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38~44 최후의 유혹 2017. 11. 19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십자가에 달려있는 상태입니다. 지난주에 본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여진 죄목은 유대인의 왕 예수입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가 유대인들의 손에 의하여 빌라도 총독에게 넘겨지고 십자가에 달린 것입니다. 그 죄목을 빌라도가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대제사장이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라고 하였지만 빌라도는 내가 쓸 것을 썼다고 하면서 세 개의 언어로 기록하였습니다.

 

저는 빌라도가 이렇게 기록한 것도 하나님의 의지로 기록되었다고 봅니다. 그 근거는 빌라도가 예수님께 내가 놓을 권한도 있고 죽일 권한도 있다고 하자 예수님은 위에서 주시지 않았다면 그럴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19:10,11). 그러므로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만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을 유대인만이 아니라 로마인도 헬라인도 오늘 우리까지 다 보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가 만왕의 왕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38~40절을 봅니다. 예수님과 함께 강도 두 명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이 박혔습니다. 그러자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모독합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죄목이 성전을 허는 자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고 빌라도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온갖 조롱과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때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41~43절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이 예수님을 모욕하는 말과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함께 희롱하여 말합니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다고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고 하기 보다는 삼인칭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성경을 인용하여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십자가에서 내려 와보라고 합니다.

 

44절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좌우편의 강도도 예수님을 같은 말로 욕하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은 것으로 나옵니다만 다음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세 종류의 사람이 다 예수님을 조롱한 것만 봅니다. 지나가는 사람이란 그냥 우연히 지나가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처형과 강도 두 명이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을 보려고 온 수많은 무리들입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십자가의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강도나, 많은 무리들이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다 한 통속이 되어 예수님의 십자가를 조롱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그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원해 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현장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구약에 예언된 그리스도가 임한다는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이었다면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분명하게 구약에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는다는 내용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용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자기들을 구원하여 주고 세상에서 영광스럽게 해줄 그런 능력자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유대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신명기 21:23절의 말씀대로 나무에 달려 저주 받아 죽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고 맥없이 죽어가는 자가 어떻게 남을 구원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네 자신이나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내용을 최후의 유혹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 보라는 유혹이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 시에 받습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공식적인 사역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신 후에 40일을 금식하였습니다. 이때 사탄이 유혹을 합니다. 그때의 유혹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면 이런 것을 해 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마태복음 4:3~11절입니다. “봉독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신 후에 마귀가 시험하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신명기 8:3절의 말씀으로 물리칩니다. 자세한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기에 마귀의 유혹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 보라는 내용만 살펴봅니다. 두 번째 시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며 성전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합니다. 마귀가 시편 91:11절의 성경을 인용하면서 그의 사자들이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신명기 6:16절의 말씀인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물리칩니다. 세 번째의 유혹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자기에게 경배하면 세상 영광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신명기 6:13절의 말씀으로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하자 마귀가 떠나가고 천사들이 시중듭니다.

 

이러한 마귀의 시험은 이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있었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영광이 될 만한 것으로 유혹한 것입니다. 이것이 육신의 정욕이며 안목의 정욕이며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마귀의 유혹인데 우리가 이런 것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의 신에 속아있기에 그렇습니다. 이 세상의 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도록 눈과 귀와 마음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곳에서 이 세상의 썩어질 영광을 구한다면 이것이 바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나서 제자를 부르시고 자신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영광을 얻기 위한 고진감래로 생각하였지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21~24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고 물으신 후에 제자들에게도 물으십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시면서 이것을 네게 알게 한 분이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셨다고 합니다. 이 고백을 받으신 후에 비로소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말리고 나섭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면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가 이루실 일이 실패라고 본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하여 그렇게 말씀드린 것이지만 이것이 유혹입니다.

 

최초의 유혹이 마태복음 4장에서 본 대로 마귀의 직접적인 유혹이었다면 이제는 제자들이 유혹을 한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시면 안 된다고 말리고 나서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다는 생각도 있지만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어버리면 자신들도 실패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죽지 않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유혹입니다.

 

오늘 본문 43절을 다시 봅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를 구원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구경하면서 지나가는 무리와 강도와 같은 말을 하지만 성경을 잘 안다고 하는 이들은 성경말씀까지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롱도 예수님께 유혹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능력을 발휘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22:6~8절입니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있는 상황에서 나오는 내용이 다윗의 시편에 이렇게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영이 임하여 이렇게 예언한 것입니다(벧전1:11). 무리들과 강도들이 조롱합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시편의 이 말씀 그대로 예수님을 조롱합니다. 네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구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조롱이지만 왜 유혹이 되는 말입니까? 앞에서 본 대로 마태복음 4장에서 마귀가 예수님께 유혹한 것도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 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십자가 지는 예수는 그리스도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유혹입니다. 그리고 오늘 내용은 십자가에서 달린 상태로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네 자신이나 구원해 보라고 합니다.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는 주제에 남을 구원한다고 하느냐며 조롱합니다. 네가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기적을 보여주면 믿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조롱과 유혹을 묵묵히 견디고 계십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님이라고 가정하여 본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제가 전도사 때 담임목사였던 분이 청소년 집회를 많이 했습니다. 이 장면을 말할 때에 자기가 예수님이었다면 하나님 아버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내가 이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다시 달릴게요! 하면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그들을 혼내고 다시 달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청소년들에게 십자가를 말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만약에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됨을 증명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의 완성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는 내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이 실패하는 것이며 동시에 우리의 구원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온갖 조롱과 수치와 멸시를 다 받아들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렇게 해보라는 그 유혹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하나님의 자기 약속의 완성이며 우리에게 참된 생명이신 그리스도 자신을 우리에게 주시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유혹도 제자들의 유혹도 백성들과 대세자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강도들의 유혹도 물리친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최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죽으심으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제가 몇 번 예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을 청년 때에 읽었습니다. 이 책은 여러 곳에서 금서로 지정 될 정도로 문제가 많은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이 영화화 되어 한국에 상영을 하려고 했을 때에 한국의 목회자들이 상영반대를 했습니다. 이 소설의 내용이 지금 기억하기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을 때에 사탄이 한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자신이 예수의 수호천사라고 하는 환상으로 시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는 그 부르짖음에 응답이나 되는 것처럼 사탄이 변장하여 수호천사라고 등장하여 하나님께서 예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지 않게 하신다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고난으로도 충분하니 죽지 않고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냐고 하니 변장한 사탄이 아니라고 하면서 평범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평범한 한 가장으로 늙어가는 그런 장면을 세밀하게 그렸기에 논란이 많았습니다만 소설입니다. 소설이기에 예수가 바울의 복음을 반대하기도 하다가 무력하게 물러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설의 결론은 자신이 그 유혹에 넘어간 것을 알고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죽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영화의 한 장면은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왜 이런 소설까지 이야기하느냐 하면 예수님께 유혹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도 온갖 유혹이 있습니다. 어떤 유혹입니까? 네가 전능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그렇게 사느냐는 유혹입니다. 전능한 하나님을 잘 섬기면 부자가 되고 세상에 성공한다는 유혹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팽배하여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룬 것이며 그 십자가가 만세와 만대로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유혹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를 복음이라고 말한다면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입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이 세상에 가득한 것은 경제원리로도 볼 수 있습니다. 수요가 없다면 공급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우리가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으면 이것이 마귀에게 유혹받아서 속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세상에서 성공하여 나를 조롱하는 자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는 마음이 우리에게 없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핍박한 자들에게 내가 성공함으로 그들이 나에게 빌도록 만들어주겠다는 이 마음이 바로 유혹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것은 일반명사인 하나님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시편 42:10절입니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그리스도가 이런 비방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성도들도 이런 조롱을 받습니다. 이럴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을 내가 받아서 육신 적이든지 영적이든지 조롱하는 자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합니다. 무엇을 다 이루신 것입니까?

 

우리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이 십자가의 다 이루심입니다(3:14,16). 그 생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복음의 참된 지식을 알게 하시는 것도 십자가의 들리심입니다(8:28). 또한 그 십자가의 다 이루심으로 자기 백성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들이십니다(12:32).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으심은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참된 지식을 알게 하셔서 자기에게로 이끌어 들이시는 일도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며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받는 백성들에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니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면서 아무른 표적과 기적을 일으키지 않고 십자가에서 무력하게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죽음인줄 아무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죽으심으로 자신을 우리에 주시는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의 비밀이었습니다.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 비밀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에게로 버림을 받아 우리를 자신에게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시고 사망을 교환하여 가신 것입니다.

 

오늘 성찬식을 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 그 십자가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피 안에 거하는 것이 온전하고 완전한 그리스도의 신부들입니다. 점도 흠도 티도 없이 거룩하게 서게 하시는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