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요한계시록 22:18-21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010. 6. 6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오늘이 6월6일 현충일이지요! 현충일(顯忠日)은 국가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殉國先烈)과 전몰(戰歿)장병들을 추모하며 그 뜻을 드러내는 날입니다. 그리고 오는 6월 25일은 한국전쟁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애국자입니까? 애국자가 아닙니까? 답변이 다양하겠지만 예수님께서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국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선택한 나라이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36-38절입니다. “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37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38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평소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창원시가 통합되는 것이 좋습니까? 더 잘살게 된다면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마산과 진해를 잘살게 해주고 창원은 가난하게 되어 평균되도록 한다면 창원시민들이 다 싫어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확대가 대한민국입니다. 그 속에 내가 있기에 다른 나라는 다 망해도 대한민국은 영원히 발전하기를 원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애국자들 때문에 세상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권정생 씨는 우리들의 하느님이라는 산문집에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 테고/ 대포도 안만들 테고/ 탱크도 안만들 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 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 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당신은 지금 나라가 없는데 무슨 종교가 있느냐고 화를 내실 분도 계실 것입니다만 오늘 말씀 20절로 답변을 합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다시 오시는데 무슨 국가가 있습니까? 무슨 애국이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다 사라질 것인데 그런 나라를 붙들고 있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초대교회의 인사였습니다. 교회란 종말의 현상입니다. 요엘 선지자의 예언대로 모든 육체에 하나님의 영, 성령을 부어주시면 그것이 종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종말의 영인 성령이 임한 성도가 교회이며 이런 교회의 특징은 반드시 종말을 드러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때의 인사가 아람어로 마라나타인 것입니다. 이 말은 편지의 인사말만이 아니라 성찬식 때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성찬식은 모일 때 마다 하였으니 날마다 모였을 때에는 날마다 행한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의 성령이 임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44-45절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사도행전 4:32절입니다. “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이것이 종말의 영이 충만하게 임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8장의 연보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부요한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가난한 우리가 부요하게 되었듯이 평균케 하는 일이 연보입니다. 이것이 종말의 영이 임한 모습입니다. 내일에 대한 염려가 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22절에을 봅니다. “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또는 우리 주께서 임하셨도다 아람어, 마라나타)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소망하는 사람만이 종말의 성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다르게 번역하면 우리 주께서 임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의 영이 임한 자만이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라나타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어야 합니다. 이런 자는 반드시 주님을 사랑하게 되어 있기에 주를 사랑하지 않으면 저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종말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구하는 것이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아들의 나라입니다. 골로새서 1:13-14절입니다.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 아들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속죄함을 입고 들어온 나라가 아들의 나라인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아들의 나라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6월 달의 설교를 들어보면 국가 보훈청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가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간다고 하는 해병전우회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지고 가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대한민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나라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이 성경 전체를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끝나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국가라는 짐승과 종교라는 짐승이 다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이라는 바벨론이 어떻게 멸망당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국가와 종교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어떻게 핍박하고 죽이는 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저의 설교도 국가에 충성하는 사람이 들으면 화가 나서 듣지 못할 것입니다. 대구에서 어느 목사가 설교를 하면서 보수도 진보도 다 잘못되었다고 하였을 때에 한 사람이 설교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 한나라당도 잘 못 된 것이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어느 교회는 전라도와 경상도로 편이 나눠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습니다. 나를 진리의 기준으로 여기고 있으니 늘 가감하는 것이 본성입니다.

 

본문 18-19절을 봅니다. 이 두루마리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을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두루마리의 말씀이란 요한계시록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가 무엇을 증거 하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보태거나 빼거나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39-44절입니다. “봉독” 39절에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이 예수님께 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속에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사랑 안하면 자기 사랑만 가득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예수님을 불러도 자기를 사랑하기 위한 것이며 자기의 영광을 취하는 것입니다. 서로 영광을 취하고 있기에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4:44-48절입니다.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서 예수님을 증거 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7:30-31절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증거 한 내용, 즉 성경이 증거 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온 세상을 심판할 근거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이 기준입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입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 다는 말씀과 계시록 22:18-19절의 말씀과 같은 맥락인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이나 이 예언의 말씀에 더하거나 빼면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린다는 것이 같은 의미의 저주입니다. 22:14절을 봅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이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루마기란 죄인을 의롭다고 하여주신 예수님의 피로 만든 의의 세마포입니다. 그러므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다른 복음을 전하고 믿어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처럼 두루마기를 자기의 행위로 더럽혀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십니다. 요한 계시록은 성경의 마무리입니다. 이 세상의 끝을 이미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이 다 불살라 없어지는 것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기에 세상에서 택함을 입었기에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고 있는 성도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너무나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한은 무엇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입니까? 21절입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 지어다. 아멘. 이것으로 끝을 냅니다. 여러분들이 정말로 이 어둠의 세상에서 뽑혀 나와서 하나님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에 들어오게 되었다면 더 이상 세상에 미련을 둘 수가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런 자들은 환난조차도 은혜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환난을 통하여 세상에서 뽑아내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26-29절을 봅니다. “봉독”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심판을 당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면 어떻게 심판을 면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를 입은 자들은 흔들리는 것을 붙들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2:25-29절을 봅니다. “봉독” 흔들릴 것들은 흔들어 버림으로 흔들리지 아니할 하나님의 은혜만 남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최종적인 인사는 이렇습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