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11~12 직분을 주신 목적 2013. 6. 2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오늘은 교회에 직분을 주신 목적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임시적인 것이 있고 계속 있는 직분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직분들이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인데 이러한 직분들 중에 사도들에게 나타난 표적과 이적들은 성경이 기록되기 까지 있었던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표적과 기적들이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20세기에 미국을 중심으로 신사도 운동이라는 모습으로 일어났고 지금은 한국교회에도 도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노회 안에서도 이런 일로 목사가 면직이 되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여 해벌도 하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좀 더 말씀을 드립니다. 사도시대 이후에 표적과 기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뚝 끊어졌습니다. 사도들의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자들을 속 사도들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자신들과 사도들의 차이를 하늘과 땅 차이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 뒤에 일어나는 자들을 교부들이라고 하는데 교리를 세운 자들입니다. 이들도 전혀 사도들에게 나타난 표적과 기사들이 자기들에게 나타났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4세기에 들어서면서 기적이니 체험이니 신비적인 현상들이 교회 역사에서 나타납니다. 왜 그랬을까요?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국교로 만들면서 껍데기만 기독교라는 탈을 쓰고서는 온갖 이방의 종교적인 주술들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나온 것들이 서물숭배, 기적, 마리아 나타남, 베드로를 1대 교황으로 만들어놓고 자기들이 교황의 권세가 있다고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중세 교회의 타락은 천년을 이어갔습니다. 이때 종교개혁이 일어납니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성경 외에는 계시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의 표적과 기적들이 사도들이 성경을 기록하기 까지 임을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개혁교회가 5백년을 지나면서 다시 중세 가톨릭교회들이 사용한 온갖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색깔만 조금 다르지 가톨릭에서 천년동안 사용한 온갖 신비체험, 금욕주의, 은사운동들을 지금 교회들이 앞 다투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본 대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구원의 능력임을 사도들이 증거 하였습니다.

 

11절을 다시 봅니다. 그가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고 합니다. 이러한 직분의 특징은 전부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직분을 말할 때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란 바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기록이 되었으며 그 기록된 말씀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는지를 보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4~17절입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징계)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이별하면서 그들에게 교회를 감독하게 하면서 주님과 은혜의 말씀께 부탁한 것입니다(행20:32). 그러므로 목사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 가장 우선입니다.

 

이제 본문 12절의 단어 하나하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에 직분을 주신 목적이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고 합니다. 성도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원해서 성도가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위로 올라가신 분이 죄와 사망에 사로 잡혀 있던 우리들을 사로잡아 내시고 의와 생명이라는 선물을 주셨기에 우리가 성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다 은혜와 은사를 받았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직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이라는 것은 직분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온전하게 하고 봉사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직분이지 직분 그 자체를 위한 것이 결코 아님을 아셔야합니다.

 

먼저 교회의 직분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입니다. 온전하게 한다는 말은 그물이 찢어진 것을 깁는다는 말로도 사용되며 뼈가 위골되었을 때에 바로잡는 다는 말로도 사용되는 말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서 온전하다는 말을 사용하는 용례를 보면 정돈하다. 복구시키다. 고치다. 채우다. 바로잡다. 짓다. 예비하다는 뜻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도를 왜 이렇게 온전하게 하여야 합니까? 이 세상에 구별되어 하나님의 피로 값을 주가 사서 성도가 되었지만 아직도 옛 사람의 모습이 그대로 들어있는 것입니다. 물론 묵시 속에서는 이미 완성된 거룩하고 흠도 티도 없는 성도이지만 이 역사 속에서는 성도가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뽑혀 나온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9~11절입니다. “9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11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 고린도 지역은 온갖 음행과 우상숭배가 가득한 곳입니다. 교회로 부름 받아 나온 자들이 거의 다 이런 곳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교회 안에 이런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고린도 교인을 성도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어떻게 성도가 되는 것입니까?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 자는 말씀으로 우리의 옛 모습과 그리스도 안의 온전함이 어떠한지 가르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11절을 봅니다. “봉독” 그리스도께서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고 합니다. 고난의 갑옷을 입으라는 말입니다.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쳤다고 합니다. 이제 후로는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어떻게 살았습니까? 음란, 정욕, 술 취함, 방탕, 향락,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로 부름을 받은 자는 그러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남은 인생을 뜨겁게 서로 사랑하며 허물을 덮어주고 대접을 원망 없이 하는 이런 봉사를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 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고 합니다. 자기 힘으로 하면 자기 자랑이 나오지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봉사하면 예수님만 자랑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벌써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과 봉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가 평소에 생각하는 봉사는 어떤 것을 봉사로 여겼습니까? 교회의 사업에 봉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에서 시키는 것을 봉사로 여깁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시키는 몇 가지들을 잘하면 자신은 봉사를 잘했다고 합니다. 또는 그런 봉사를 힘에 지나치도록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대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지 않는 봉사는 힘들고 짜증이 납니다. 그럼에도 꾹 참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에서 복을 받지 못할까 봐서 하는 것입니다. 또는 하늘 나라가서 상을 받지 못할까봐 봉사를 한다면 이것은 봉사 자체를 오해한 것입니다. 봉사는 성도의 온전함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이지 그러한 신과 거래하기 위한 봉사가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0:5절입니다.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교회의 직분은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그 온전함이라는 단어가 이 말씀의 예비하셨다는 말씀과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온전하게 되는 일은 제사도 아니요 예물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의 풍토는 예배 잘 드리고 헌금 잘하면 온전한 성도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예배에 성공하여 인생에 성공하자는 말을 합니다. 예배에 성공한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스데반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장 완전한 예배를 드린 예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래도 예배에 성공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의 온전함이란 제사와 예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린 제사만이 성도의 온전함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3절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여기서 온전하다는 단어는 ‘지어진’ 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지어낸 것은 결코 온전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실수하면 어떤 말을 합니까? 사람이 신이 아닌데 하면서 자기 핑계를 삼습니다. 이런 말을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이 아닌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하늘 성소에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대 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온전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안에서 하나님이 친히 지으신 그 집만이 온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온전한 집이란 황금보석 꾸민 집이 아니라 성도입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러므로 목사와 교사로서 할 일이란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인데 그 온전함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를 만들어 가신다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고 알게 되어 온전한 하나가 되는 것이 또한 직분을 주신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봉사의 일도 성도의 온전함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봉사입니다. 오늘 본문의 봉사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곳 몇 곳만 찾아보겠습니다. 사도행전 6:3~4절입니다.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3)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헬, 말씀의 봉사에)”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기 위하여 교회에 집사를 세웁니다. 여기서 말씀 사역이 바로 말씀의 봉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봉사는 역시 기도와 말씀에 힘쓰는 것이 봉사입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일을 위하여 다른 집사들은 다른 봉사를 하는 것이 재정의 출납과 교회의 과부들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봉사들도 결국 말씀의 봉사를 위한 것입니다.

 

봉사에 대하여 한 곳만 더 봅니다. 고린도후서 5:18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여기서 봉사는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직분입니다. 이 직분이란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는 일을 예수님께서 이루셨다는 것을 전하는 것이 봉사의 일입니다. 이것은 사도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다 해당되는 직분입니다. 바로 앞의 말씀이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전에는 하나님의 원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으로 인하여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9~21절입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과 봉사의 일이 무엇인지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이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전하여 화목하게 하는 일이 봉사의 일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보겠습니다. 이미 앞에서도 보았듯이 성도가 온전하게 되고 봉사의 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예비하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7: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인하여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다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나서 그리스도 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가 왔다는 말씀입니다.

 

골로새서 2:16~17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율법이라는 그림자는 실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제 실체인 그리스도의 몸이 드러났기에 그림자인 율법에 대하여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삽니다.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 그와 연합하여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을 공급받고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입니다. 이러한 교회는 결코 사람이 세울 수가 없습니다(엡4:16).

 

고린도후서 5:1절입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이라는 말씀 중에 ‘지으신’ 이라는 단어가 ‘세운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우리의 무너질 장막인 우리의 몸이 다 무너진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은 집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집이 있으니 그 집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인데 그 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사모하는 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2~5절입니다. “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교회에 직분을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봉사가 아니라 성도가 온전해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의 무너질 몸속에서 탄식을 하게 됩니다. 영원한 영광의 몸, 예수 그리스도를 덧입기를 소망하게 됩니다. 이것을 보증하기 위하여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는 반드시 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일과 봉사의 일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동원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원된 자들을 교회라고 하고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완성을 바라보면서 서로 격려하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지어져 가는 일에 봉사하게 됩니다. 이 은혜를 교회 안에서 맛보심으로 더욱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질 그날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