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14~21 누룩을 주의하라 2019. 4. 21

 

14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3)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마가복음 8:1~10절에서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무리들을 예수님은 흩어 보내십니다. 성산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504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려면 성인 남자 사천 명이 따르면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떡을 먹고 배불러서 따라오려는 그들을 흩어 보내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 따라오지 못하도록 배를 타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건너가십니다.

 

마가복음 8:10~13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힐난하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예수님을 그들을 향하여 깊이 탄식하시면서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지만 너희에게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보여주신 수많은 표적들은 다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표적으로 양에 차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놀라온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는 그들에게 표적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떠나 다시 배를 타시고 건너갑니다.

 

오늘 본문 14~16절입니다. 제자들이 급하게 배를 타느라 떡을 가져오지 못하여 한 개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자들이 떡을 가져오지 않았기에 예수님께서 떡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끼리 왜 떡을 챙겨오지 않았느냐고 서로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서로 탓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의 속성입니다.

 

17~2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수군거림을 아시고 어찌 떡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고 합니다.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너희의 마음이 둔하냐고 탄식하십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고 하시면서 또 기억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에게 떼어주고 몇 바구니를 거두었느냐고 물으시니 열두 광주리라고 합니다. 떡 일곱 개로 사천 명에게 떼어 주고 몇 광주리를 거두었느냐고 또 물으시기 일곱 광주리고 합니다. 이런 대답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그 누룩을 떡의 누룩으로 생각하고 떡을 가져오지 않았다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본문이 마감이 됩니다.

 

본문 18절을 다시 봅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와 에스겔 선지자가 한 말입니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5:21)” “인자야 네가 반역하는 족속 중에 거주하는 도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아니하나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라(12:2)”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한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선지자의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도 여전히 눈이 있어도 보지 아니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반역하는 족속이라고 합니다. 나라가 망해도 정신을 못 차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완전히 망해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약속한 대로 70년 만에 돌아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서 헬라제국을 지나고 로마 제국 때에 헤롯이 유대 지역의 왕이 됩니다.

 

예수님 태어날 때에 헤롯 왕이 베들레헴의 유아들을 살해한 왕입니다. 이 헤롯이 죽으면서 그 아들들이 여러 지역을 나누어 통치합니다. 헤롯의 아들들 이름은 헤롯 아켈라오, 헤롯 안디바, 헤롯 아그립바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헤롯왕가는 에돔 족속이기에 정통 유대인들의 지지를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을 증축하여 민심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헤롯의 누룩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헤롯의 누룩이란 헤롯의 정치적인 나라를 이스라엘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적인 누룩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의 누룩이란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기들 중심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세리와 죄인들과 이방인들을 자기들과 구별합니다. 자기들처럼 율법을 잘 지키는 자들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생각이 바리새인들의 누룩입니다. 율법의 뜻과 의미를 모르고 그 문자적인 내용과 장로들의 유전과 전통을 따라 율법의 원 뜻과 정 반대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예수님께서 주의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나라의 현실에 비추어 보겠습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정치적인 힘을 추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보수적인 기독교 사상은 정치도 보수적인 정치를 추구합니다. 진보적인 기독교 사상은 진보적인 정치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보수든 진보든 정치적인 힘으로 무엇을 이루어 내려고 하는 것이 헤롯의 누룩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정치적인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인 힘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이 원하는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의 누룩은 무엇입니까?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자들의 자기반성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왜 나라가 망하고 이렇게 약하게 되었느냐는 율법에 비추어 생각해 본 것입니다. 머리가 되지 못하고 꼬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율법의 말씀을 보면서 자기들이 열심히 율법을 지켜서 머리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으라고 주신 것인데 오히려 그 율법으로 자기 의라는 옷을 입어 치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적인 누룩입니다. 그러므로 헤롯의 누룩과 바리새인의 누룩은 둘 다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3:6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어기는지 아닌지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노동하지 말라는 뜻을 모르고 문자대로 일하지 않는 것을 부칙까지 만들어 지키는 자들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을 일한 것이 없이 은혜의 선물로 받는 것이기에 일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자로 지키는 바리새인의 모습이 악을 행하는 것이며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십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헤롯당과 함께 예수를 죽일 의논을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정치적인 노선은 다르지만 목적은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올 메시아를 맞이하여 자기들의 메시아 나라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헤롯당은 현재의 헤롯왕국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노선은 다르지만 이들이 합하는 것은 예수가 공동의 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두 파당이 함께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12:13~14절입니다.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짜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기 위하여 질문하는 것입니다. 종교와 정치가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누룩들을 주의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이 도무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음 주에 볼 내용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고 눈을 뜨게 하여 주시지 않으시면 우리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여도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에 오염되어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표적을 구하고 정치적인 메시아를 구하는 것이 다 이 세상의 누룩입니다. 이런 누룩에 감염되어 교회를 다니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 예수님이 가짜 예수가 됩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따르는 것이 누룩으로 인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6~8절입니다.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 교회는 실제로 음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러 가지 은사가 있다고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면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이러한 음행은 육체적인 음행만이 아니라 오늘 말씀드린 대로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도 다 포함이 됩니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과 고린도 교회의 누룩들은 다 세상에 속한 것들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다 누룩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에 누룩을 내 버리고 무교절은 지킨 것은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께 참여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무교절은 지키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명절은 순전하고 진실한 떡 누룩이 없는 떡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1:23~26절입니다. “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24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1)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말씀을 바울 사도가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최후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는 자이지만 예수님께 계시로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떼어주시면서 이것은 예수님의 몸이라고 합니다. 복음서의 평행구절은 이 떡은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잔은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예수님의 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진실하고 순전한 양식입니다.

 

이것을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이루신 이 복음에 다른 것을 섞으면 안 됩니다. 바리새인의 종교적인 누룩도 섞으면 안 됩니다. 종교적인 표적과 기적이 섞이면 안 됩니다. 헤롯의 누룩인 세상의 힘을 가지는 정치적인 누룩도 섞이면 안 됩니다. 저는 부활절 연합예배에 가지 않습니다. 부목사 때에 한 번 가보고는 다시는 가지 않습니다. 부활절 연합예배에 단체의 기관장들이 와서 축사합니다. 그리고 박수도 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으로 보이기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룩을 섞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6을 다시 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오늘 성찬식을 합니다. 성찬식 때만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날마다 떡을 떼었기에 날마다 주의 죽으심을 기억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모임은 항상 이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만이 우리의 죄가 용서를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바리새파가 원하는 종교적이 표적이 아닙니다. 헤롯당이 원하는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닙니다. 바리새파와 헤롯의 누룩이 섞이지 않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신 그 십자가만이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전해야 할 복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