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12   회개하라     2014. 8. 10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마음에 떠올랐습니까? 대부분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러한 잘못한 일들을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복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회개를 구체적으로 하라고 목사들이나 기도원의 부흥사들이 알려줍니다. 제일 많이 듣는 회개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느냐는 십일조의 문제입니다. 제대로 십일조 안 한 사람은 무언가 찔립니다. 그리고 주일성수입니다. 그리고 주의 종에게 잘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일을 잘못해서 망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런 일들을 잘해서 복 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회개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자신도 복을 받기 위하여 열심히 십일조와 주일성수라는 회개를 한다면 이런 회개란 말이 회개이지 결국 탐심이라는 우상숭배입니다. 

제가 이런 말을 15년 동안 줄기차게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회개하라는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십일조로 희생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증거 하실 수 있습니까? 주일성수란 안식일지킴의 변형이기에 날과 달과 절기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을 주인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안식의 완성임을 증거 하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도 못하면서 거저 우리는 십일조도 자유이고 주일성수도 자유라고 하면서 돈을 사랑하고 쾌락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있다면 이것은 복을 받기 위하여 십일조와 주일성수를 하는 자들의 탐심과 다를 바가 없는 탐심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도대체 무엇이 회개인지 오늘 말씀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3:1절입니다. 그때에 세례 요한이 유대 광야에서 전파합니다. 그때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거로 인하여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요한을 세례 요한이라고 한 이유는 요한이 요단강에서 물로 세례를 주면서 자신의 사역을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증거 하는 자리가 유대 광야입니다. 세례 요한은 레위지파이며 제사장 가문입니다. 요한의 아버지가 사가랴 제사장입니다. 그러면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사역을 해야 하는데 그러한 성전을 떠나 유대 광야에서 외친다는 말은 새로운 출애굽을 보여주는 계시적인 장소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으로 가듯이 지금 애굽이라는 예루살렘에서 빠져나와 광야를 거쳐 약속의 최종 종착점인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가야 하기에 유대 광야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2~3절입니다. 세례요한의 사역과 그 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의 사역의 내용은 회개를 선포합니다. 이 회개란 천국이 가까이 왔기에 회개하라고 합니다. 천국을 맞이하는 길은 회개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천국이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아들의 나라임을 신약에서 밝히 드러냅니다(골1:13).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이라고 하는데 그 천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회개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회개하라는 외침이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0:3절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을 것을 마태는 세례 요한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 한절을 인용하지만 이사야 40:1~11절을 보시면 이미 심판을 받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주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는 주를 맞을 준비를 하라는 내용입니다. 

외쳐야 할 내용 중의 한 부분인 6~8절을 봅니다.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인생이 풀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세상의 영광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여도 풀이 시들면 꽃도 시들듯이 여호와의 기운 앞에 인생의 아름다움이란 한낮 풀 한 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재벌 회장의 영광도 식물인간처럼 되어 있고 이단 교주의 영광도 백골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풀의 꽃과 같은 인생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의 주를 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4절입니다.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요한의 모습을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열왕기하 1:8절입니다.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1)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엘리야가 털이 많은 사람이라고 되어있는데 다른 번역으로는 털옷을 입은 사람으로도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세례요한의 외모나 사역이 엘리야의 모습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1:7~10절입니다. “7 그들이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10 기록된 바 ㄱ)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 있을 때에 자기의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그 이가 당신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인자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광야에 가서 본 것이 갈대도 아니고 부드러운 옷 입은 자도 아니고 선지자를 보기 위하여 나간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세례요한의 사역을 말라기서를 인용하면서 말씀하십니다. 10절의 각주를 봅니다. 

말라기 3:1절입니다.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예수님께서 이 말씀까지만 인용하셨는데 이어지는 2~3절을 함께 봅니다.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인데 여호와께서 임하시기 전에 먼저 사자를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사자가 세례 요한입니다. 옛날에 임금이 행차를 하면 임금 앞에서 길을 여는 자가 큰 소리로 외치듯이 지금 세례 요한이 만왕의 왕이신 여호와의 그 길을 준비하는 자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임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 여호와 하나님으로 임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감옥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여호와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오실 그 이가 당신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인자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조차 실족할만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사역은 여호와께서 임하시는 그 날을 위하여 회개를 외치는 것이 요한의 사역입니다. 

마태복음 11:11~14절을 봅니다.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14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는 말씀은 모든 구약이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런데 그 구약의 마지막 증인인 세례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목격하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한 사람이기에 큰 자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라고 하신 말씀도 요한이 증거 한 그리스도가 예수 자신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요한을 예수님은 오리라고 한 엘리야라고 합니다. 

말라기 4:5~6절입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면 자신들은 구원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구원받는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율법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은 구원을 받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심판을 받는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예언된 그 엘리야가 왔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엘리야가 온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정을 가진 세례 요한이 왔습니다. 이것은 엘리야나 세례 요한의 자질이 아닙니다. 이미 엘리야에게도 주의 영이 임하여 그렇게 한 것이며 세례 요한도 주의 영으로 인하여 이렇게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이 세례 요한이 지금 엘리야가 와서 해야 할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만약 돌이키지 않으면 저주로 그 땅을 치게 됩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마음은 자기 언약에 신실하신 분이시기에 일향 미쁘십니다. 문제는 자녀들이 마음이 주께로 돌아야가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회개를 합니까? 제가 앞에서 이단의 교주도 백골이 되었다는 말은 구원 파 유병언씨를 말한 것입니다. 구원 파는 권신찬의 제자 삼인으로 주축이 되어 있습니다. 유병언, 박옥수, 이요한입니다. 이들은 한번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으면 절대로 회개를 하면 안 됩니다. 회개에 대한 찬송이나 기도를 한다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 증거로 보기에 회개하면 큰일이 납니다. 전에 김옥수 집사 아는 사람이 암으로 입원하여 있다고 해서 고신병원에 심방을 간 적이 있습니다. 전도하여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어머니가 구원파입니다. 딸이 예수님을 영접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였는데 그 병원의 전도사가 그 딸을 위하여 죄 용서에 대한 기도를 하는 중에 말렸다고 합니다. 우리 딸이 예수님 믿고 죄 용서 받았는데 왜 그런 죄를 이야기하느냐며 기도를 말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이요한씨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에 나가는 사람에게서 상담전화가 왔습니다. 그 교회는 회개하라고 한답니다. 구원 파는 한번 죄 사함 받고 거듭나면 다시는 회개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데 그 교회는 회개 하라고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회개도 상황에 따라서 하든지 안하든지 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조차도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어느 목사를 만났습니다. 이 분이 어느 교회를 다녀왔는데 자신은 그 교회 다녀와서 자신이 삯군인지 게으른 것인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 교회는 모든 교인이 새벽기도와 수요예배를 다 참석한다고 합니다. 주일 오전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결혼식에 간다고 하면 직분 내려놓고 가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열심을 내고 충성을 한다고 합니다. 이 교회에서 죄란 교회의 이러한 방침에 충성하지 않는 것이 죄로 여겨집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를 의지하도록 만들면 그것이 저주 아래 들어가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면서 언약을 따라서 책을 드렸습니다. 제가 여러 가지 예를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죄라고 여기는 개념들과 회개라는 개념들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회개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3:6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나아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세례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과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홍해를 건너면서 집단적인 세례를 받고 나온 무리를 광야교회라고 합니다(행7:38). 구약의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들에게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풂으로 새로운 출애굽을 보여줍니다. 이 출애굽은 단지 장소적인 이동이 아니라 이 세상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세례입니다. 이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사람들이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습니다. 이렇게 죄를 자복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의 기준으로 죄라고 여기는 것들이 있기에 죄를 자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기준으로 죄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례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3:7절입니다.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것을 보고 옵니다. 이들이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오는 것이겠습니까? 이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자들이기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여기기 때문에 회개할 것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에게 나아온 것은 요한이 무엇을 전하는지 보려고 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을 향한 세례요한의 외침을 봅시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부릅니다. 그 당시 율법의 기준으로 죄가 없다고 여기는 자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극단적인 저주의 말입니다. 개들이라는 말보다 더 심각한 말이 독사의 자식입니다. 이들을 향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리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따라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하고 거기에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은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에 구원을 받는 자들로 자처하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율법의 기준으로 흠이 없다고 할 이들을 향하여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여기는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과 혈과 육으로 지켜낸 율법지킴이란 결국 자기들의 의가 되어 참된 의를 배척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심어놓은 선악과 이후의 인간들의 죄악의 모습입니다. 

요한복음 8:31~44절입니다.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37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38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39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들을 할 것이거늘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나사렛 예수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말씀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지금까지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이 유대인의 율법지킴이든 이방인의 윤리도덕적인 의가 되든지 간에 그 모든 것이 죄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인간의 혈과 육으로는 나올 수가 없습니다. 혈통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을 행한다고 의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의란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죄 뿐임을 아는 자들이 회개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능력으로 불가능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든지 교인과 목사들이 싸우든지 교인과 교인이 싸우든지 간에 그 모든 다툼 안에 자기는 의롭다는 생각 때문에 싸움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말은 자신은 전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에게서 어떻게 서로의 행위로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10:1~3절입니다.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2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오늘날 이 땅의 교회에서 회개하라고 하는 말들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신의 의를 쌓으라는 말로 들립니다. 회개란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는 한 더욱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알고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것은 모든 인생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리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한 자들이 예수님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와 지혜와 거룩함과 구원이 되심을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