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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6~18 다윗에서 그리스도까지 2014. 6. 22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6절부터 봅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고 합니다. 이 족보에서 왕이라고 하는 표현이 다윗에게만 주어집니다. 다윗 이후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기 까지는 다 왕들입니다. 그러함에도 다윗에게만 왕이라고 표현 한 것은 다윗의 왕위를 이을 영원한 왕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은 낳았다고 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야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야의 이름을 언급함으로 다윗이 무엇을 하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다윗이 목동으로 있다가 여호와의 택하심을 입어 사무엘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습니다.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왕 되심을 버리고 인간 왕을 요구하였을 때에 허락한 왕이 사울입니다. 사울은 보통사람들보다 키가 머리하나는 더 있는 정도로 컸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림으로 사울이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하여 목동이었던 소년 다윗을 기름 붓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고 주변의 적들도 거의 평정이 되어갔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11장을 보시면 다윗의 부하들은 전쟁터에 나갔는데 왕은 왕궁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 직접 전투에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주변을 정복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저녁때에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한 여인이 목욕하는 것을 보고 부하를 보내어 알아보게 합니다.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인줄 알고도 간음을 하고 돌려보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다윗 왕에게 임신하였다고 알려옵니다. 알리바이를 조성하기 위하여 요압 장군에게 우리야를 왕궁으로 보내게 합니다. 전쟁터의 상황을 물어보고 집으로 가서 쉬라고 합니다. 그런데 충성스러운 우리야는 거룩한 여호와의 전쟁 중에 아내에게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하면서 궁궐의 수비대에서 누워 잡니다. 다음 날은 왕이 우리야에게 술을 먹여서 보내는데도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을 보고 밀령을 우리야의 손에 보내어 전쟁터에서 죽게 합니다. 그리고 밧세바를 아내로 취합니다.


이때 나단 선지자가 비유로 왕을 책망합니다. 어떤 부자 집에 손님이 왔는데 자기 집의 양으로 잡아서 손님을 대접한 것이 아니라 가난한 집의 양 한 마리만 있는 것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하였다고 하자 다윗은 그런 놈이 있다면 죽어 마땅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잘못은 율법에 의하면 네 배로 갚아야 한다는 말을 할 때에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책망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목동이 너를 왕으로 세우시기 이것저것을 다 주셨는데 무언가 부족하였다면 더 죽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다윗이 어떤 징계를 받을 자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때에 다윗이 회개를 합니다. 그 회개한 내용이 시편 51편에서 자신이 어떠한 죄인인지를 처절하게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을 그냥 왕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이 나왔다는 기록을 함으로 다윗의 죄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다윗도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간음과 살인이후에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받은 다윗은 자신의 죄악 중에 잉태하였고 죄가 항상 자기 앞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죄를 주께서 용서하지 않으시면 자신은 전혀 소망이 없는 자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기 죄로 인하여 죽은 자가 우리야입니다. 우리야는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충성스럽게 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을 하는 우리야를 죽인 자가 다윗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다윗은 대속함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알게 됩니다. 다윗은 간음과 살인으로 우리야만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이도 죽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여 자녀를 얻는데 이 아이가 솔로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고 하여 여디디야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족보를 기록할 때에 다윗 왕으로 언급하지만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는 행간에는 이 내용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육적인 유대인들은 혈과 육의 나라인 다윗의 왕국을 기다리지만 마태가 이런 다윗을 소개하면서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속죄를 받아야 할 족보를 보여줍니다. 대단히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족보가 아니라 인간의 죄라는 죄가 다 나오는 족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11절입니다. 다윗에게서 바벨론에 사로잡혀 갈 때까지의 족보입니다. 다윗을 정점으로 점점 몰락해 가는 왕국입니다. 솔로몬은 얼마나 사치를 하고 세금을 많이 거두며 우상숭배를 하였는지 솔로몬 사후에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집니다. 북 이스라엘은 우상숭배가 더 심하여 빨리 망하였습니다. 남 유다도 북 이스라엘과 다를 바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으로 인하여 등불을 꺼지 아니하시고 그 왕위를 이어가는 나라가 남 유다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왕이 된 자들 중에 우상을 척결하는 왕들도 가끔 나옵니다. 그러나 악한 왕들이 얼마나 악한지 특히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와 같은 경우는 그의 우상숭배로 인하여 유다가 멸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왕위가 점점 멸망의 길로 가서 결국은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망하는 왕을 14대로 봅니다. 물론 이 안에 생략된 왕의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14대로 나누는 것은 다윗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12~16절입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로부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기 까지 족보입니다. 16절을 봅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과 다윗의 계보를 연결하면서 요셉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는 예수가 나왔다고 합니다. 갑자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요셉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이 알기로는 요셉의 아들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요셉의 혈통적인 아들이 아님을 족보 기록 이후에 상세하게 기록합니다만 우선 이 족보에서도 요셉의 혈통이 아님을 증거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누구에게서 라는 표현을 다시 정리해 봅니다. 다말과 라합과 룻과 우리야의 아내입니다. 다말은 이방인으로 유다의 씨를 이어주기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걸고 시아버지의 씨를 받은 여인입니다. 라합은 조국을 배신하며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준 기생입니다. 룻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는 나오미를 따라 나선 모압여인입니다. 우리야의 아내도 우리야가 헷 사람이기에 밧세바도 이방여인으로 보아야합니다. 이러한 이방여인들에게서 족보가 이어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이 유다의 혈통적인 구원만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통하여 언약하신 천하 만민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고 한 그 언약을 보여주는 족보입니다. 이 복이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복입니다. 또한 여인의 후손의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는 창세기 3:15절의 말씀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에게서 라는 마지막이 마리아로 연결이 됩니다.


이 족보에서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말이 39번 나옵니다. 이 낳았다는 말이 헬라어로 ‘에겐네센’(evge,nnhsen)입니다. 지금까지 낳았다는 말은 다 ‘에겐네센’이라는 능동태를 사용합니다. 16절에서 야곱이 요셉을 낳았다는 단어도 ‘에겐네센’입니다. 그런데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시니라는 단어는 ‘에겐네센’이 아니라 이 동사의 수동태인 ‘에겐네데’(evgennh,qh)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간의 행위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따라 태어났음을 이런 단어 하나를 통하여서도 보여줍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할 때에 직접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아도 수동태로 표현함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곤 합니다. 그래서 이런 수동태를 신적 수동태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태어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내실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마태가 복음을 처음에 소개할 때에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예수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다윗을 굉장히 강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4대로 나눈 것도 그렇고 다윗만을 왕으로 말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힌 나사렛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유다 지파에서 오신 분이라고 구약성경을 통하여 증거 해 나갑니다. 모든 사도들도 구약성경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기 위한 단어가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래서 메시아 칭호가 다윗의 자손입니다.


마태복음 1:20절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예수님 외에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름을 입은 자가 요셉입니다. 요셉은 자기의 씨도 아닌 예수의 법적이 아버지가 되었기에 이런 호칭을 천사가 합니다. 이 외에 다윗의 자손이라는 호칭을 마태복음에서만 찾아보면 전부 메시아 칭호입니다.


마태복음9:27절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두 맹인이 예수님을 부를 때에 다윗의 자손으로 부릅니다. 나중에 이 분문에서 다시 보겠습니다만 율법 선생들과 눈뜬 자들도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알아보지 못하는데 맹인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2:23절에서는 예수님의 병자를 고쳐주시는 사건을 보고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며 놀라는 내용입니다. 15:22절에서는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이 흉악한 귀신들렸다고 하면서 고쳐달라고 할 때에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유대인들도 다윗의 자손이라고 잘 부르지 않는데 이방인이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20:30절에서도 맹인이 예수님을 보고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릅니다. 21:9절에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시에 무리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찬송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복음을 전하면서 족보에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로 소개하면서 가장 중요한 정점을 다윗으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마태가 이러한 내용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증거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2:41~25절입니다. “41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42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44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46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더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먼저 질문하십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시면서 다윗이 누구의 자손이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다윗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유대인 전부가 다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시편 110:1절을 인용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주가 두 분입니다. 그러면 앞의 주는 여호와이시고 뒤의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다윗이 이것을 성령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는데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러자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예수님께 묻는 자고 없었다고 합니다.


시간상의 순서로는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셔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기다리다가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셨습니다(요8:56).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역사 속에 사람으로 오신 분이시지만 아브라함과 다윗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을 창조하신 분이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의 자리에 오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을 죄로 삼으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한 일입니다. 이것이 마태복음의 온갖 인간의 죄가 다 드러나는 그 죄의 족보를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가 오셔서 자기 죽음으로 죄의 족보를 끝내시고 그 안에서 생명의 족보를 이어가시는 것이 십자가를 통한 새 창조입니다.


갈라디아서 4:4~7절입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구약의 약속 대로 여자에게서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습니다. 족보에서 계속하여 누구에게서 라는 말은 여자에게 해당되었습니다. 이미 창세기 3:15절의 여자의 후손이며 또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실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전서 1:1~12절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예수님의 족보에 가입한 자들은 썩어질 가문과 족보와 세상의 영광이 아닌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렵혀지지 아니하는 하늘에 간직한 그 유업을 이어받게 됩니다. 이것이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 복음은 이미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아브라함과 다윗과 모슨 선지자들이 언제 어떠한 때에 그리스도가 오실지 기록해 놓은 것이 구약입니다. 그 예언대로 그 모든 약속을 이루실 분이 다윗이 주라고 고백한 그 주님이십니다. 이 주가 되신 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그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새로운 족보에 가입이 된 사람이라면 반드시 썩지 아니할 유업을 이어 받도록 하시기 위하여 썩어질 것들을 미리 미리 제거하여 주시는 은혜를 베풀고 계십니다. 그러한 은혜를 우리는 환난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내 자녀를 향한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사랑과 이 은혜를 제대로 알고 맛보며 누리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아들의 족보에 편입된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