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14~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2018. 3. 18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 4)생명의 말씀을 5)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지난주에 보았던 12~13절을 다시 봅니다.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한 주간 살면서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습니까? 주님과 조심스럽게 동행하셨습니까?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생명의 말씀을 밝혀입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복음을 듣고 믿는다는 빌립보 교회 안에 다툼이 있고 원망과 시비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관심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엄청난 십자가의 사건에 마음이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주장들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너희가 그 큰 구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책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2:1~3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2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 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복음을 들은 것을 유념하라고 합니다. 그 들은 것을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천사들을 통하여 전하여진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심판을 받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일어난 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자기 뜻을 따라 자기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구원이 일어났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입니다. 이 엄청난 일을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입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 원망이 일어납니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원망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 때에도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는 것은 모두들 자기의 뜻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내 뜻을 주장하고 관철시키기 위하여 시비를 가리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세상만이 아니라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교회란 자기의 뜻과 계획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지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 안에도 자기주장들이 있기에 원망과 시비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원망(怨望)과 시비(是非)가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불만입니다.

 

출애굽기 15:22~24절입니다. “22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열 가지 재앙을 보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받아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바다가 갈라져서 건넜습니다. 추격하던 애굽 군대는 갈라진 바다가 합쳐짐으로 수장 당했습니다. 그 큰 구원을 목격한지 삼일 만에 물이 없다고 원망합니다.

 

출애굽기 16:1~3절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출애굽 한지 두 달 보름이 되어 양식이 떨어지자 또 원망합니다. 이러한 원망은 곧 하나님께 대한 원망입니다(16:8). 그런데 이러한 원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쓴 물을 나뭇가지를 꺾어 넣음으로 달게 하시고, 양식 없다고 원망하는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줍니다. 그런데 이들은 끊임없이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길이 좋지 않다고 원망합니다. 그렇게 원망과 불평을 하면서 광야를 지나서 요단강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12정탐꾼을 보냅니다.

 

민수기 14장을 보면 12정탐꾼의 보고를 듣는 자리에서 백성들의 원망이 일어납니다. 10명은 그 땅이 좋기는 하지만 적들이 강하기에 우리는 메뚜기 같이 보일 것이라고 하면서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은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때 다수의 말을 따라서 우리가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한 지휘관을 세워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때 모세와 아론은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으면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하자 회중이 이들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합니다. 이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며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들을 다 멸할 것이라고 하자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기도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기도를 들으시고 진멸하시지는 않았지만 원망한 그들은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그 인도를 믿지 못하여 원망하는 일이 두려운 일입니다.

 

민수기 21:4~9절을 보면 길과 양식과 물로 인하여 여전히 백성들이 원망할 때에 불 뱀이 나와서 물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높이 달라고 합니다.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나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뱀에 물려서 죽어가는 중에 놋 뱀을 쳐다봄으로 나음을 입는다는 것은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미리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3:14~15절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광야에서 길에 대한 원망, 양식에 대한 원망, 물에 대한 원망, 길을 인도하는 모세에 대한 원망, 이러한 원망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기에 그들이 불 뱀의 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을 받아 죽어가는 중에 장대에 달린 놋 뱀을 쳐다보면 나음을 입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예수님은 자신의 십자가 사건으로 연결하여 말씀합니다. 인자가 십자가에 들려야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할 때에 백성들이 어떻게 합니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하여 주도된 여론 몰이로 인하여 예수를 죽이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이것은 집단 원망입니다. 기대한 메시아사상이 무너지는 그 원망을 쏟아 부을 곳으로 대제사장이 예수를 지목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원망과 죄악을 다 드러내시면서 자신의 길을 가셔서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 죄를 아는 자는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판입니다.

 

요한복음 3:19~21절입니다.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6)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오늘 제목인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과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빛 보다 어둠을 사랑하기에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으로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결과입니다. 빛으로 나아오게 되면 자신이 어떤 어둠에 속한 자였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장이란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아가게 됨으로 더욱 주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4절을 다시 봅니다.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원망과 시비를 한 구약의 사건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까지 연결하여 본 후에 이 말씀을 읽어보니 이 말씀의 무게감을 아시겠습니까? 내가 지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원망을 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바울사도는 원망에 대한 말씀을 고린도서에서 또 합니다.

 

고린도전서 10:9~11절입니다. “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광야의 뱀 이야기와 원망하는 이야기가 구약에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본보기로 기록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한 교회로, 한 몸으로 부름을 받았다고 하지만 온갖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안에도 원망과 시비가 일어날 것입니다. 봉사하면서 일어날 것이고 집에 가다가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에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이는곧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는 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날마다 요란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문제로부터, 개헌의 문제로, 미투 운동으로, G,M 문제로, 지방선거로, 하루라도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세상이 요란한 이유는 모두가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시비를 가려보자는 것입니다. 층간 소음으로, 애완견으로, 운전 중에 앞섰다고 온갖 보복과 살인까지 일어나고 있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손해를 보고 양보를 하면서 원망과 시비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보겠습니까? 참으로 바보처럼 보는 것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런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보복은 보복을 낳을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런 원망들을 자기 몸으로 받아내시면서 어떻게 하신 것입니까?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알지 못하고 행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 성령을 받은 스데반 집사도 자기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처럼 말합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한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오늘 이 서신을 쓴 것입니다.

 

다시 본문 15절을 봅니다. 이 세상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라고 합니다. 이 말은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입니다.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이 된 것은 이미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이렇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선과 악을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둡니다. 그러니 원망과 시비가 끊어질 날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원망과 시비는 세상 사람들보다 더 화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 이유는 자기는 진리편이고 상대방은 비 진리라고 여깁니다. 자신은 예수님 편이고 상대방은 마귀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마귀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 1:4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내용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것입니다. 이 악한 세대란 원망과 시비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입니다. 모두가 자기가 옳다고 자기중심으로 주장하는 세상입니다.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깁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를 인정해주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일어난 자는 이런 세상을 다시 거스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 16절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어둠에 속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1:13절을 보면 구원을 설명하기를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셔서 사랑의 아들을 나라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어두음의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는 것은 어두운 밤중에 횃불을 잡고서 앞으로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힌 다는 것은 복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1:9~10절입니다. “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은 한량없이 은혜로 주어지기에 원망과 시비가 없습니다.

 

이사야 55:1~3절입니다. “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여기서 말씀하시는 양식은 먹고 죽는 썩어질 양식이 아닙니다. 그런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고 수고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가기에 세상이 요란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양식이 아닌 정말 생명을 주는 양식은 돈 없이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살립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인데 이것이 영원한 언약이라고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맺으신 그 영원 전의 언약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을 이루어주십니다.

 

로마서 4:4~8절입니다.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이것이 아브라함과 다윗이 구원 받은 것은 돈 없이 값없이 받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며 한량없이 주어집니다.

 

본문 16절을 다시 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인데 그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6:29).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살과 피가 나의 생명의 양식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을 밝히는 것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궁극적인 자리는 그리스도의 날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이란 재림의 날입니다. 그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한다는 것은 상급차등이나 공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며 달려온 것이 썩을 양식이 아니라 생명의 양식임이 온전히 드러나기에 그것이 자랑스러운 것이 됩니다. 반면에 평생을 썩을 양식을 위하여 원망하고 시비하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무엇이 참된 양식인지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사모하면서 살아가는 자는 세상에 잠시 있다고 사라질 것들이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날에 칭찬과 자랑이 될 것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2:16~17절입니다.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그리스도의 날에 참된 생명의 양식,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납니다. 그 생명의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언약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수는 목마른 자가 값없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할 말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원망과 시비가 나온다면 그것은 다른 것을 추구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과 자기 공로와 자기 의를 드러내기에 원망과 시비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는 것은 예수님이 다윗의 뿌리이며 자손이며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증거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에서 이 새벽별을 드러내는 것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벧후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