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3:13~19 열두 제자를 부르심 2018. 11. 11

 

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1)가나나인 시몬이며 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제자를 세우시는 내용입니다. 제자를 부르시는 내용은 1장과 2장에도 나옵니다. 1:16~20절입니다. 봉독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예수님의 전권이 드러납니다. 직업과 부모를 버려두고 즉시로 따라 나섭니다. 2:14 절입니다. “봉독 세리를 제자로 부르심에 대한 논쟁의 결론은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이렇게 직접 부르신 제자들만이 아니라 수많은 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오늘 본문 13절입니다. 또 산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산에 오르신다는 것은 무리와 떼어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이라고 하면 중요하게 여기는 산이 시내산과 시온산입니다. 시내산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산이며 시온산은 다윗이 준비하고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산은 그 두 산이 아닙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은 모세와 다윗보다 더 권세 있는 말씀의 선포가 이루어집니다. 산으로 오르시면서 자기기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왔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셔서 부르신 자들은 나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16~19절을 먼저 봅니다. 열둘을 세우셨다고 합니다. 열둘이라고 하면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도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생각하게 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열두지파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열두 지파가 되기까지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씨를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아브람과 사래 사이에 자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삭을 낳기까지 아브람과 사래는 믿음 없는 일을 합니다. 그 믿음 없는 일이 이스마엘을 낳은 사건입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나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13년 동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브람 99세 때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17:1).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가 있습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은 자기 약속에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약속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여종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입니다. 이것을 바울사도는 하갈이 시내산이며 예루살렘이며 종이라고 합니다(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시고 다시 이삭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이름도 아브라함과 사라로 바꾸어주십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사라가 다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할례를 행한 아브라함과 생리가 끊어진 사라에게서 이삭이 태어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이루어내시는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삭을 통하여 야곱이 태어나고 야곱을 통하여 12아들이 태어나고 이스라엘이 됩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하여 바울사도는 어떻게 말하는지 보겠습니다.

 

로마서 4:13~17절입니다. “13 아브라함이나 그 2)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2)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과 야곱을 주셔서 열두 아들을 주시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형성되는 것은 율법으로 된 것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인간이 지켜내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방인인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자녀가 됩니다. 이것이 열두 지파를 통하여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었다고 합니다. 이삭은 없는 데서 생겼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의 예표도 되지만 성도가 만들어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시고 만들어 내시는 그 내용을 지금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열둘을 세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 가실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전권을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주와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부름 받은 자들이 열두 명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스라엘 열두 지파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였기에 결국은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기에 구약은 그림자의 역할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완성하십니다.

 

본문 16~19절을 봅니다.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다고 합니다. 시몬에게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십니다. 베드로는 반석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여 주신 바른 신앙의 고백을 보시고 반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저주 맹세하면서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별명이 우레의 아들입니다. 자기들을 영접하지 않는 사마리아 마을을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살라버리자고 한 사람입니다. 안드레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라고 합니다. 제자들의 특징들이 복음서에 다 나옵니다만 마지막 제자는 가룟 유다인데 예수님을 판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처음 이름이 나온 베드로도 십자가 앞에서 세 번이나 부인 한 사람이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버린 자입니다. 이런 자들 열둘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다고 합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의 형성과 예수님께서 부르신 열두 제자들의 모습을 간락하게 살펴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을 왜 부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증거 하는 자들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배신하여 예수님을 팔아버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나라는 전혀 방해받지 않고 오히려 그 일로 인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네 할 일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러 나가시고 난 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3:41절입니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제자가 예수님을 팔러 나간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자신이 영광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죽으심이 예수님이 영광을 받는 일이며 예수님으로 인하여 하나님도 영광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열 둘 중에 가룟 유다를 원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14장부터 보시면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과 처소를 마련하신다는 말씀이 결국은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면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 하나님 아버지께 그 아들 안에 계심과 같이 십자가로 자기 백성들을 그 안에 넣어주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15절입니다. 열두 제자를 세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도 하게 하시고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는 권능도 가지게 하시려고 열둘을 세우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이 제일 좋아 보입니까?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면 좋겠지요!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하여 빙의(憑依)나 축사(逐邪)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얼마나 강한지 쫓아내는 자들이 온 힘을 다하여도 잘 물러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 귀신들은 어떻게 합니까? 벌벌 떨면서 벌써 우리는 멸하려고 오셨느냐고 항복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제자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모습이 어떤지 바르게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열두 지파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생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위하여 새롭게 창조하여 내시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기 백성 만들기 또는 하나님의 자기 아들 만들기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관계적인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남편과 아내, 왕과 백성, 목자와 양, 포도나무와 가지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열둘을 부르시고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통하여 예수님의 말씀과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알고 맛보고 누린 그 나라를 전하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의 수많은 전도 방법론은 교회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효과 있는 전도방법으로 선전합니다. 이런 전도 방법을 사용하였더니 어느 교회는 숫자가 얼마나 늘었다는 것을 교계 신문에 광고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거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누린 자들이 전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전도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주인공이기에 그 예수님께 나아와서 용서를 받고 그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귀신을 쫓아내는 권능을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니 무당들이 밤새 푸닥거리 하면서 귀신을 쫓아내는 시늉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온갖 드라마나 영화를 통하여 구마사(驅魔師)들이 축사(逐邪)하는 것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게 하시는 권능을 주신 것은 개인적인 축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에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서도 인정받고 칭찬 받는 사람이라고 하여도 그가 공중 권세 잡은 자 아래 갇힌 자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3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1)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이 모습이 공중 권세 잡은 자에게 붙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면 그것이 전도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0:4~6절입니다.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6 너희의 복종이 온전하게 될 때에 모든 복종하지 않는 것을 벌하려고 준비하는 중에 있노라사탄의 견고한 진이라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진 이론과 생각입니다.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이 죄와 사망아래 갇힌 것입니다.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여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예수님과 함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거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시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기 백성들을 창조하여 내셔야 하시는 것을 성경이 계시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도 전에 아담의 옆구리에서 갈비뼈를 취하여 하와를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라고 바울사도가 에베소서 5장에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옆구리를 찔리시고 물과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자기 신부된 교회를 만들어 내시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이러한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주님은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13~15절을 다시 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 첫 번째가 예수님과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하여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하여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복음을 전하여 귀신에 붙들려 있는 자들, 죄와 사망에 갇힌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믿고 돌아오게 되면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그리스도에게 중매한다고 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21~23절입니다.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의 뜻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임마누엘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주님이 영원한 생명이시기에 주와 함께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부르시고 전도하게 한 목적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거함이 영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