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교회전기 과부하로 갑자기 정전되어 설교가 나뉘었습니다 연결되는 중간에10분정도는 녹화를 못햇습니다

           이점이해하시고 들으시기바랍니다 

 

[1편]

 

[2편]

 

 [음성 설교1] [음성 설교2]

출애굽기 20:8-11 안식(安息) 2010. 7. 18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곳이라면 교회에서 쉼을 맛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 말씀에서 내 멍에를 매고 내게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똑 같이 짐을 지는 것인데 무슨 쉼이 있느냐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멍에는 쉽고 그 집은 가벼워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 멍에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함께 연합되는 것입니다.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대신 짐을 지시기에 쉼이 있습니다.

 

다른 말로하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인간은 스스로의 짐을 지고 사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짐을 지고 가지만 결국 의에 이르지 못하여 쉼이 없는 것입니다. 율법과 종교적인 의무 외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생활의 모든 규례까지 세세하게 만들어놓은 온갖 법들을 지키지 아니하면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은 이런 법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이런 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키는 사람들도 율법 조항을 지키려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방인들도 각자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갑니다. 이방인의 종교적인 규례도 있고 양심도 있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인양 여기는 이 세상의 풍속을 따라 각자 자기 마음의 욕망이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욕망은 도저히 채워지지를 않는 것입니다. 어떤 욕망을 목표로 하고 열심을 다해 도달하면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다시 죽을 각오로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죽을 때 까지 갑니다. 그러다 죽고 나면 쉼이 있습니까? 밤낮 쉼이 없는 곳이 기다립니다.

 

그러면 왜 인생들이 이렇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거리다가 영원한 안식이 없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의 안식 안에 있기를 싫어한 것입니다. 최초의 안식에 대한 내용이 창세기에서 나옵니다. 천지만물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그 마지막에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창세기 2:1-3절입니다. “봉독”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일곱째 날에 마치셨기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날을 복되게 하셔서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어디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지으신 것입니다. 그 창조 안에서 다스리며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피조물로서 금령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도록 하셨습니다.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뱀의 유혹을 받아 따 먹었습니다. 그 결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고 여자는 해산의 고통이 더하여졌습니다. 그리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됨으로 참된 안식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주십니다. 창세기 3:15절에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이런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하나님께서 안식을 약속하시는데 그 안식이 노아 때에 그림자로 주어집니다. 창세기 5:28-29절입니다.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安慰)하리라고 합니다. 안식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안위하게 됩니까? 노아 방주를 만든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들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세상의 성공을 향하여 달려가는 때에 노아는 방주를 예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종말을 예상하지 않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 좋은 대로 살아가는 이런 모습이 죄악이 관영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쓸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신이라면 어찌 자기가 만든 세상을 쓸어버릴 수 있느냐고 하면서 세상의 심판을 증거 하는 노아를 미친 사람 취급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기가 만든 세상도 죄악이 관영하면 심판을 행하십니다. 창세기 6:5-8절입니다. “봉독” 이런 심판의 말씀에 누가 반대하겠습니까? 오직 인간만이 죄를 짓고 나서 스스로 신이 되어있으니 이러한 하나님의 처사에 화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는 언제 안위를 맛볼까요? 온 세상이 홍수 심판을 당할 때에 안위가 무엇인지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런 홍수 이후에 노아의 후손들이 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중에 셈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라고 하십니다. 하란을 거쳐 가나안까지 왔을 때에 하나님께서 언약을 주십니다. 너의 후손이 4대만이 이곳에 오리라고 하십니다. 그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430년을 하고 출 애굽 합니다. 출애굽하고 약 3개월 만에 시내산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받습니다. 그 계명 중에 오늘은 네 번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8절을 봅니다. 안식일을 기억해야하며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기억해야 하는 것은 창세기 2장에서 보았습니다만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신명기 5:15절입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신명기는 시내산 언약 이후 약 40년이 지나 모압에서 언약을 갱신합니다. 여기서 왜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가 하면 애굽에서 구원받아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기억해야 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행위를 기억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을 인간이 한 일이 없이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창조의 선물입니다. 아담이 눈 뜨고 보니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다스리고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통치에 동참하는 특권과 영광입니다. 범죄이후의 징벌적노동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값없이 받고 있습니다. 햇빛과 비와 무더운 날씨와 장마 비까지 선물로 내려주시고 계십니다.

 

그 뿐 아니라 구원을 기억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서론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셨다는 것입니다. 종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이 당시의 종은 노예입니다. 자기 몸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물질도 모든 것이 주인의 것입니다. 자기를 위한 일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종의 삶에서 구원하여 내신 것입니다. 이제는 6일 동안 자기를 위하여 일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기쁨은 평생 솔거노비로 살던 종이 면천이 되고 자기 땅을 가지고 농사지을 수 있는 기쁨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안식하라고 합니다. 남종도 여종도 짐승조차 안식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자유를 주신 것이 은혜로 왔음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쉼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노동으로 사는 줄 압니다. 그런데 구원받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키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지켰습니다. 일주일 중 하루를 쉬는 일이 돈 버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애굽의 종으로 있을 때는 자기 수익이 없으니 열심히 일해도 자기 것이 되지 않지만 이제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니 자기 소유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미리 경고하였습니다. 신명기 8:11-20절입니다. “봉독”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먹고 배부르며 아름다운 집을 짓고 소떼 양떼가 늘어나면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끌어내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면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런 여호와의 일하심을 잊지 않으려면 일주일 중에 하루는 일하지 않고 안식을 통하여 창조와 구원의 의미를 기억해야합니다. 그러나 미리 경고한 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부유하게 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모스 8:5-6절입니다. “5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6 은으로 힘없는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사며 찌꺼기 밀을 팔자 하는도다” 형식적으로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절기와 안식일의 쉼이 마땅치 않는 것입니다. 하루를 쉼으로 인해 돈을 더 많이 벌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안식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라가 망해야 합니다. 그래서 북 이스라엘이 먼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고 남 유다가 나중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다시 종이 됩니다.

이렇게 포로로 잡혀가지 전에 선지자들이 안식일에 대하여 계속 경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성문 앞에 장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다시 장사하러 안식일에 오면 잡아가두겠다고 하면서 물리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왜 포로로 잡혀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고 율법을 지키는데 그 중에 안식일은 수많은 규례를 붙여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고 율법을 지킨다는 그 사람들이 정작 율법을 완성하고 안식일을 이루기 위하여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27-28절입니다.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안식일 날 밀밭을 지나던 제자들이 배가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에 바리새인들이 보고 있다가 고발한 내용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이 사람의 노동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것임을 안식을 통하여 기억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안식일에 일하십니다.

 

왜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하셔야 하시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이때 왜 안식일에 일하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 친 아버지라고 한다고 하면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켜도 안식이 없고 자비도 없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런 인간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안식을 이루어 낼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켜도 안식이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안식의 의미도 모르면서 안식을 원하였지만 수고와 슬픔과 죽음을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저와 여러분은 참된 안식이 무엇인지 아시고 부분적으로나마 맛을 보고 있습니까? 이사를 하면서 헌집에 들어가니 손 볼 것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을 못한 한 주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만이 아니라 우리의 주변에 일어나는 사소한 일들이 얼마나 우리로 하여금 쉬지 못하게 합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아니한 내일 일들 때문에 염려와 걱정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예비한 처소는 인간이 마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이 손을 볼 필요가 전혀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살과 피로 완벽하게 예비하셨습니다. 구약의 성전이 공간의 거룩함 이라면 안식일은 시간의 거룩함입니다. 이러한 장소와 시간의 거룩함이란 인간이 만들어 낼 수가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죽은 자들은 이미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도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히브리서 4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죽을 때가 다된 사람이 아니라 펄펄 살아있다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맛보기를 소원합니다.

dh.png?md=1258&a=set&msd=&lde=1333&rnd=1279423116140
dh.png?md=&a=set&msd=&lde=-1&rnd=1279423117328
dh.png?md=1258&a=set&msd=&lde=1333&rnd=1279423130375
dh.png?md=&a=set&msd=&lde=-1&rnd=1279423132078
dh.png?md=1258&a=set&msd=&lde=1333&rnd=1279423145578
dh.png?md=&a=set&msd=&lde=-1&rnd=1279423147156
dh.png?md=1258&a=set&msd=&lde=1333&rnd=1279425264281
dh.png?md=&a=set&msd=&lde=-1&rnd=1279425277578
dh.png?md=1258&a=set&msd=&lde=1333&rnd=1279425293859
dh.png?md=&a=set&msd=&lde=-1&rnd=1279425307671
dh.png?md=1258&a=set&msd=&lde=1333&rnd=1279425324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