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11   시험받으신 예수님     2014. 8. 31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물세례를 받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은 죄인들과 연합되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의란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의 영광이기에 하나님의 아들을 위하여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아담이 실패하고 이스라엘이 실패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어내시는 그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 시작이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이며 그 완성은 불의 세례 곧 심판인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다 이루신 십자가로 인하여 마귀를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이 일어납니다. 

갈라디아서 4:4~7절입니다.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때가 되어 그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아들의 명분을 얻고 아들이 얻을 유업을 받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이 율법 아래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4:14~18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혈과 육에 속하심은 혈과 육에 속하였기에 죽음에 종노릇하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시기 위하여 그 배후에 있는 마귀를 멸하시는 것입니다(요일 3:8).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두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자기에게 주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구원하시는 일이시며(요6:39) 이 일을 위하여 마귀를 멸하셔야 합니다. 마귀는 하늘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였습니다. 이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반역하여 하늘에서 쫓겨난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반역하게 만들어 자기편을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귀를 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십니다. 광야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에 광야를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마태의 복음을 듣는 일차적인 대상이 유대인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실패한 광야의 시험을 예수님이 받습니다. 

본문 1~2절입니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님께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미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물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여주신 것은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이 분이 바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심을 증거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기 위하여 광야로 가서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사십일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40일 동안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는 동안 떡도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출34:28). 

마태복음의 일차적인 독자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40일 주야로 금식하신 말씀을 유대인들이 들으면 모세의 금식을 기억하게 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하여 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출애굽 또는 영원한 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하여 40일 금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40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사십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전체사역과 성도의 일생도 다 40이라는 숫자에 담을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험을 받는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의 시험에서 실패합니다. 그럼에도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내심으로 자기 백성을 아버지의 나라로 이끌어 들어갈 것을 보여주십니다. 

본문 3절입니다.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십일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예수님께서 시험하는 자가 시험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이 유혹을 하면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는 조건을 걸고 나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위에서 두 가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마귀를 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혹하는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과시해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 아들의 능력으로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 유혹은 지금도 계속되는 유혹입니다. 네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이 모양으로 살고 있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 먹고 잘살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는 너희 집은 이 모양 이 꼴이냐고 아마 이번 추석에도 형제들을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를 듣기 싫어서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세상의 복을 받아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교회에서 들어왔습니까! 

그런데 이런 시험이 누구에게서 옵니까? 마귀입니다. 마귀의 유혹인줄도 모르고 우리는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기도하며 헌신했습니까? 그러므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이제부터 기도 안하기 헌신 안하기로 나가는 것이 마치 복음인양 착각하지만 그런 착각이 들어야 복음을 제대로 전한 것이 됩니다. 마귀가 무엇을 심어놓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제대로 파악해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부와 성공이란 하나님께 구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신이 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잘 믿어 이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에게 유혹받아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아버지는 마귀라고 하셨습니다(요8:44). 

마귀의 시험은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합니다. 배고픈 시절에는 먹는 것만 주어지면 만족합니다. 그러나 먹는 것이 채워지면 다른 유혹이 또 나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 목구멍이 포도청, 수염이 석자라도 먹어야 산다, 사흘 굶어 담 넘지 않을 자 없다는 말들은 다 먹는 것의 중요함을 말합니다. 우리가 혈과 육을 가지고 있는 한 배고픔이 있고 밥을 먹어야 삽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40일을 주리신 후에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입니다. 이 시험에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본문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은 떡이 있어야 살지만 그 떡만 채워진다고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산다면 이것은 썩는 양식입니다. 이것으로는 결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나선 수많은 무리들이 다 썩는 양식을 보고 따라 왔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썩지 않는 양식은 곧 예수님 자신의 살과 피가 됨을 요한복음 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살 것이라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배경이 있습니다. 

신명기 8:1~3절입니다. “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는 이미 광야 40년을 지난 후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만나를 주시면서 일용할 양식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시험에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많이 거두어 남겨두었다가 썩고 벌레가 생겼습니다. 안식일에는 거두러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나가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광야 40년 동안 낮추시고 주리게 하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살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 40년이 성도의 일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낮추시고 주리게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낮추어지고 주리게 될 때에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천지 만물이 다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말씀으로 유지되며 말씀으로 결론이 납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가 알고 믿게 되었다면 참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썩는 양식위하여서만 살수가 없게 됩니다. 썩지 아니할 양식인 말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태어난 자가 젖을 빨듯이 거듭난 자라면 반드시 말씀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모든 유혹이 올 때에 하나님의 말씀만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고 합니다. 역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고 하면서 이번에는 마귀가 성경말씀을 인용합니다. 인용한 성경은 시편 91:11~12절입니다. “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12 그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아니하게 하리로다” 

마귀가 말씀을 인용하여 유혹합니다. 앞에서 번영신학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번영신학이든 신비주의이든 금욕적이든 간에 다들 무엇을 인용합니까? 성경을 인용합니다. 모든 이단들이 다 성경을 인용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인용하면서 자기들의 욕망대로 성경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욕망을 위하여 성경을 비틀고 왜곡하기를 원어까지 동원하여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사가 성경을 인용하면서 설교할지라도 그 목적이 과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끝까지 잘 들어보셔야 합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책인데 성경으로 얼마나 다른 것들을 전하는지 여러분이 분별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보암직한 것을 내어 놓아보라고 합니다. 

‘사람이 밥만 먹고 사나!’ 이 말은 언제 하게 됩니까? 일단 밥 먹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오는 말입니다. 정말 배고 고프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밥만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배가 부르면 이제부터 다른 생각이 납니다. 보암직한 것의 욕망이 나옵니다. 지금 한국은 이미 배고픔을 지나 보암직한 것으로 들어선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보암직한 것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배고플 때의 구하는 것은 배고픔을 면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보암직한 것들을 원합니다. 

예배당도 보암직해야 하고 목사도 보암직해야 합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씀을 인용하면서 마귀가 유혹하듯이 온갖 성경 구절들을 앞뒤 문맥 다 무시하고 자기가 원하는 몇 단어들을 조합하여 사람의 보암직한 욕망을 추구하게 만든다면 이것이 마귀의 유혹이 역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런 보암직한 것들은 윤리 도덕적으로도 나옵니다. 교황의 모습으로 나오기도 하고 밥을 퍼주는 모습으로도 나옵니다. 정작 주어야 할 생명의 말씀보다 외형적이고 종교적인 기적들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마귀의 시험입니다. 이런 시험을 예수님은 어떻게 물리치십니까? 

본문 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마귀가 보암직한 유혹을 제안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신명기 6:16절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칩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맛사 사건입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르비딤에 장막을 쳤지만 마실 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갔는데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와 다툽니다. 이때 모세가 왜 여호와를 시험하느냐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은 출애굽 시켜 놓고 여기서 목말라 죽게 한다고 원망한 것입니다. 이때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나일 강을 치던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고 합니다. 이 부분의 말씀을 봅니다. 

출애굽기 17:6~7절입니다. “6 내가 호렙 산에 있는 그 반석 위 거기서 네 앞에 서리니 너는 그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오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신명기에 맛사 곧 므리바 사건처럼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한 말씀을 예수님께서 인용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시험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이 도대체 우리와 함께 하시느냐는 의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가는데 주리고 목마르게 하시는 하나님을 여러분은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희생으로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반석위에 하나님께서 서시고 그 반석을 치라고 합니다. 반석을 치자 물이 나왔습니다. 이 반석은 그리스도라고 바울사도가 증언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들에게 보암직한 것을 제공하여 이루어내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자기 약속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유혹받습니다.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데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은 무엇이 보여 지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유혹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본문 8~11절입니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세 번째 유혹입니다.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세상의 영광으로 유혹합니다. 마귀를 멸하고 자기 백성을 구속하는 일은 자기 죽음으로 이루어내셔야 하는데 세상의 영광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내라고 마귀가 유혹합니다.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주 너희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합니다. 신명기 6:13절의 말씀으로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그러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귀가 예수님을 떠난 것은 누가복음에 보시면 마귀가 얼마동안 떠났다고 합니다. 얼마 동안 떠났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 계속 마귀의 유혹이 나타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의 압력도 유혹일수 있습니다. 그 압력에 굴복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됩니다. 심지어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십자가 지지 못하도록 말리고 나서는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유혹의 정점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마태복음 27:39~42절입니다.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이것이 최후의 유혹입니다. 최후의 유혹도 최초의 유혹처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너를 구원하여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어떤 표적도 기적도 없기 그저 다 이루었다고 하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표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영광이 될 것을 예수 믿는 표적으로 구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빌립보서 3:18~19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 누구입니까? 십자가의 원수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이들의 신은 그들의 배라고 합니다. 그들의 욕망이 신이라는 말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광이라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며 땅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그대로 넘어간 자들이 광명의 천사처럼 위장하고 있습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는 자들이 아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빌립보서 3:20~21절입니다.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립니다. 그가 오시면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아무리 낮아져도 괜찮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왜 그 꼴이냐고 조롱할지라도 그런 조롱이 유혹임을 알고 사탄아 물러가라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이것은 우리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후손들 중에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불러내셔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이들도 역시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이길 자가 없습니다. 이런 유혹에 완전히 사로잡혀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고 있는 이 땅의 현실입니다. 이런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유혹을 받으신 것은 마귀를 멸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을 완성하신 자리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란 모든 유혹을 이기신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사탄의 유혹에 빠진 자들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그 아들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이루신 십자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