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15~16 어떻게 자라는가? 2013. 6. 23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성도는 태어남과 자람이 있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이러한 자람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 올라가실 때에 죄와 사망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의와 생명으로 사로잡아 내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선물들은 교회의 직분들인데 이런 직분들을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 이르는 것입니다. 이렇게 장성해야 하는 이유는 어린 아이처럼 간사한 유혹에 넘어가 세상의 풍조에 흔들리지 않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자람의 과정과 목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람이라고 하면 우선적인 생각이 교회의 성장을 말합니다. 교회의 성장은 숫자가 늘어나고 건물의 규모가 커지고 세상에 대하여 힘을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에 대하여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무시하지 말라고 하는 힘으로 말하려고 하는 것을 성장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와 보고서는 교회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모이자, 돈 내라, 집짓자. 번역하면 전도하라, 헌금하라, 교회당 건축하자는 말입니다. 세상 사람의 눈에 이렇게 비칠 정도로 교회의 성장이란 이런 쪽으로 치우친 것입니다. 이러한 성장을 말하는 것은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가지고 성장을 말한 것이 아니라 세속화된 가치로 성장을 말하여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배경으로 한국의 상황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일 모레가 6.25일 한국전쟁 기념일입니다.  일제강점기 36년을 지나고 1945년 8.15일 광복을 맞았지만 자주적 광복이 아니라 외세에 의한 광복으로 남북을 미국과 소련이 신탁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5년 만에 전쟁이 일어나고 3년간의 남북 전쟁으로 이 땅은 완전히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쟁으로 일본은 살아났고 한국은 남북으로 나누어져서 지금까지 분단국가가 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공산주의로 경제가 무너졌고 남한은 자본주의로 경제가 성장하였습니다. 국가 주도형 경제개발을 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장위주 달려갔습니다. 수출만 많이 한다면 인권도 환경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시대에 국민 교육헌장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뛰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외우고 시험 치게 하였습니다. 그런 정신의 교육을 받았기에 물론 다른 여러 가지 내용들도 있습니다만 모든 것은 성장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 혜택을 우리가 받고 있다고 하지만 그러나 그런 성장제일주의로 나간 이 나라가 행복한 나라입니까? OECD 국가 중에 8년째 자살률 1위라고 합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행복한줄 알았는데 행복지수는 경제개발협력기구에 속한 34개 나라 중에 한국은 32위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환경이 이러한 성장제일주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장제일주의의 풍조에 교회도 물들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교인을 모으기 시작하였습니다. 온갖 사이비한 부흥사들을 동원하여 물질적인 탐욕을 부추겼습니다. 전도에 상품을 걸었습니다. 지난주 시사저널의 기사를 인용한 것처럼 한국은 종교백화점 종교시장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종교적인 욕망을 돈과 시간을 바쳐서 소비하는 곳으로 변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형교회들이 세워집니다. 엄청난 물량을 동원하여 대형차량을 수십 대식 운행합니다. 여러 가지 편리시설과 취미시설을 만들어 운용을 합니다. 이런 것들을 성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바벨론에 사로잡힌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본문 14절을 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 지라고 합니다. 오직이라는 말은 다른 길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자람이란 오직 이 길 뿐이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된 것이라고 하면 우리는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착하게 살자고 합니다. 세상의 착함이란 그 시대 상황에 맞는 윤리와 도덕이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세상에서 욕 얻어먹고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착함이 성도에게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착함은 하지 못하니 그저 세상에서 통용되는 차원의 착함이라는 것을 하면서 자랐다는 말을 궁색하게 합니다.

 

그러나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는 것은 진리를 말하라는 말입니다. 자람이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진리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다른 번역으로 이 말씀을 보겠습니다. 표준 새 번역입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공동번역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진리를 말한다고 하고 하나는 진리대로 산다고 합니다.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참된 것이란 둘 다 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참된 것이란 진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사랑이라는 말로 모든 것을 용납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분명한 진리의 기준이 있어야합니다. 사랑이라는 말로 진리가 아닌 내용들을 용납하게 되면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각양 신비주의, 은사주의, 번영신학, 금욕주의, 신사도운동들이 교회로 들어옵니다. 이런 것들을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것은 진리냐 아니냐를 묻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성장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 되느냐를 진리의 척도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만이 아니라 한국의 유명하다는 선교단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과 기도면 충분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곳 보다 특이한 것들을 보여주어야 사람들이 호응이 있기에 자꾸만 다른 것을 찾아 나서는 것은 그 안에 진리가 없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자람의 방법은 다른 길이 아니라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야 합니다. 진리란 성경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모든 개혁교회의 원리는 성경의 완전성과 종결성을 말합니다. 교회 신조(信條) 제 1문항이 이렇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이다.” 성도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한 법칙이 성경입니다. 성경 외에는 계시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좀 뜨겁게 움직인다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을 들여다보면 그곳에서는 거의 직접 계시가 임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뜨겁게 찬송과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조용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 쪽에서 방언을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통역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축복한다는 그런 내용들을 말하는데 모든 사람들이 아멘을 하며 열광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도입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모이는 것이 힘이며 그 힘은 결국 돈으로 연결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6:3~5절입니다.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바른 말을 하지 않고 다른 교훈을 말하는 이유는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결국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린 인데 그길로 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17~19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사용하는 자들은 자기 뱃속을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 뱃속 채우는 일을 하는 자들이 십자가의 원수들이라고 합니다.

 

디모데후서 2:15~18절입니다. “15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그들은 경건하지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에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하는 자들도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재림예수다. 내가 보혜사다. 내가 그리스도다고 하는 자들이 한국에만도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어린 아이가 유혹에 넘어가듯이 온갖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야 합니다. 그는 우리의 머리이니 곧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자라가야 하는 과정은 사랑과 진리입니다. 그 목표는 우리의 머리인 그리스도입니다. 머리는 가장 높음을 말합니다. 또한 머리는 모든 것을 지시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표현이 거칠지만 나의 머리가 잘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머리가 붙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가 만물의 머리인줄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만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음으로 인하여 분노하는 것이 종교행위로 나타나면 신의 능력을 받기 위하여 헌신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란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임을 알고 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만물의 머리임을 아는 곳은 지상에서 유일하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진리 안에 있는 자라면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졌기에 진리의 말이 고백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란다는 것은 우리가 힘써 노력하여 자라야 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말씀을 보고 들으며 기도하고 헌신 봉사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온전하게 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지 사람이 자라게 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장 세미나를 한다고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면서 몰려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탐욕의 바벨탑을 세우고자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7절입니다.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고린도 교회에 파당이 생겼습니다. 파당이 생겼다는 말은 고린도 교회 안에 누가 더 영향력을 끼쳤는가에 따라 사람들이 나누어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누어진 것이 아닌데 이런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때 바울사도가 전한 말씀입니다. 심는 자나 물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라고 말입니다.

 

본문 16절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데 그 방법은 온 몸이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해부학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머리로부터 온 몸으로 연결된 것이 신경입니다. 신경이 줄처럼 온 몸의 구석구석까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핏줄은 심장으로 연결이 되어 온 몸으로 연결됩니다. 이뿐 아니라 힘줄도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데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받아 자라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세상의 경영원리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 안에서 진리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진리에 대한 열망들이 있습니까? 무엇이 바른 진리인지 말씀에 관심이 가는 것이 정상적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진리의 추구는 반드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13절을 봅니다. “봉독” 이러한 사랑 안에 진리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세워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