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4:1~4 보좌와 24장로 2020. 9. 6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지난주에 하늘에 열린 문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나서 어떤 분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목사님은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까?’ 저는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이 믿어지는 사람이라면 하늘의 문이 열린 사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성경의 말씀이 믿어집니까? 제가 믿느냐고 물은 것이 아니라 믿어지느냐고 물었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은 내가 믿으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선물이기 때문에 믿어지느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는 자들은 하늘의 열린 문을 통하여 이루어진 일을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보고 증거 한 내용도 믿어집니다. 이런 자들은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삶의 방향성은 하늘로 향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하늘의 문이 열린 것을 본 몇 사람을 말씀드렸습니다. 야곱과 에스겔과 스데반과 요한입니다. 야곱은 자신을 죽이려는 형을 피하여 도망가는 중에 들판에서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중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는 순간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문들이라는 것이 다 막혔을 때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하늘이 열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하늘에 오르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5~8절입니다.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에베소서 1장에서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으로 일하신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의 일에 자기 백성을 참여시켜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묵시적인 완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늘에 앉혀져 있지만 아직 몸으로 여기에 삽니다.

 

에베소서 4:8~12절입니다.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2)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3)사랑 안에서 4)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하늘에 오르신 분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구약의 성도들은 이미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초림이 메시아 오시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로 다 이루시는 날에 구약의 성도들을 하늘에 앉히시고 신약의 성도들도 하늘에 묵시적으로 앉히신 겁니다. 이것을 성령의 임함으로 알게 된 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게 됩니다. 그 자라게 하는 곳이 이 땅에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세상의 힘과 영광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는 곳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비밀을 알지 못하면 하늘이 열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늘이 열리지 않는 자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영원할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눈에 보이는 하늘도 옷처럼 낡아서 사라진다고 합니다. 하늘이 그렇다면 땅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영원할 것처럼 믿고 살아가는 자들은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날이 심판의 날이 됩니다. 노아 홍수 때는 하늘이 열려서 물로 심판받았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에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하늘로 오르신 그분에 의하여 함께 세상에서 뽑혀 나와서 하늘에 앉혀진 자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최종적으로 하늘이 열리는 날이 찬양의 날이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회개하고 주 예수님을 믿는 일이 하늘이 열리는 일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1절에서 하늘에 열린 문을 보고 이리로 올라오라고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일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신다고 합니다. 마땅히 일어날 일이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일과 그 십자가의 일이 다 증거 되고 나면 주님의 재림의 일까지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곧 성령에 감동이 되어 하늘 보좌를 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이십사 장로를 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석과 무지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좌에 앉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보석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보석과 같더라고 합니다. 보석의 특징은 아름답고 변하지 않고 귀하기에 하나님의 보좌를 보석과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무지개가 보좌에 둘러있습니다. 보좌에 무지개가 둘려져 있는 것은 무지개 언약을 봐야 합니다.

 

창세기 9:12~17절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하늘이 열려서 홍수로 심판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땅이 있을 동안 물로는 심판을 하시지 않겠다는 언약의 표가 무지개입니다. 홍수에서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 홍수 이후에 노아가 정결한 짐승의 피를 흘려 제사를 지냅니다. 그 향기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맺으심으로 물로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노아 홍수를 통하여 온 세상에 심판을 행하신 하나님께서 무지개 언약을 세우신 것은 정결한 짐승의 희생에서 보여주시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안에 머묾만이 심판에서 구원을 받음을 보여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신 희생을 믿지 않음이 심판입니다.

 

에스겔 1:26~28절입니다. “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여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석과 무지개가 말합니다. 노아 때에 심판하신 것처럼 지급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것도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런나 그 심판을 통하여 구원하시기에 무지개로 보여주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하나님의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습니다.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습니다. 이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누구인지에 대하여 천사인지 성도인지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좌에 앉혀진 자들이 누구인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보면 이 내용은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이십사에 대한 내용도 성경을 찾아보면 왜 이십사 장로라고 하는지도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이 말씀은 어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결론부분입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네게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너의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관원은 부자였기에 근심하며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보면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라서 질문합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으니 무엇을 얻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하늘의 열두 보좌에 앉혀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버릴 수가 없었기에 다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보좌에 앉을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다 도망간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과 시편으로 예수님의 일을 증거 하신 후에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이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며 이들이 복음을 전함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합니다. 복음을 믿으면 그 심판을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묵시적으로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 이 역사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을 열둘로 부르신 이유는 구약에서 열두지파와 함께 살펴보아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이 열두 지파가 되고 이들이 한 나라가 됩니다. 그러므로 열둘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입니다. 제사장의 에봇에 보석을 붙이는데 양 어깨에 호마노 보석을 하나씩 붙입니다. 그 보석에 여섯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어깨에 답니다(28:9~12). 에봇 가슴에 붙이는 판결 흉패에는 열두 보석을 붙이는데 각 지파의 이름을 새기게 합니다(28:16~25). 그러면 제사장의 복장에 보석으로 이름을 새긴 것이 어깨에 열두 지파, 가슴에 열두지파 곧 이십사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열두 지파 이름을 한번만 해도 되는데 두 번을 새겨 이십사가 되게 한 것은 구약과 신약의 모든 구원 받는 자들은 대제사장에게 속하여 속죄를 받고 지성소로 감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8:1~13절입니다. “1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구약의 모든 율법과 성막과 제도들은 하늘에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설명용 모형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피로 값 주고 사셔서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겁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예수님의 피로 구속한 자들을 설명합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터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셨고 그 돌에 붙어서 건물이 되어 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이며 이를 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의 신부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3:21절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란 예수님과 영접하여 함께 먹고 마시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이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그들도 아버지의 보좌에 앉히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누가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까? 세리와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를 보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신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십자가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먹고 마시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보좌에 앉는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21:9~27절입니다. “봉독 어린 양의 신부를 거룩한 예루살렘 성이라고 합니다. 어린 양의 신부란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그 성을 설명하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성의 열두 문이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습니다. 여기에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이십사 장로란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대표적인 숫자로 보면 됩니다. 이 숫자가 예수님의 피로 씻어 흰 옷을 입은 크고 허다한 무리가 됩니다. 이런 보좌에 앉혀진 자들은 세상의 영광을 구할 것이 없습니다. 하늘의 차등을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란 신랑과 하나가 되어 신랑의 그 영광을 함께 받아 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열리고 본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