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5:1~15 길갈에서 2017. 12. 31

 

1 요단 서쪽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1)우리를 건너게 하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정신을 잃었더라 2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 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2)할례 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 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죽었는데 5 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다만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길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음성을 청종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 년 동안을 광야에서 헤매었더니 7 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 또 그 모든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마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머물며 낫기를 기다릴 때에 9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3)길갈이라 하느니라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오늘 주보에 보면 송구영신(送舊迎新)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뜻입니다. 전국의 수많은 곳에서 해맞이를 한다고 합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사람들마다 소원을 빕니다. 이러한 소원을 비는 행위를 교회에서는 송구영신예배라는 이름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송구영신예배를 어떻게 하면 잘 드리게 하는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도 있습니다. 성경구절 제비뽑기를 합니다. 헌금봉투에 소원기도를 써서 내면 가족별로 목사의 축복기도를 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원화소복(遠禍召福)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행위가 결국 자기를 위한 탐심이기에 우상숭배입니다(20:4,3:5).

 

오늘 본문 1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도우심으로 요단강을 말리고 건너게 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요단강 서쪽의 사람들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들이 다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40년 전에도 가나안 사람들은 이렇게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을 때에 열 명의 말을 듣고서 우리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의 눈은 육체의 눈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주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셨기에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하였지만 백성들은 다수의 말을 들었습니다.

 

민수기 13장과 1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제 가나안 땅에 가서 칼에 죽임 당해야 하느냐면서 지도자를 다시 뽑아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배반하는 모습입니다. 10가지 재앙을 보고 홍해를 건넜으며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고 만나를 먹으면서도 이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진멸하고 새로운 민족을 일으켜주겠다고 합니다. 모세가 기도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이들을 광야에서 죽게 하였다는 말을 들을 것이니 주의 이름을 위하여서 용서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20세 이상 계수된 자를 광야에서 40년 동안 다 죽이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여호수아 갈렙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20세 이상 계수된 약 60만 명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동안 광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할례를 받게 합니다. 바로 앞에는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적들이 언제 기습하여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돌칼로 할례를 행한다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서는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면 왜 이곳에서 할례를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할례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낳은 자식은 여종 하갈의 자식 이스마엘입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능력으로 낳은 자식이기에 약속의 자녀가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한 후에 이삭을 낳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는 인간의 생식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능력임을 알게 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할례를 행하고 사라는 생리가 끊어진 상태에서 이삭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없는데서 있게 되고 죽은 데서 살아나는 방식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서 약속의 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던 광야 1세대가 광야에서 다 죽고 난 후에 이제 광야에서 자라난 자들과 가데스 바네아 사건에서 20세 이하의 자녀들이 자라나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광야에서 태어난 자들은 할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직전에 유월절을 행합니다. 유월절 음식을 이방인은 먹지 못하고 돈으로 산종은 할례를 하고 유월절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다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본문 2~8절입니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할례를 행한 것은 약속의 자녀를 받는 것이 아브라함이나 사라의 혈육의 능력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혈육의 능력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적군 앞에서 할례를 행하고 낫기를 기다리는 동안에 적이 공격하여 오면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그러므로 할례 행함이 믿음입니다.

 

본문 9절을 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3)길갈이라 하느니라길갈이라는 말이 굴러가다는 히브리어와 발음이 비슷합니다. 그러면 할례를 행한 것이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한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이제 애굽과는 영원히 이별이라는 말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출애굽 1세대는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모습입니다. 이런 수치를 굴러버리는 것이 할례입니다.

본문 10~13절입니다. 할례를 행한 후에 그달 십사일 저녁에 유월절을 지킵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유월절에 참여하는 자는 할례를 행한 자가 참여합니다. 이러한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기 직전에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애굽 온 지역의 장자와 처음 태어난 짐승의 수컷이 다 죽임당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직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간 것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을 기점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함으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유월절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길갈에서 중요한 두 가지 일의 할례와 유월절입니다. 할례와 유월절을 통하여 언약의 백성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강한 적이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3~15절입니다.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이제 여리고 성으로 여호수아가 가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여호수아와 마주 서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묻기를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너희 편도 적들의 편도 아니라고 합니다.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켰지만 아직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호수아입니다.

 

우리도 늘 이러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었으니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오신 분은 네 편도 적 편도 아니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편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면서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군대장관이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합니다. 네가 선 곳을 거룩하다고 합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합니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종의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고대의 종은 신발을 신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서 네 편이냐 적 편이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엎드려 경배해야 할 분입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말이 나옵니까?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십니까?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오신 분이 구약에 나타난 그리스도로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자세여야 합니다. 송구영신이라고 지난해 잘못한 것 한꺼번에 몫 돈 헌금 할 테니 새해에는 잘 봐 달라는 식이라면 아직 주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에게도 길갈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온갖 수치들이 굴러가야 하는데 그것이 할례입니다. 할례란 몸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할례를 해야 합니다. 율법에서도 몸의 할례가 아닌 마음에 할례를 말씀합니다(10:16,30:6).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몸의 할례는 받았지만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한 상태가 출애굽 1세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약속의 땅에 들어서서 요단강을 건넌 후에 제일 먼저 시행하게 하신 것이 할례와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할례와 유월절이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면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서 엎드리는 자세가 됩니다.

 

예레미야 4:3~4절입니다. 3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주께로 돌아가는 길이 마음의 할례를 받는 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레미야 9:23~26절입니다.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1)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않은 자를 다 심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방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기에 심판을 받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에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면 참으로 마음에 할례를 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사람이 자기의 지혜나 용맹이나 부함을 자랑하지 않고 명철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과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이심을 깨닫는 것을 자랑합니다. 이것을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자랑하면서 사십니까? 2017년에 자랑할 거리가 별로 없었으니 2018년에는 만사형통하여 자랑할 거리가 많아지기를 원하십니까? 성경에서 형통이란 나의 뜻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형통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다면 여전히 세상의 썩어질 것과 불에 타 없어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몸의 할례를 우리가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마음의 할례를 행할 수가 있습니까?

 

에스겔 36:24~28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예레미야 선지자가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하였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음에 할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렇게 됨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더럽혀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끼고 거룩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십니다. 맑은 물을 뿌리고 새 영을 주셔서 그 돌과 같이 딱딱한 굳은 마음을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속하시고 우리에게 그 영을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사도행전 7:51절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합니다. 아직까지 율법을 붙들고 성전을 붙들고 있는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듣지 않습니다. 그런 자들을 향하여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견디지 못하여 그들은 이를 갈면서 돌로 스데반 집사를 쳐 죽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면 복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로 율법을 들으면 율법을 지켜서 의에 이르고자 합니다. 율법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의 법으로 치장을 합니다. 그런데 율법이든 양심이든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점수를 후하게 주고 남에게는 박하게 줍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돌같이 딱딱한 마음의 가죽이 벗겨져서 부드러운 살과 같이 되기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마음의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절입니다.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5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따라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유대 율법주의자들이 와서는 믿음으로는 부족하니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자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고 다시 할례를 받는다면 너희에게 그리스도는 아무른 유익이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자들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 할례나 효력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입니다. 이런 자들은 의의 소망을 믿음으로 기다립니다.

 

오늘 우리는 마음의 할례를 받았습니까?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모든 수치가 굴러간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단번에 영원히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아직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길갈이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수치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굴러간 것을 믿는 자가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고린도후서 5:14~17절입니다.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1)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 사랑의 이끄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이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우리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이끌려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마음의 할례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새로운 직분이 생겼습니다. 그 직분은 화목케 하는 직분입니다.

 

이어지는 18~21절입니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언약은 십자가로 단번에 영원히 세워졌습니다. 그 언약을 받은 자들이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든 수치가 굴러간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자신이 죄를 지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믿는 자가 마음의 할례가 일어난 자들이며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일마다 모이는 것을 저는 언약의 갱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이루어내신 이 놀라운 일들을 통하여 날마다 우리의 수치가 굴러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신 그 능력들이 우리 안에 날마다 충만하여 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