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12 별 빛을 따라서 2017. 12. 24

 

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1)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2)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지난주에 마태복음을 마쳤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시면서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구약에서도 약속하신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약속을 주시기를 너를 축복하는 자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내가 저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완성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라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실패와 좌절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 없이 사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을 마태복음 2장에서 보았습니다. 그 때는 별 이야기는 잠깐이었고 베들레헴에 대하여 상세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의 말씀이지만 별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하려고 합니다. 내일이 크리스마스라고 온 세상이 요란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모르고 사람들이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오신 소식을 천사들이 찬송하기를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며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라고 하였습니다. 천지의 창조자이신 주님께서 짐승들의 먹이통에 태어나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이 소식을 기뻐하는 자는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기쁜 소식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짐승임을 아는 것입니다. 인간이 존귀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어떠한 자인지 알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같은 자들입니다. 자신이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자임을 인식하는 자는 성령의 일하심입니다. 이런 자는 자신이 짐승처럼 땅의 보이는 것만 위해 사는 것이 죄임을 알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게 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봅니다. 헤롯이 왕으로 있을 때에 유대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습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왔습니다. 박사들이란 별을 보고 점을 치거나 예언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큰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 왕이 태어난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별빛을 따라 동방에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까지 와서는 별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왕궁으로 찾아간 것입니다. 왕이 태어난다면 왕궁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면서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 하려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3~8절입니다. 헤롯 왕이 이 말을 듣자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으니 유대 베들레헴이라고 바로 대답을 합니다. 베들레헴에 대하여는 미가 선지자가 예언을 한 것이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헤롯이 박사들을 조용하게 불러서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하게 묻고는 아기를 찾으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경배하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베들레헴의 이름도 집이라는 베이트와 떡이라는 레헴이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이 베들레헴이라는 떡집의 구유에 오신 것입니다.

 

9~12절입니다.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가는 중에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별 빛이 비치는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함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립니다. 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그 뒤에 헤롯은 박사들이 자기를 속이고 몰래 돌아간 것을 알고서는 박사들에게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으로 하여 두 살 아래의 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난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해롯이 죽기까지 애굽에 있다가 죽고 나서 갈리리에서 사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동방의 점성가들이 별 빛을 보고 왕이 태어난 것을 알고 찾아왔을까요? 옛날의 점성가들은 큰 별이 나타나면 큰 인물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큰 별이 지는 것을 보고 큰 인물이 죽은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것을 보면 그 별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비춘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까지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동방이라고 하면 예루살렘의 동쪽입니다. 예루살렘의 동쪽에서 고대로부터 문명이 발달한 나라라면 바벨론 지역으로 봐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바벨론 지역의 문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발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남 유다를 포로로 잡아간 나라입니다. 그곳에서 유대인들의 성경도 보았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지역의 유명한 점술가였던 발람의 이야기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민수기 22:1~5절입니다. “봉독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하여 그 큰 제국 애굽의 바로 왕을 물리치고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들을 막아선 바산 왕 옥과 아모리 왕 시혼이 패배하였습니다. 바산 왕 옥은 골리앗과 같은 거인이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철로 된 침대의 길이가 약 4미터 폭이 약 2미터가 되었습니다(3:11). 그러므로 이들보다 약한 모압 왕 발락은 큰일이 났습니다. 이스라엘이 마치 소떼가 풀을 뜯어 먹듯이 자기 땅 가까이 오니 두려워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 십볼의 아들 발람을 부릅니다. 발람의 고향이 강가 브돌이라고 합니다. 각주를 보면 유프라테스 강입니다. 아직 제국으로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문명이 발달한 지역인데 이렇게 멀리까지 소문이 날 정도로 대단한 점술가입니다. 그래서 발락 왕이 사신을 보내어 발람을 청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여 달라고 합니다.

 

민수기 22:7~14절을 보면 발락 왕이 사신들을 발람 에게 복채를 보냅니다. 그런데 발람이 여호와께 물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발람이 여호와의 소문을 들은 모양입니다. 그날 밤에 하나님이 발람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면서 그들과 함께 가지 말라고 합니다. 발람이 아침에 그 사신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시니 갈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합니다.

 

민수기 22:15~40절을 보면 발락 왕이 전보다 더 높은 사신을 보내면서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만 해 주면 원하는 것을 다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발람은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준다고 해도 여호와의 말씀에 더 하거나 덜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보자고 하면서 그 사신들을 유숙하게 합니다. 그 밤에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따라가기는 하지만 내가 하는 말만 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가는 중에 나귀가 천사의 칼을 피하느라 발람을 벽으로 몰아 부치자 발람이 나귀에게 채찍을 때립니다. 그러자 나귀가 말을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서 드디어 발락 왕에게 가니 융숭한 대접을 합니다.

 

민수기 23:1~12절을 보면 발락과 발람이 이스라엘의 진영이 다 보이는 바알의 산당에 올라가서 제단을 쌓고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번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여호와의 응답을 바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이런 발람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방의 점술가를 사용하셔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발락 왕에게 전하라고 한 말씀이 7~10절입니다. “7 발람이 예언을 전하여 말하되 발락이 나를 아람에서, 모압 왕이 동쪽 산에서 데려다가 이르기를 와서 나를 위하여 야곱을 저주하라, 와서 이스라엘을 꾸짖으라 하도다 8 하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가 어찌 꾸짖으랴 9 내가 바위 위에서 그들을 보며 작은 산에서 그들을 바라보니 이 백성은 홀로 살 것이라 그를 여러 민족 중의 하나로 여기지 않으리로다 10 야곱의 티끌을 누가 능히 세며 이스라엘 사분의 일을 누가 능히 셀 고 나는 의인의 죽음을 죽기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노라저주하라고 하니 축복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발락이 다른 곳에 가서 그 진영의 끝만 보이는 곳에서 저주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축복만 주어집니다.

 

민수기 23:18~24절을 봅니다. “봉독 두 번째 예언인데 여기서 놀라운 말씀이 선포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다고 하십니다. 여호와는 자기 언약에 신실한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주하시 않으시면 어떠한 점술로도 그들을 저주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허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허물이 있어도 보지 않으시고 반역이 있어도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늘 거역하였지만 하나님의 약속대로 지금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들이고 있는데 여기에 누가 막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발락 왕이 세 번째 다른 곳에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축복의 말만 쏟아지자 발락 왕이 축복의 예언을 중단하려고 손뼉을 치면서 막습니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저들을 저주하라고 하였는데 너는 축복만 하였으니 너는 너의 곳으로 달아나라고 합니다. 내가 그대를 높여 심히 존귀하게 하기로 뜻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막으신다고 발락 왕이 여호와의 이름을 말합니다. 그러자 발람도 나에게 어떤 은금을 다 준다고 하여도 나는 여호와의 말씀 외에 전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면서 내가 돌아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일에 당신의 백성에게 어떻게 할지를 말하겠다고 하면서 마지막 예언을 합니다.

 

24:17절을 봅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쳐서 무찌르고 또 셋의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한 규가 이스라엘에서 나와서 적들을 무찌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발람이라는 유명한 점술가가 여호와의 영에 사로잡혀 예언한 내용입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유프라테스 강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전하여졌을 것입니다. 또한 나중에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서 성경도 들고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서도 알려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발람에 대하여 얼마나 유명한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여 주신 내용을 말하면서 여호수아가 말합니다(24:9). 미가 선지자가 말합니다(6:5). 이 두 사람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보호하여 주신 것인지 말하면서 발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베드로와 유다는 거짓 선지자들에게 넘어가지 말라면서 발람의 길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벧후2:15,16, 11). 이 정도로 발람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한 별이 나타날 것에 대하여 어떤 경로를 통하였든지 동방의 점성가들이 들었던 것입니다. 발람이 예언한 시대로 계산하면 무려 천오백 년입니다. 바벨론 포로기에 알았다면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이 B.C 586년이기에 약 오백년을 별이 나타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드디어 별이 나타난 것입니다.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이 그 별을 따라서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이 왜 헤롯의 왕궁에 들어간 것입니까? 왕에 태어나면 왕궁에 태어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한 별이 나타난다면 그가 왕으로 오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민수기 22:17절에 발람의 예언대로 한 별이 나타나는 것과 함께 규()가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규란 왕의 지팡이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별 빛은 가장 낮은 곳 베들레헴의 말구유로 인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1~5절입니다. “1 태초에 1)말씀이 계시니라 이 1)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2)깨닫지 못하더라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말씀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하나님입니다. 이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셨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런데 빛이 어두움에 비치지만 어두움이 깨닫지 못합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에 인간들은 땅에 속하여 땅의 것만 바라보며 살았기에 하늘의 빛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이 빛에 대한 소식을 듣고 그 빛을 받아들입니다. 그 빛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자신이 어두움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두움이 빛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이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죽음입니다. 빛이 우리에게 오는 모습입니다.

 

고린도후서 4:3~7절입니다.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는데 이 복음이 가려진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이 세상의 신이 그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낮아지진 예수님,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그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이 세상 신의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러하였지만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빛이 있으라고 하시자 빛이 생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에게 비추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비추어진 자들은 자신이 질그릇임을 압니다. 흙덩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어떤 능력도 없는 땅의 티끌이지만 우리 안에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담기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별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꿈에서 찾습니까? 환상 중에 찾습니까? 기도원에 가서 찾습니까? 세상의 영광가운데 찾습니까? 이 별은 성경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예언된 그 별에 대한 이야기를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이 연구하고 찾아온 것은 그들이 구약 성경을 보았든지 들었든지 아니면 발람의 말을 들었든지 그들은 결국 성경에 기록된 그 별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에서 이 별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예수님을 새벽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주리라고 합니다(2:28). 계시록 22: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다윗의 뿌리이며 자손이라는 말은 다윗 언약의 성취이며 다윗 언약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언약을 십자가로 이루어내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광명한 새벽별입니다.

 

끝으로 베드로후서 1:16~21절입니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 본문의 바로 앞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죽기 직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기록하여 두는 이유를 설명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은 교묘하게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합니다. 자신들은 마태복음 17장의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친히 본 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서신을 남기는 이유는 이제는 그렇게 보고 듣는 것으로 확신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더 분명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이기에 사사로이 풀지 못하게 합니다. 사사로이 푼다는 말은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풀어내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 교회를 위하여, 자기 회사를 위하여, 자기 나라를 위하여 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해석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무엇을 발견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19절입니다.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이 성경입니다. 이 성경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다고 합니다. 우리도 태어나면서부터 영적인 일에는 캄캄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의 말씀이 들리고 보이는 것은 이제 빛이 우리에게 비추어진 것입니다. 밤길에 등불을 들고 조심스럽게 갑니다. 이처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경을 조심스럽게 보게 되면 결국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는 것처럼 밝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만유이심을 알게 됩니다. 만유란 전부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면 전부 있지만 예수님이 없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하여도 아무 것도 없는 자가 됩니다.

 

누가복음 2:25~33절입니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이스라엘을 위로를 기다린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성령이 그 위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있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서 결례를 행하러 온 아기예수를 품에 안고서 찬송합니다. 그 찬송의 말은 주재에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신다고 합니다. 메시아를 보고 품에 안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합니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주님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방에 비추어지는 빛이며 주의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짊어지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자기에게로 이끌어 한 몸이 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면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으로 임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오 주님! 이제야 종을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주님을 우리의 품 안에 안고서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