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7~12 각 사람에게 주신 선물 2013. 5. 26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4:1~6절까지는 교회의 하나 됨을 말씀하였습니다. 그런데 4:7절부터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 은혜는 ‘카리스’로 사용하였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사라는 ‘카리스마’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와 은사는 같이 사용합니다. 그 이유는 주시는 분이 땅 아래 내려오셔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고 위로 올라가셔서 선물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선물을 우리가 원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시고자 하시는 분의 뜻대로 주십니다. 이렇게 선물을 주시는 것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의 만물은 교회로 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22~23절입니다. “22 또 만물을 그의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교회 즉 성도는 모든 사람이 다 은혜와 은사를 받았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만이 특별한 은사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엉터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다 은혜와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주신 직분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 직분들은 임시적인 것이 있고 항존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흔히 교회에서 말하는 항존 직과 임시직이라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장로교단의 헌법에서 교회의 직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교회의 창설직원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최초에 이적을 행할 권능이 있는 자로 자기의 교회를 각 나라 중에서 선발하사 한 몸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 직분에 대하여 오늘 주로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교회의 항존직입니다. 항존직은 장로와 집사인데 장로는 두 반이 있으니 강도(講道)와 치리(治理)를 겸한 자를 목사라 하고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합니다. 셋째로 교회의 임시직으로 전도사, 권사, 서리집사 등을 임시직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임시직이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임시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직접목격하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부르심을 입은 사도들이 성경이 완성되기까지 행한 직분이라고 해서 임시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사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도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직통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자들과 단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단체와 개인들이 있는데 다 말할 수는 없고 ‘새물결 플러스’에서 출판된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라는 책을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단체들이 지금도 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가 되는 기준을 성경에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1:1절입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사도는 사람들이 요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그리고 부활의 목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8절입니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서 부활을 목격한 자가 베드로와 열두제자와 오백여 형제에게 보이셨고 야고보에게도 보이셨고 맨 나중에 바울에게도 보이셨다고 합니다. 부활을 목격하였다고 다 사도는 아닙니다. 특별히 주께서 사도로 부르신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를 주시며 권능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증언이 성경으로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도들은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6:14~20절을 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열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열한 제자들이 마리아가 전한 부활의 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을 책망하시고 만민에게 복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하는 것도 사도에게 위임된 사항입니다. 또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나타난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고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낫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오늘도 믿는 자들에게 이런 표적이 나타난다고 하는 신사도 운동들이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이런 자들에게 킹코브라에게 한번 물려보라고 하시기 바랍니다. 독을 마시라고 하면 어떨까요? 그런데 믿는 자들에게 표적이 나타난다고 하면서도 자기들이 평소에 사용할 수 있는 것들, 방언이니, 쓰러짐이니, 그리고 병 고침도 애매모호한 것들만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사도들은 정말 죽은 자들을 살렸고 불치 병자를 고쳤고 독사에 물려도 죽지 않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이런 표적과 기적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시려면 왜 표적과 기적을 주시지 않으실까요? 그러므로 사도들에게만 나타난 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임을 사도들로 통하여 증거하고 그것을 기록된 말씀으로 남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기록이 완성이 되기까지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이 한시적으로 필요하였습니다. 신약에서 선지자들이 몇 곳에서 나타납니다. 이들은 사도들과 다릅니다. 그런데도 성경에 한시적으로 나타난 것은 역시 성경의 완성을 위한 임시직인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으로 한정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복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복음으로 각색하여 쏟아놓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복음을 내어 놓습니다. 표적과 기적을 좋아하는 자들은 그들의 구미에 맞는 것을 복음이라고 합니다. 번영을 좋아하는 자들에게 번영신학을 내 놓습니다. 지적인 것을 좋아하는 자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들로 즐기는 것을 내 놓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어떤 복음입니까?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표적도 세상의 지혜도 아닙니다. 표적이란 이적을 말합니다. 표적을 원하는 유대인들이 볼 때에 거리끼는 것이며 지혜를 찾는 유대인들에게 미련한 것으로 보이는 십자가에 못 박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입니다. 바울만이 아니라 베드로도 동일하게 이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보배로운 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를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이 전한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입니다. “봉독” 사도들이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다른 복음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왜 입니까? 다른 복음의 특징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종교적인 욕망들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사람들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직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전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걸림돌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완성되기까지 주어진 은혜와 은사들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복음 전하는 자들이 없습니까? 물론 지금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다른 복음을 전하게 되기 때문에 복음 전하는 자도 사도들에게 한정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은 목사와 교사만 있겠군요! 대부분 그렇게 봅니다. 그런데 사실 목사라는 말은 목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양들을 맡깁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사도들이 목자입니다. 교사도 사도들을 말합니다.

 

디모데후서 1:10~11절입니다.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바울사도가 자신을 복음 전하는 자, 사도, 교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신 것은 엄격하게 말하면 사도들로 한정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교회의 목사는 무엇입니까?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지면 그곳에 장로와 집사를 세웁니다. 그런데 사도들도 자신들이 장로라고 합니다(벧전5:1,요이 1:1.). 그러므로 사도들이 자신들을 사도, 복음 전하는 자, 목자, 교사, 장로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교회의 창설직원들이며 한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이 세운 교회에 장로들과 집사들을 세웁니다. 그러므로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나서 그런 교회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말씀들로 목회서신이 나옵니다. 이런 목회 서신에서는 사도들의 권능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장로와 집사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필요한 직분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2~13절입니다.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교회 안에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장로들을 말합니다. 오늘날 목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본받아서 권하고 가르치며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반드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로 세워진 사도들의 가르침인 성경을 따라야 합니다. 이들은 사도들처럼 표적과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니라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완성되고 종결된 성경의 계시를 가르치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성경에 더하거나 빼면 저주를 받습니다(계22:18~19).

 

이런 말씀을 드리면 고린도전서 12장을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1~31절입니다. “봉독” 상당한 많은 은사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은사들이 정작 무엇을 위한 은사들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은사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은사들은 초대교회 때에 한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31절에서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길을 보이겠다고 하신 것은 고린도전서 13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3:1~13절입니다. “봉독” 이것이 은사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사는 사랑으로 결론 내려지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거짓 사도들과 거짓 선생들이 성경의 사도들이 있을 때도 나타났는데 지금도 얼마든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3장에서 온전한 것이 오면 부분적으로 하던 것들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그 온전한 것이란 바로 성경의 완성이면 성경의 완성은 한 가지 사랑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각 사람에게 은혜와 은사를 주신 선물이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은혜와 은사이며 완성입니다.

 

나는 그런 것이 없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드러나는 어떤 직분만 은사이고 나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선장과 선원들은 선객을 위하여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드러나는 은사가 없다고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으면 그보다 더 큰 은사가 없습니다. 쉬운 예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직회를 하는데 일 년에 단 한 번도 발언하지 않는 분이지만 늘 참석하는 분이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재청합니다. 이 말도 한번 하지 않습니다. 보고받고 나서 받기를 가하십니까? 여기에 겨우 예라는 대답만 합니다. 본인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제직회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우리의 몸을 보시기 바랍니다. 눈이 중요합니다. 입도 중요합니다. 귀와 코 손과 발이 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다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심장이나 간이나 폐나 뇌와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고 몸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은사 없는 자가 없습니다. 아무 말이 없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있는 것이 더 큰 은사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목사를 보실 때에 얼마나 믿음이 없으면 목사를 맡겨서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게 하였을까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20:28~32절입니다.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 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여기서 감독이란 목사와 장로를 말합니다. 이들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피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보살피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은 모든 사람이 다 은혜와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은혜와 은사가 다 선물입니다. 이런 선물을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몸의 기능들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합니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영양분들이 어떻게 소화흡수가 되는지 우리는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몸의 여러 조직과 장기들과 세포들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자기의 일들을 묵묵히 해가고 있기에 우리의 몸이 유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을 받은 모든 개인들은 다 은혜와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지체들이 서로 자랑하거나 경쟁하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봉사하며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 위하여 오늘도 자기 백성들 각 사람에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은혜와 은사를 주십니다. 드러난다고 중요하고 드러나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 한 몸을 이루듯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부름 받았기에 서로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았다면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룬 자들이기에 서로 귀하게 여기시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