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3:10~12    회개의 열매    2014. 8. 17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어 외치고 있습니다. 회개하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을 맞이하기 위한 것입니까? 천국을 맞이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회개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받기 위한 회개로 여깁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죄가 가려져 있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여도 죄가 가리고 있기에 받을 수가 없다고 하면서 회개하라는 부흥사들의 회개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란 우리가 하고 싶은 회개입니다. 그런 죄들을 회개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기에 회개합니다. 이러한 회개를 요청하는 자들이나 이러한 자들이 말하는 회개라는 것을 듣고 회개한다고 내어 놓는 행위들은 다 사람의 혈과 육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가 없고 오히려 우상숭배가 된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습니다. 이러한 회개를 요청하는 근거로 인용하는 본문을 한 번 더 보겠습니다. 

예레미야 5:25절입니다.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제가 방금 말씀드린 회개라는 내용을 이러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우리의 허물과 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좋은 것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허물과 죄를 회개하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예들을 말합니다. 이것은 지난주 말씀드렸기에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복을 받기 원하는 사람들은 유명한 목사가 성경을 인용하여 말하니 아멘 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좋은 것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회개라는 행위들을 하는 것입니다. 과연 이 말씀이 무엇일까요? 

예레미야 5:20~25절입니다. “20  너는 이를 야곱 집에 선포하며 유다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21 어리석고 지각이 없으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백성이여 이를 들을지어다 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내 앞에서 떨지 아니하겠느냐 내가 모래를 두어 바다의 한계를 삼되 그것으로 영원한 한계를 삼고 지나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파도가 거세게 이나 그것을 이기지 못하며 뛰노나 그것을 넘지 못하느니라 23 그러나 너희 백성은 배반하며 반역하는 마음이 있어서 이미 배반하고 갔으며 24 또 너희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를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시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자 말하지도 아니하니 25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로부터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 바다의 파도가 아무리 거세어도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집은 하나님을 거역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지금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지경인데도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어지는 말씀에서 보겠습니다. 

26~31절입니다. “26 내 백성 가운데 악인이 있어서 새 사냥꾼이 매복함 같이 지키며 덫을 놓아 사람을 잡으며 27 새장에 새들이 가득함 같이 너희 집들에 속임이 가득하도다 그러므로 너희가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28 살지고 윤택하며 또 행위가 심히 악하여 자기 이익을 얻으려고 송사 곧 고아의 송사를 공정하게 하지 아니하며 빈민의 재판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아니하니 29 내가 이 일들에 대하여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 같은 나라에 보복하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이 땅에 무섭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31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마지막에는 너희가 어찌하려느냐” 

이 본문의 말씀에서 예루살렘의 악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속임으로 번창하고 거부가 되어 살지고 윤택하며 이익을 위하여 송사하고 재판을 공정하게 하지 않는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찌 이런 나라를 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루살렘은 멸망하였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예루살렘과 마찬가지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가 아니기에 그대로 내 버려두십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회개를 외치면서 오히려 권력과 야합하고 세상의 영광을 위한 회개를 외치는 자들이 바로 거짓 목사들이며 권력화 된 목사들입니다. 그래서 31절을 보시면 선지자들이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이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는데 내 백성을 그것을 좋아하니 너희가 마지막에 어찌 하려느냐고 합니다. 이 본문의 말씀이 한국 교회의 현실과 어찌 이리 닮아있는 모습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회개를 하자고 합동과 통합의 대형교회가 연합하여 회개한다고 야단입니다. 교회 안에서 재정을 맡았던 장로가 자살을 하고 교회를 개혁하자는 자들을 교회당에 들어오지 못하게 바리게이트를 치고 목사를 반대하는 자들을 뒷조사하여 고발하겠다고 나서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그러한 권력자들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런 일들과 나는 상관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우리도 다 이와 같습니다. 우리도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나에게 유리한지를 생각합니다. 이것은 계산적이라기보다 본능적입니다. 목사들이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4~5명만 모여도 한국교회에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고발과 한국교회의 현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바로 나의 이야기로 받아지지 않으면 회개라는 것은 강 건너 불구경입니다. 회개할 것이 없는데 무슨 회개를 할 것이 있느냐는 태도라면 이 말씀은 우리와 아무른 상관이 없는 말씀이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도 상관없는 자들이 됩니다. 

지난 주 목요일과 금요일 학생회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어떤 심정이었는가 하면 밥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밥 한 숟가락 먹이려고 아이의 온갖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밥을 먹이는 그 심정이었습니다. 비가 오는데 바비큐 만들어 먹이느라 연기 마시며 고기 구워 먹이고 아침에는 계란말이까지 해서 먹이고 간식도 먹입니다. 여교사가 없어서 저희 집사람도 따라가서 밥을 해 먹입니다. 그런데 말씀시간에 학생들의 관심과 반응을 보면 도대체 왜 이 짓을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더구나 회개하라는 말이 들리기는 하겠습니까? 아예 오지 않은 학생들도 많았지만 이런 학생들이 자라서 여기 앉아있는 여러분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회개하라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7~9절을 다시 봅니다.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바리새인들과 사두 개인들은 회개할 것이 없다고 여기며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을 정도로 율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회개를 요청합니다.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는 자들, 율법을 다 지켜 행하는 자들에게 무엇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까? 

10절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종말론적인 회개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오시면 구원과 심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종말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요한도 그리스도를 증거 하면서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증언합니다.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그리스도가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것은 천국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면 다시 자기들의 행위를 돌아봅니다. 그러면서 회개하라고 요구하는 목록들을 말해주면 그것을 행하면 회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10절에서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는데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합니다. 여기서 좋은 열매가 단수일까요? 복수일까요? 단수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들이 아니라 열매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회개를 요청받을 때에 계속하여 나의 행위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대차대조표를 마음으로 만듭니다. 때로는 직접 손으로 써보기도 합니다. 철저한 회개를 한다고 그렇게 합니다. 선한 일은 무엇인지 악한 일이 무엇인지 그래서 선한 행위와 악한 행위를 점수로 환산하여 자기 나름의 커트라인을 정합니다. 그 커트라인은 목사의 설교를 참고하여 이웃과 비교하면서 작성합니다. 그래서 점수가 모자란다고 생각하면 더 열심을 내고 점수가 남으면 여유를 가집니다. 이런 식으로 하는 회개란 선악과 따 먹은 죄의 결과입니다. 

좋은 열매란 복수가 아니라 단수라는 말에 힌트가 있습니다. 이 열매란 사람이 이것저것을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가 무엇인지 그 근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주 인용한 예레미야 2:13절을 보시면 이스라엘이 두 가지 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 이 모습은 에덴동산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고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은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죄란 생명의 근원에서 끊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이 생명의 근원에 다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열매를 맺는 다는 말이 여러 가지 열매들을 내어 놓은 것이 아니라 생명의 근원에 접속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미 죄인이 되어 육체가 되어버린 인간들은 결코 스스로 회개할 수조차 없는 혈과 육이 되어버렸습니다. 

고린도전서 15:47~50절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혈과 육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 받을 수가 없습니다. 혈과 육의 최고의 경지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가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는 일은 혈과 육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언약을 다 이루시고 자기의 영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셔야 됩니다. 이렇게 되면 죄를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6:7~11절입니다.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성령이 임하여 알게 되는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고 사람이 회개하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는다는 자기의 행위를 내어 놓는 것을 회개라고 여깁니다. 이런 회개란 가면 갈수록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것을 회개에 합당한 열매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15:1~6절입니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이 본문의 말씀이 회개의 말씀으로 보이십니까? 죄란 생명의 포도나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그로부터 진액을 먹고 마시는 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그의 살과 피가 우리의 영원한 양식임을 믿고 사는 자들은 자신의 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주의 은혜임을 아는 자들입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면 떨어진 그 순간 이미 그 나무는 죽은 나뭇가지가 됩니다. 그러나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가 맺힙니다. 그런데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자기의 조금 남은 푸른 기운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열매하나 내어 놓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됩니다. 이런 가지들은 다 모아서 불에 살라버립니다. 그러므로 도끼가 나무에 놓였으니 열매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는 한 말씀을 위하여 예레미야와 고린도전서와 요한복음까지 찾아보았습니다. 

본문 11절입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줍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한 세례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회개란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서 천국을 맞이하기 위한 증인의 세례입니다. 바로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증거 하는 세례입니다. 이 세례도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이기에 지난주에 잠시 말씀드린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지금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어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그림자를 약속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요한의 세례입니다.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풀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을 증거 합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신데 자신은 그의 신을 들기에도 부족하다고 합니다. 신을 드는 일은 종이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은 자신이 종으로서 섬길 수도 없을 정도로 높으신 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요한복음에서 보면 제사장들이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네가 누구이며 왜 세례를 베푸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요한이 하는 말이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불이 아니라 성령과 불의 세례입니다.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성령운동 한다는 사람들이 하도 성령의 불을 받으라고 하면서 들고 뛰면서 사람들의 열심을 쏟아내게 하였기에 이런 말씀을 보면 성령이 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히 성경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 자기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이라고 증거 합니다. 더 세분하면 성령의 세례와 불의 세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령을 이야기하면 무언가 뜨거운 것을 자꾸 연상합니다. 부흥사들이 불 받으라는 말을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사도행전 2장에 성령이 불의 혀 같이 임하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합니다. 이것은 오순절에 성령이 가시적으로 임한 현상을 말한 것이지 성령의 불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불의 혀라고 하는 것은 이제 복음이 온 세상에 말로 증거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성령의 불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가 임하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요엘서 2:28~32절입니다.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이 예언의 성취를 사도행전에서 봅니다. 

사도행전 2:17~21절입니다. “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18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20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말세의 특징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납니다. 불과 피와 연기기둥하면 무엇이 생각이 납니까? 심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의 때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심판과 구원이 일어나는 것을 지금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인 세례 요한은 자기 뒤에 오실 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면 자기 죄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면 무엇이 죄임을 알게 됩니까? 앞에서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믿기 보다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기의 행위를 믿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자들은 결국 불로 심판을 받습니다. 불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더러운 것을 정화시킨다는 이미지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종말에서 불의 이미지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요3:1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후로 이미 세상은 종말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신다는 말씀이 무엇인지 12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나중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지금 종말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궁금해 하시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심판이라고 하였는데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심판을 당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 심판을 받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구원과 심판을 이 세상의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성공과 세상의 영광을 구원으로 보고 세상의 실패와 세상의 좌절을 심판으로 보는 견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가려놓아 영광의 주를 보지 못하게 막았기 때문입니다(고후4:4).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디서 다 이루었습니까?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다 이루신 성공의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자들의 다 이룸의 자리도 어디여야 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면 분명히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완전한 자기 부인이 일어난 곳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혈과 육으로 이루어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자기 언약대로 일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약속을 다 이루게 하시고 그 영을 보내셔서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 역사 내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들이 다 털려져 나가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모든 것들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고민하고 아파할 것들인지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필요 없는 것들을 지금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회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일어나는 자들은 오직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전적으로 의지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예수님을 믿는 것이 주님께서 성령으로 일으키시는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일어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회개란 사람이 조작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일어나는 회개입니다. 이러한 회개가 우리에게도 날마다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