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7~12 그리스도의 선물  2013. 5. 12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여러 가지 선물할 일들이 많습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은 다 아실 것이고 또 한 날이 있습니다. 5월 21일인데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둘이 하나 되자는 뜻으로 21일을 정하였습니다. 창원시 명곡동이 부부의 날 발원지로 도로의 이정표에도 붙어있습니다. 이 날은 만든 사람은 권제도 목사 부부에 의하여 1995년 만들어졌는데 이 운동이 2003년에 민간단체 부부의 날 위원회가 국가 기념일 제정을 위한 청원을 하여 국회 본회의에서 결의가 되어 2007년에 법정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념일이 되면 선물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이런 날들을 만들어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요? 판화가 이철수씨의 노모께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놈들이 어버이날을 만들어 가지고,,, 나는 매일 어버이 날이다. 신경 쓰지 말고 너희들 일해라” 요즈음 말로 쿨 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사노라면 이런 저런 기념일과 명절에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선물인데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일까요? 돈 일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보다 더 위력을 떨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선물을 무엇일까요?

 

로마서 6:23절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어떤 사람도 사망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사망으로 가고 있는 자들이 사망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망을 자꾸만 미래로 미루어두면서 죽음의 이야기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진리가 모든 사람이 죽는 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죽음의 이야기를 재수 없는 이야기로 꺼리는 이야기로 터부시하는 것은 그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내일로 미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2:13~20절을 보시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청하기를 자기 형을 명하여 유산을 자기와 나누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고 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이 사람은 자기 형이 유산을 가로챘기에 정당한 몫을 달라고 청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조차 탐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비유로 하신 말씀이 한 부자가 많은 소출을 거두어 창고를 늘려서 쌓아두고서는 자신이 자기 영혼에게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합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합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부자가 오늘 저와 여러분이지 않습니까? 늘 소망하는 바가 재물을 쌓아두고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밤에 내 영혼이 어떻게 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부자에게만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재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삯인 사망의 문제가 해결이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만 우리 모두는 사망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아두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무엇이 진짜 선물일까요?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에게 세상의 무엇이 그에게 선물이 될까요? 사면! 석방! 이보다 더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

 

다시 로마서 6:23절을 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은사라는 말이 선물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여기서 은사를 헬라어로 ‘카리스마’라고 합니다. 카리스마는 흔히 은사를 말할 때 사용하지만 영생은 ‘은사’라기 보다는 ‘카리스’ 라는 은혜가 더 적당한 번역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우리의 생각이고 성경은 은혜와 은사를 이렇게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말씀은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카리스마’를 주셨다고 해야 하는데 ‘카리스’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은사를 함께 사용합니다. 그것은 둘 다 선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 성령, 한 주께서 주시기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물이란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크고 영원한 선물은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선물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신 것입니까?

 

히브리서 2:14~15절입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어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시고 하늘에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죽기를 무서워하여 한평생 그 두려움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은 놓아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 해방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승리입니다.

 

골로새서 2:12~15절입니다.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그러므로 십자가가 성도에게 선물입니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자기 백성을 함께 품고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성도의 승리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을 한량없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본문 7절을 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을 분량대로 주셨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4:1~6절을 통하여 그렇게 하나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각 사람에게 라고 개별적인 내용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방금까지 성경 몇 곳의 말씀을 드린 것은 가장 근원적인 선물을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선물은 모든 성도가 다 동일하게 한가지로 받습니다. 그런데 이런 성도들에게 다양한 선물을 또 주십니다. 흔히 이런 선물을 은사라고 합니다만 그러나 은혜(恩惠)와 은사(恩賜)는 같은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둘 다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은사를 왜 주시는 것입니까? 개인적으로 보면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개인의 구원에 머무르는 구원이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시대가 워낙 개인주의가 발달한 사상으로 나타나기에 구원도 거저 자기 개인 구원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개인 구원이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개인을 구원한 목적을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목적을 모르기에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구원의 확신을 성경 몇 구절로 무장을 하고서는 일단 구원을 받아놓았다고 생각하고 현세와 내세에서 상을 많이 받을 것인지 적게 받을 것인지 머리를 굴립니다. 상은 적게 받아도 일단 구원을 받았으니 안심이라는 식입니다. 이런 구원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은혜와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1:11~12절입니다. “봉독”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흔히 은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은사를 주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구원을 말하려고 각 사람 에게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구원을 받았기에 각자가 받은 동일한 은혜가 있는가 하면 또 각자의 고유한 은혜들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몸에 사지백체가 있듯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여러 가지 기능들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게 하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은 자기의 은사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다음에 더 자세하게 직분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이러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일을 보겠습니다.

 

7절에서 11절로 바로 연결되는 것이 문장이 자연스럽습니다. 앞부분에서도 이런 부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왜 8절에서 10절이 중간에 있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선물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 사람의 개인적인 능력과 자질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 홀로 일하셔서 그 선물을 자기 백성에서 임의로 주시는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랑하기에 바쁘겠지요!

 

8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선물을 주셨다는 근거로 시편 68:18절을 인용합니다. 시편입니다.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바울사도가 시편을 인용하면서 본문과 다르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입니까? 시편에서는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신다고 되어 있는데 바울사도는 오히려 선물을 주신다고 합니다.

 

시편 68편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한 시편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아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한 승리는 다윗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므로 그런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여호와께서 용사가 되셔서 구원하여 나오신 것을 말씀합니다. 그처럼 지금 자신의 승리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승리하셔서 높은 곳에 오르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적들에게서 선물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고대의 전쟁은 이긴 왕이 적들에게서 선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받은 그 선물들을 왕이 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들에게 나누어줍니다. 이런 내용을 시편에서는 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다윗과 같이 동일하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하면서 선물을 주시는 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는 서로 충돌이 아니라 오히려 한 저자가 통일성 있게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편에서 승리하여 높은 곳에 오르신 주님께서 선물을 받으신다고 하신 이 말씀이 여호와의 전쟁이기에 여호와께서 높은 곳에서 내려오셔서 다윗을 위하여 전쟁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자기 언약을 이루시기 위한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전쟁은 장차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흐릿하지만 실체는 분명합니다. 다윗의 이러한 시편이 이제 바울에게는 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내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선물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올라가신 주님은 내려 오셨기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땅 아래로 내려오신 것이 성육신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자기비하입니다. 스스로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신 것입니다. 이렇게 땅에까지 낮아지신 분이 바로 앞에서 보았던 히브리서 2장과 골로새서 2장의 말씀처럼 죽음의 종노릇 하는 자들을 그 죽음의 권세들을 십자가로 승리하셔 함께 하늘에 올리신 것입니다. 그 올리심은 먼저 십자가에 들리시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2:32~33절입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예수님께서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끄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들리신다는 것은 먼저 어떤 죽음을 죽을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들리심은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나무에 달린 것입니다. 그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과 연합하여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서 함께 하늘에 올라가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20~23절입니다.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하늘 위에서 내려오신 분이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이 아들을 하나님이 하늘로 올리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교회의 머리이시기에 그의 몸도 함께 올리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4~9절입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 그리스도 혼자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도 함께 올라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을 묵시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시간과 공간이라는 이 역사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무엇을 만들어낼까요? 묵시가 역사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묵시의 목표가 와성되면 이 역사는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디에 소속 되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동일한 선물을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며 한 형제며 자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선물을 받으셨습니까? 받으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빌립보서 3:17~21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그리스도의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면 이런 말씀에 아멘이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런 자들은 서로 돌보며, 환난 중에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립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