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11   사람이 받는 시험     2014. 9. 7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ㄱ)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ㄴ)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ㄷ)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ㄹ)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지난주에 본문의 말씀으로 시험받으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보았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셔야 하는지 간단하게 두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것처럼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기신 자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시고 다 찾아내시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요한복음 6장을 통하여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장은 오병이어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사람들의 반응과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시려고 하시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떡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지난주 본 예수님의 받으신 첫 번째 시험이 무엇이었습니까?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먹고 사는 경제문제 해결해주시는 임금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요구를 물리치기 위하여 산으로 피하여 가 버렸습니다.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언제 여기에 오셨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를 찾은 이유는 먹고 배불러서 찾아왔다고 하면서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썩지 아니하는 양식은 하나님을 위한 일인 줄 알기에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십니다(요6:29). 그러자 사람들은 당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늘로서 내리는 만나를 먹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양식을 먹은 자는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참 생명의 떡을 주신다고 하시자 그런 떡을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을 봅니다. 요한복음 6:35~40절입니다.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며 영원한 생명수가 됩니다. 먹어도 다시 배고프고 마셔도 다시 목마른 세상의 떡과 세상의 식수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신에 사로잡힌 자들의 요구는 먹고 배부른 것과 보암직한 것들과 세상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들입니다.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눈과 귀와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누구도 사람의 능력으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알고 오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오는 자들은 자신의 혈과 육의 능력이 아니라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만 오게 됩니다. 이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세상의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이 자랑이 될 것을 구하려고 오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로 예수님께 오는 자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여자 아래 나셨으며 율법아래 나셨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이 받으시는 물의 세례를 받으시고 죄인들이 받는 시험을 받으시고 죄인들이 받을 저주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자기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찾아내시는 것이 예수님이 이루시는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죄인들이 받는 시험과 죄인들이 받는 저주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기에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시험도 없고 십자가도 없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게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길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앞의 말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시험에 들고 저주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을 잘못 섬겨서 그렇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면 예수님께서 대신 고난을 받으셨기에 성도에게는 고난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주장을 번영신학을 주장하는 자들이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구절도 인용합니다. 이들이 주로 인용하는 성경구절이 이사야 53장입니다. 

이사야 53:4~5절입니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께서 질병과 고통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기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질병과 고통도 없어야 하고 슬픔도 없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질병과 고통과 슬픔이 성도에게 온다면 이것은 예수님을 잘 못 믿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이런 질병과 고통과 슬픔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으로 주일성수, 십일조, 교회 헌신과 봉사, 주의 종 잘 섬기기 등으로 말합니다. 이런 것을 한 마디로 번영신학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람이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입니다. 그 설교를 들으면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드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잘 못 섬겨서 오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몸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이러함에도 사람들은 분별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4:1~4절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3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이 세상의 신이말씀을 혼잡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보지 못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합니다. 

5~7절입니다. “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이 세상의 신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다 혼미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어두운데 빛이 있으라고 하신 그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아는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런 자들은 어떻게 살게 됩니까? 세상에서 질병과 고통도 없이 승승장구 하면서 영광스럽게 삽니까? 이렇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이 세상의 신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봅니다. 

8~12절입니다.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박해를 당합니다.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집니다.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집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예수의 생명이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생명이 나타나는 성도들이라면 날마다 욱여쌈과 답답한 일과 박해와 거꾸러뜨림과 죽음에 넘겨지는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망하는 일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13~18절입니다. “13 기록된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왜 성도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지만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게 하시기 위하여 이렇게 하십니다. 겉 사람만 있는 사람은 예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추구하게 됩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영광이 될 것만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속사람이 있는 사람은 이런 것들을 추구하다가 낭패와 실망을 당합니다. 주리고 낮추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4장 한 장만 보아도 번영신학이 너무나 비성경적임이 드러나는데도 사람들은 그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에 환호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의 신이 그들에게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막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고린도후서 11:1~4절입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하였습니다. 이 미혹이 무엇입니까? 미혹을 받아서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보였습니다. 

오늘날도 이 세상의 신이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 미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지 못하게 합니다. 바울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열심을 내는데 그것은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이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증거 한다는 자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중매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로채고 있다면 이것은 도둑놈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얼마나 잘 따라가는지 지금 바울사도가 책망하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미혹에 잘 넘어가는 것입니까? 

13~15절을 봅니다. “13 그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속이는 일꾼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거짓 사도이며 속이는 일꾼인데도 왜 사람들이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사탄이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속이는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무엇입니까? 

요한일서 2:15~17절입니다.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소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여 기도하고 헌금하고 교회 다녔다면 이 세상의 신에 속은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시험은 누구에게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야고보서 1:12~15절입니다. “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2절에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13절은 하나님은 시험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동번역으로 읽어보겠습니다. 

“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련을 이겨 낸 사람은 생명의 월계관을 받을 것입니다. 그 월계관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13 유혹을 당할 때에 아무도 "하느님께서 나를 유혹하신다" 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의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사람을 유혹하실 분도 아니십니다. 14 사실은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당하고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15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 옵니다.” 

공동번역에서 12절의 시험을 시련으로 13절의 시험을 유혹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훈련하시기 위하여 시련을 주시지만 유혹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유혹을 받으실 분도 아니시지만 악을 행하도록 유혹하지도 않습니다. 사람이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서 유혹을 받고 그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자라서 죽음을 가져 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미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은 인생의 모습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욕심에서 스스로 벗어날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이 유혹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어느 누구도 스스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어지는 야고보서 1:16~18절을 봅니다. “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속지 말라고 합니다. 모든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그 선물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합니다. 이를 위하여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죄 아래 오셔서 시험을 받으시고 그 시험을 이기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구속하여 내셨습니다. 이것은 반드시 마귀의 일을 멸하셔야 일어나는 일입니다. 

히브리서 2:14~18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사람이 유혹을 받아 넘어간 것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오는지 미혹의 영이라고 합니다. 노골적인 유혹이 아니라 하나님의 천사처럼 의의 일꾼처럼 가장하고 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은 이런 유혹을 받을 때에 이미 예수님께서 이런 유혹을 다 받으시고 그 유혹을 이기신 분이시기에 유혹 받는 자들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도우십니까?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십니다. 이러한 도움을 우리가 받는 일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많은 유혹을 받는지를 알아야합니다. 오늘 사람이 받는 시험, 사람이 받는 유혹이 어떠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이러한 유혹이 어디에서 어떻게 오는지를 아는 것이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4:12~13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합니다.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검으로 수술을 받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마귀에게 속고 살았는지가 드러납니다. 그동안 우리가 하나님을 섬긴 것이 아니라 광명의 천사로 나타난 마귀에게 속아서 마귀를 섬긴 것이 말씀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만한 것들을 얻기 위하여 종교생활 한 것이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심으로 우리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게 가는 것입니다. 

다시 히브리서 4:14~16절입니다.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의 어떠함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유혹은 이미 아담의 모든 후손들에게 다 있는 유혹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의 될 만한 그런 유혹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보았습니다. 이런 유혹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정성 바친 것이 바로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물욕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아주 착하고 고상하고 청빈하며 율법을 잘 지키는 모습으로도 나옵니다. 이런 것이 더 무서운 유혹입니다. 이러한 유혹을 받고 살면서 자기들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 아비가 마귀라고 하셨습니다(요8:44).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주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말씀을 잘 알아듣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얼마나 마귀에게 속고 살아왔는지를 벌거벗은 듯이 드러나게 되어야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에게로 피하여 갑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지 드러남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부터 주어지는 한량없는 십자가의 공로를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에게 나누시는 명절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