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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8~9 하늘의 상전 2014. 2. 16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지난주에 종들에 대한 말씀을 보았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의 종이란 노예를 말합니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달려있는 그런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종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육체의 상전을 주께 대하듯이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는 주님은 전지전능하시며 그의 눈은 불꽃 같이 온 세상을 살피시며 그 마음의 모든 생각을 아시는 주님입니다. 우리가 이런 주님을 믿는다면 주님을 눈가림으로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육체의 상전에게 대충 눈가림으로만 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5:6절입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일곱이라면 완전함을 말씀합니다. 완전한 승리의 주님께서 완전한 눈으로 온 세상을 살피시는데 이것을 일곱 영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살피고 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주님을 믿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무엇을 주님 앞에 눈가림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눈가림을 할 수 없듯이 모든 인간관계에서도 눈가림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본 말씀에서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이 그렇게 복종하십니까? 복종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시 않는 것이기에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 아내라고 하지만 그의 행위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평소에 주님께 복종을 하지 않는지 그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동일하게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기를 주심 같이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역시 주께 하듯이 하며, 부모는 자식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며, 종은 상전에게 주께 하듯이 하고 상전도 이와 같이 주님 앞에서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살지 못하는 것은 평소에 우리가 믿는다는 주님이 어떤 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미 앞에서 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야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그 뜻을 알지 못하면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믿음이 없는 자를 봅니다. 성경도 알고 복음도 안다고 하는데 사는 모습은 이 세상에 속한 것만 사랑하며 산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과연 그 안에 있는 것입니까?


지난주의 결론부분인 고린도전서 7:20~22절입니다.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4)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1절의 각주가 자유 할 수 있어도 그대로 지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주안에서는 종이라도 자유자이며 자유자라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세상의 가치관과 다른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십니다. 평생을 종으로 산 것이나 평생을 주인으로 산 것이나 그 외면적인 것으로 하나님은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주님을 믿고 주님 앞에서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8절을 봅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평생을 종으로 살아도 상관이 없는 이유는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종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자로 자신의 상전을 주님을 대하듯이 살았다면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믿음은 물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믿음이 있다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살지 않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모습이기에 주님께서 그 믿음의 사람에게 영원한 그 약속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십니다. 이것은 종이나 자유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종이라고 차별하여 대우하고 주인이라고 더 낫게 대우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9절입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상전들에게 이와 같기 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라는 말씀은 자신의 신분이 종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자신이 자유인이고 주인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을 믿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종의 자리에서 주님 앞에 살아야 하고 주인은 주인의 자리에서 주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전들은 위협을 그치라고 합니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기에 벌을 준다거나 죽인다고 위협할 수가 있기에 그런 위협을 그치라고 합니다.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신다고 합니다. 종들과 자유인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며, 하늘에 계시는 상전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 것인 줄 너희가 안다고 합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면 사람을 외모로 취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평가는 평생을 종으로 살고 말단 직원으로 살았다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여깁니다. 어느 여대생이 남자가 키가 작아도 실패자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혹시 이 여대생이 교회 나가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교회에서 세상의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그런 교육을 받았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습니다. 외모로 보지 않는다는 말씀은 남녀노소 신분의 지위고하 피부색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보실 때는 두 가지 평가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 의인이라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3:8~12절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죄 아래 있는 인간들끼리 차별을 하는 그 자체가 이미 선악과를 따 먹은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선악의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선악의 판단은 자기의 이해관계를 따라 형성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이미 선언하였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여자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변화되는 모습을 말하는데 어느 나이가 되면 잘난 년이나 못난 년이나 차별이 없고, 배운 년이나 못 배운 년이 차별이 없고, 죽은 년이나 산 년이나 차별이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런 말들 속에서도 진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죄와 사망아래 인간은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죄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자기의 외모나 자격이나 조건으로 부름 받아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일방적은 은혜로 부름을 받아 나옵니다. 그런데 그 부름을 받는 자리가 각자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의 종의 자리에서 부름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의 자유인의 자리에서 부름을 받습니다. 둘 다 동일하게 은혜로 부름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시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이냐 그리스도 밖이냐는 구별밖에 없습니다. 세상에서 종과 주인의 차별은 하늘과 땅 같은 차별일지라도 주님께서 그 사람의 외모로 취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서 3:19~22절입니다. “19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뽑으신 것은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율법을 주셔서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인 그 씨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그 의를 헬라인에게나 유대인에게 택한 자들에게 주시기에 차별이 없는 의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3:1~11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구하고 찾는 것이 땅의 것들이지 않습니까? 여기서 교회는 다니지만 그가 생각하고 구하고 기도하고 바라는 것들이 다 땅의 것으로 인생을 마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라면 반드시 위의 것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이렇게 만들어 가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기 이전의 탐욕들을 벗겨 내십니다. 그것을 환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환난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끌려온 것입니다. 그 사랑 안에 들어온 자들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이 안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그 어떤 차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위하여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 부르심의 목적입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로 충만하려면 우리 안의 모든 것들이 다 빠져 나가고 털려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이론과 생각들이 무너집니다. 세상의 가치와 평가들이 무너져 내립니다. 내가 기대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도 원망하게 됩니다. 세상에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시는가? 이런 원망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시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런 세상의 평가로 보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6:8절을 다시 봅니다.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는 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자신이 종으로서 부름을 받고 평생을 종으로 살았다고 할지라고 그 사람이 정말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육체의 상전을 주께 하듯이 그렇게 살았다면 그 사람의 믿음의 보상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보상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그 사람의 행위를 따라 상급의 차등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 믿음이 결국이 무엇인지는 조금 있다가 보기로 하고 종이 믿음으로 살았다면 그 믿음의 보상을 받지만 주인이라고 자유인이라고 해서 자기 마음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는 아무리 칭찬을 받고 성공했다는 말을 들어도 믿음의 살지 않았기에 믿음의 결국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가가 문제가 아니라 과연 믿음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믿음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다면 이 말씀들이 순순히 받아질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종교적인 행위를 따라 상급의 차등을 믿는 사람은 이런 말씀이 싫어질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7~10절입니다. “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우리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생명에게 삼켜지는 것이 세상이 보면 죽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생명에 삼켜지는 것이 사는 길인데 우리는 세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사지백체를 다 땅에 밀착하여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은 성령을 우리에게 주셔서 이것을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은 세상의 눈에 보이는 평가와 가치에 휘둘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됩니다. 선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선입니다. 악이란 믿지 않음이 악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았는지 세상에 보이는 것으로 살았는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골로새서 3:22~24절입니다. “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24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종으로 부름을 받아 믿음으로 산 사람은 상을 받습니다. 그 상이 무엇입니까? 기업입니다. 유산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상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이기에 그 상이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상입니다. 이 상에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종이라도 믿음으로 산 사람은 그 아들을 상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적인 표현이지만 묵시적인 표현을 한다면 그 아들을 선물로 받았기에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3~9절입니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 계속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 세상의 신이 심어놓은 세상의 가치와 평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약속을 따라 살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썩어지고 더럽혀지고 쇠하여지는 세상의 유업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 곧 그 아들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습니다. 어떻게 보호를 받습니까?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당합니다. 그래서 잠깐 근심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 한 7~80 년 환난을 당합니다. 시편 90편을 보시면 사람의 일평생이 하나님의 진노 중에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의 썩어질 것들이 다 털려지고 썩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할 그 아들의 나라로 채우시기 위하여 잠시 환난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하는 잠시의 환난은 장차 나타날 그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에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믿고서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은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