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13~16 신지일치(信智一致) 2013. 6. 9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늘 설교제목을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 되어’라고 하였는데 너무 길어서 ‘신지일치(信智一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언행일치(言行一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따라 교회에서는 신행일치(信行一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까지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을 잘하는 어린 아이 같지 않고 장성하게 되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선 4:1~6절을 다시 봅니다. 여기서는 하나 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7~11절은 각 사람에게 각각의 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 됨에서 다양함으로 말씀합니다. 이 다양함이란 사람 몸의 지체가 여러 가지이지만 한 몸을 이루듯이 그리스도의 지체가 다양하지만 한 몸을 이룬다는 것임을 보았습니다. 이 하나 됨을 위하여 직분 자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은 다 가르치는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이들을 세운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임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은 13절을 중심으로 보겠습니다. 한글 번역으로 보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 이르는 것처럼 각 단계가 점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본문을 헬라어의 구조를 따라서 보면 위의 세 가지를 똑같은 전치사가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각 독립된 뜻이지만 전체가 하나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또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충만함에 이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다는 것을 쉬운 예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달 전에 청년 때에 좀 알았던 사람이 극동방송을 듣고서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이야기인데 아는 사람이 밥을 사준다고 해서 처음으로 경양식집에 갔더랍니다. 아는 사람은 다른 것을 시켰고 자신은 돈가스를 시켰답니다. 말은 들어보았는데 한 번도 먹어보지를 못하여 포크와 나이프를 쓴 것이 아니라 숟가락으로 비벼서 먹었다고 합니다. 먹는 것 인줄 알았지만 먹는 방법을 몰랐던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도 하나 합니다. 어릴 때에 엄마를 따라 옆집에 갔는데 그 집 대청마루에 하얀 설탕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었는데 그게 비료였습니다. 요소라는 비료는 하얀색인데 비료가 창고에 들어있지 않고 스텐 그릇에 담겨 마루에 있었기에 설탕인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비료를 설탕으로 잘 못 안 것입니다. 돈가스 먹는 법을 모르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것입니다. 비료를 설탕으로 알고 먹었으면 속은 메스꺼워도 뱉어내면 됩니다. 그런데 시골에서 농약 남은 것을 박카스 병에 담아두었는데 누가 마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것은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이처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아는 것이 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많이 배워서 아는 것으로 자기 힘을 삼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세상의 지식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18~31절입니다. “봉독”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십자가의 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에게 거리끼고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거리끼고 미련하게 보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 받는 자들에게는 능력으로 다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된다는 것은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 중에 잘난 자가 별로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세상에 잘났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렇게 하심으로 아무도 자기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고린도전서 2:1~16절도 봅니다. “봉독”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할 때에 두렵고 떨었던 것은 자기의 말과 자기의 지혜로 전할까봐서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전한 것입니까?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하려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란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그런 능력들이 아닙니다.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씀입니다. 만약에 세상에서 지혜롭다는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다면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영광이며 구원의 능력인 것을 알고 믿는 것은 결코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되기에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2:6절에서 온전한 자란 오늘 본문의 온전한 자와 같은 말입니다. 온전한 자에게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 이 지혜란 바로 십자가의 도를 말합니다. 이 온전한 자가 바로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된 자입니다. 그런데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방금 예로 말씀드린 대로 먹는 병에 담겼기에 먹는 것인 줄 알고 먹었는데 그것이 농약이라면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신심이 좋습니다. 무엇이나 잘 믿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의 정성만 바치면 돌도 나무도 달도 복을 줄줄 알고 얼마나 믿고 빌었는지 모릅니다. 돌과 나무와 달이 어떻게 복을 줄 것인가를 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그런 믿음으로 빌고 빌었습니다. 그런 행태를 그대로 가지고 교회로 왔습니다. 나무와 돌과 해와 달을 만드신 하나님께 빌어야 응답이 잘 된다고 교회로 몰려 왔습니다. 비는 대상은 달라졌지만 비는 내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중세시대 때 교회가 타락하게 된 것은 로마가 국교를 기독교로 하면서 온갖 나라들의 주술과 미신들이 교회라는 이름 안으로 들어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교회를 개혁한 것이 개신교인데 오늘날 개신교 안에 중세 교회의 타락한 내용보다 더한 모습들이 교묘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가 아닌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심리학과 마케팅원리들을 성경의 말씀들로 포장하여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않으면 온갖 속임수에 다 넘어간다는 말씀이 14절에 나옵니다. 이 부분은 다음 주에 자세히 보기로 하겠습니다만 우리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하게 이르는 것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하지만 잘못된 지식도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8:1~3절입니다. “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라” 지식은 교만하게 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합니다. 성경을 지식으로만 받으면 반드시 교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한다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바르게 알고 바르게 믿는 모습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은 이웃을 사랑함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이 알아주십니다.

 

제가 이런 예를 종종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이 건물이 5분 안에 무너집니다. 이 말을 들었다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야 합니까? 먼저 알아보아야지요! 누가 말한 것인지? 어떤 조짐이 있는지? 정말 알게 되었다면 당연히 믿게 됩니다. 알고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5분 안에 이 건물에서 빠져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속한 것들은 다 영원하지 않으며 이것들은 다 불에 살라져서 없을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합니다. 정말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알고 믿는다면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이 땅에서 나그네와 외국인으로 살게 됩니다. 나그네는 짐이 가볍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 계속하여 힘을 비축하여 두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알고 믿어야 합니까?

 

요한복음 17:3절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원한 생명이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본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 하나님을 나타내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오직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령으로 말씀을 알게 하시기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성령을 통하여 알고 믿게 되는 것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것이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온전한 사람에 대하여 같은 표현을 몇 곳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4:20~21절입니다. “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21 율법에 기록된 바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방언을 말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그들이 여전히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20절의 장성한 사람이 바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방언을 말하는 중에 나온 말씀입니다. 21절의 말씀은 이사야 28:11절 이하의 말씀을 바울사도가 인용합니다. 방언이 나타난 것은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대한 표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있는 곳에서 방언이 나타남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다는 것을 증거 하는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는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예언이란 개인의 장래운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자의 모습입니다.

 

히브리서 5:11~14절입니다. “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장성한 자가 온전한 사람인데 이들은 젖을 먹는 자가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된 자들로서 연단을 받아 무엇이 옳고 그런지를 아는 자들입니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교회에 직분 자를 세운 것이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을 그의 피로 구속하여 내시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완성하여 내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23절을 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루어내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자기 계획을 그의 몸 된 교회 안에 완전하게 이루어내실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이것을 계시로 받았기에 교회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에베소서 3:19절입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는 목표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한 개인으로 머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천상의 교회인 장자들의 모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히12:23) 이 지상에 문제 많은 교회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서로 부딪히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하고 때로 용납하기도 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 공사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소음도 나고 먼지도 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통하여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함이 완성될 그 때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