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4:5~6 보좌와 유리 바다 2020. 9. 13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요한계시록 4:1~4절을 두 번에 나누어 말씀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는 중에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리로 올라오라는 음성을 듣고 하늘에 이끌리어 가서 본 내용입니다. 지난주에는 보좌에 계신 이와 24장로에 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오늘은 보좌로부터 나오는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를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곱 영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를 보겠습니다. 보좌 가운데와 주위의 네 생물에 대하여는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이 하늘에서 본 일들은 이미 완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그 이루신 일이 역사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본문 5절입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옵니다. 보좌(寶座)는 왕이 앉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보좌는 권세와 통치권을 의미를 말합니다. 이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하여 성경 전체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출애굽기 19:16절입니다. 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산 앞에서 여호와와 언약체결을 할 때에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시는 모습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현현하실 때에는 빽빽한 구름으로 가리십니다. 하나님을 뵙고 살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시편 18:11~13절입니다. “11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12 그 앞에 광채로 말미암아 빽빽한 구름이 지나며 우박과 숯불이 내리도다 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우렛소리를 내시고 지존하신 이가 음성을 내시며 우박과 숯불을 내리시도다다윗의 시편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다윗은 수많은 여호와의 전쟁을 하면서 여호와의 도움을 입어 승리하였기에 여호와의 광채, 음성, 우렛소리로 여호와의 위엄을 노래합니다.

 

셋째는 히브리서 12:18~21절입니다. “18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19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20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21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출애굽기 19장의 내용을 말합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이른 곳이 얼마나 두려운 곳이었느냐는 말을 하면서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가는 하늘을 이야기합니다.

 

이어지는 22~28절입니다. “22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23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25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26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27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28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2)은혜를 3)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주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에 땅을 흔들었습니다. 다시 임하실 주님은 땅만 아니라 하늘도 흔들어 버리십니다. 땅과 하늘이 다 흔들려 무너지는 일이 두렵습니까? 지금 전 세계가 두려워하는 것은 코로나입니다. 그 중에 가장 많이 코로나로 걱정하고 염려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도라면 이런 사태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집니다. 주님께서 왜 땅만 아니라 하늘도 흔들어버리는 겁니까? 흔들리고 변동되는 것들은 다 무너뜨려 버리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 것만 남기시기 위하여 하늘과 땅을 다 흔들어 버리십니다.

 

땅과 하늘이 다 흔들려 무너지는데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하신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고 영원한 겁니다. 흔들리지 아니할 것 곧 주님께로부터 온 것만 남기시기 위하여 주님 재림 시에 다 흔들어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는 주님의 재림 전에 이 역사 속에서 흔들어 버리십니다. 나의 신앙이라는 것도, 내가 붙들고 있는 것들도 다 무너져 내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교회에서 모여서 행한 수많은 일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로 흔들리고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이럴 때에 무엇이 신앙인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9:1~7절입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사도행전 22:5~9절입니다.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그들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6 가는 중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부터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치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바울사도가 주님을 만난 사건을 두 번이나 간증을 합니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누구에게서 나옵니까? 자신이 다 잡아 죽이려고 하는 자들이 믿는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그 분에게서 나옵니다. 바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자신이 지금까지 살인할 정도로 열심히 믿었던 그 율법과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완전한 전복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고 주와 그리스도가 지금 보좌에 계셔서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전합니다. 보좌로부터 나오는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를 바울은 분명한 음성으로 듣지만 같이 가던 사람들은 우렛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므로 이 역사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기존의 나의 가치관과 삶의 목적이 뒤집어지는 일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건너는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재림 때에 보좌로부터 나오는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를 심판입니다. 이 일이 십자가로 일어났습니다.

 

넷째로 요한계시록 8:5, 11:19, 16:18절입니다.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번개와 음성들과 우렛소리가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얼마나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온 이래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이 세 곳의 말씀은 본문을 볼 때에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일곱 번째 인, 일곱 번째 나팔, 일곱 번째 대접의 재앙으로 우레와 번개와 음성과 지진이 함께 나옵니다. 이러한 재앙은 십자가로 사탄을 이기신 성자와 성령과 성부의 일임을 보여줍니다.

 

본문 5절입니다.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일곱은 완전을 말하기에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성령님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만이 아니라(5:13) 하나님의 영도 함께 계십니다. 그런데 성령님은 보좌에 계시는 분으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어떤 신학자는 겸손하신 영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성령님이 성도 안에 거하신다고 합니다(고전3:16,6:19).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성도의 신분이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하나님의 모든 즐거움이 성도 안에 있다는 말씀을 수요일 저녁에 보았습니다(16:3).

 

본문 6절입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습니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의 네 생물에 대하여는 다음 주에 보도록 하고 오늘은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까지 보겠습니다. 보좌 앞이란 하나님의 발 앞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곳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24:9~11절입니다.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시내산 앞에서 피를 뿌려 언약을 체결한 후에 백성의 대표들이 여호와의 발 앞에서 먹고 마십니다. 그 여호와의 발 앞이 파란 옥을 펴 놓은 것 같고 하늘 같이 청명하다고 합니다. 구약의 하늘의 이미지가 궁창 위의 보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궁창 위를 푸른 바다같이 표현합니다.

 

에스겔 1:22절입니다.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다음 주에 네 생물을 볼 때에 이 본문을 보겠습니다만 네 생물의 머리 위에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하늘 개념이 대기권의 하늘과 해와 별들의 하늘과 그 위의 하늘로 세 하늘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셋째 하늘에 간 이야기를 합니다(고후12:2). 그 셋째 하늘을 묘사할 때에 궁창 위라고 표현을 하는데 그 궁창 위를 마치 푸른 옥이나 맑은 수정과 같기에 유리바다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바다를 성전에서는 어떤 모형으로 만들어 바다라고 합니까?

 

열왕기상 7:23~26절입니다. “23 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4 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25 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26 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

 

솔로몬의 성전에 물두멍 외에 놋으로 만든 큰 물 담는 도구를 바다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궁창 곧 하늘의 바다를 의미하여서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보좌 앞에 유리바다란 피조세계와 하나님의 나라의 엄격한 단절을 보여줍니다. 누가 이곳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누가 그 앞에서 살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본 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들이 여호와의 발 앞에서 먹고 마실 수 있었던 것은 언약의 피로 인한 겁니다. 그 피를 보시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심으로 그 유리 바다 같은 곳 앞에서 먹고 마신 겁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물 담는 도구를 바다라고 한 것은 이런 하늘을 보여주며 동시에 씻음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넙니다. 홍해에서 빠져 죽지 않은 것도 어린 양의 피로 인한 겁니다. 그러므로 그 바다를 건넌 것을 불이 섞인 유리바다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5:2~3절입니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2)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오늘 본문에서는 유리 바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가 나옵니다. 이것이 마지막 재앙입니다. 유리 바다를 건넌 자들은 짐승과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들이 유리 바다 가에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는 전능하신 주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찬양합니다. 그러므로 유리 바다란 출애굽기와 에스겔과 열왕기와 요한계시록을 보면 정리가 됩니다.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에 나옵니다. 그 중에 17~18절입니다. “17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8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한 찬송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를 건넙니다. 바울사도는 이 사건을 세례라고 합니다(고전10:2).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서 함께 하늘에 앉혀짐이 연합이라는 세례입니다. 이 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이루신 겁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앉혀진 자들은 이 말씀에 아멘 합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넌 후에 찬송을 하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구속한 백성들을 약속 땅에 심으셔서 하나님의 처소를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집이 없어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이 아입니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곳이 없어서 우리를 처소 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 안에서 그 아들의 십자가로 구속하신 백성들 안에 거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홍해를 건넌 후에 이 찬양을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 안에 영원히 거하신다는 내용을 찬송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노래입니다.

 

시편 90:1~2절입니다.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출애굽기 15장에서 모세의 노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노래라면 여기서는 여호와를 향하여 주님은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된다고 합니다. 천지 만물이 만들어 지기도 전에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거처가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무너지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영원한 기업을 받았음을 성령의 보증으로 믿기 때문입니다(고후1:22).

 

다시 요한계시록 15:2~3절을 봅니다. “봉독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넌 자들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아 약속의 땅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모형이기에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이 세상에서 구속받아 예수님의 나라 그 아들의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 아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불이 섞인 유리 바다를 건넙니다. 홍해 바다는 단절입니다. 죽음입니다. 그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양을 하듯이 오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건넌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비록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이미 완성된 그 영광의 나라에 앉혀져 있기에 찬송하며 이 길을 갑니다. 그 찬송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계시록 15:3~4절을 새 번역으로 봅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 전능하신 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크고도 놀랍습니다. 1)만민의 왕이신 주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도 참되십니다. 4 2)주님, 누가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주님만이 홀로 거룩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주님 앞으로 와서 경배할 것입니다. 주님의 의로운 행위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찬송의 내용은 십자가로 사탄을 심판하는 중에 성도가 하는 찬송입니다. 유리 바다를 건넌 자들의 찬송입니다. 이것이 십자가로 나타난 일이기에 구약의 성도들도 신약의 성도들도 이 찬송을 합니다.

 

계시록 5:13절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