니까? 반면에 남편들도 아내가 능력 있는 아내가 되어 돈도 잘 벌어올 뿐 아니라 남편에서 복종하는 아내가 된다면 사랑해주겠다는 그런 남편들이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녀들이 짝이라고 데리고 온 자들이 삼대 사대를 이어오는 신앙의 명문가의 자녀가 아니라 예수도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오는 이런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도대체 이 남편이란 살아야하나 말아야하나? 도대체 이 여편네란 살아야 말아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끙끙대며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복음의 소식이 전하여왔습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비밀을 결혼하여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서 적용시켜 보라고 하십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주심같이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씀을 통하여 더욱 절망하게 됩니다. 앞에서 예로 들어 말씀드린 것이 우리의 일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절망이 끝이 아닙니다.


지난주에 본 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사람이란 아담을 말하지만 아담은 모델이고 진짜 남편은 마지막 아담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죽음으로 그 아내와 한 몸을 이루어내십니다. 부모란 그 아버지의 집과 그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버지의 집에서 그 아버지의 말씀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분이 자기 신부와 한 몸이 되기 위하여 창에 허리 상하여 물과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아버지를 떠나오신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마가복음 15:33~38절입니다.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부모를 떠난 결국이 이런 모습입니다. 아버지께 완전히 버림받는 것이 아버지를 떠나서 자기 백성을 자기와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내시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19~22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그 휘장이 그리스도의 육체입니다. 그 육체가 십자가에서 찢어지시고 그 물과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에베소서 2:11~22절입니다. “봉독” 이미 앞에서 본 말씀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그 원수된 것도 그리스도의 피로 한 새 사람을 만들어 내셔서 자기의 처소를 삼으십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만 허물어 내신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도 그리스도로 인하여 한 몸을 만들어 내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아버지 집을 떠나 자기 피로 자기 백성들을 구속하셔서 자기의 처소를 삼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한 몸이 된 교회를 말합니다.


에베소서 5:33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국에서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없는데 왜 우리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십니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남편에게 정말 복종하는 훈련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 보실 때에 내가 얼마나 그리스도에게 복종하지 않는 못된 아내인지 그 실체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만 자기의 신부를 만들어내시는지 알게 되며 이러할 때에 자기 육신의 남편에게도 나 같은 아내 버리지 않고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말이 잠간이라도 나올 것입니다. 또 남편이 아내를 죽기까지 사랑하시려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노력해보면 아내가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사랑과 헌신을 요구하며 다고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에 불가능한 자신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또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럴 때에 이런 못난 남편과 함께 살아주어서 고맙다는 말이 잠간이라도 나올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왜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만들어내시는 지를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그러나 너희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