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설교]

에베소서 4:17~20 생명에서 떠난 자 2013. 7. 7

 

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17~24절 말씀의 총 주제는 옛 사람과 새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이런 사람이며 새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옛 사람의 특징이 그 마음의 허망하고 허무하고 허탄한 것으로 행한다는 말씀을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오늘도 옛 사람의 특징을 봅니다. 18절에서 옛 사람의 특징은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며 마음이 굳어져서 하나님의 생명에 떠나 있습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에 이러한 증세가 나온다고 보아도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는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이어지는 19절에서는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옛 사람이 누구입니까? 아담 이후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다 옛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간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며 자기 욕심대로 행하며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의 형태로 바꾸어버린 자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것임을 유대인을 택하셔서 모델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인간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아담으로부터 구약 전체에서 다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떠난 그 근원부터 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금지한 선악과를 뱀의 유혹으로 인하여 따 먹은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이유는 선악과를 따 먹은 상태에서 생명나무를 먹으면 안 되기에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들로 하여금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범죄 한 인간이 스스로 생명을 얻을 수 없도록 차단하여 놓았습니다. 생명이란 사람의 행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스스로 살리고자 합니다. 이것이 악임을 알지 못합니다.

 

예레미야 2:13절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생수의 근원이 되신 여호와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이 두 가지 악이라고 합니다. 피조물 주제에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였기에 초래한 결과가 생수의 근원을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생명을 떠난 자라고 합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야 합니다.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입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힘 드는 이유는 모두가 터진 웅덩이를 열심히 파고 그곳에 쌓아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들의 특징이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이라고 합니다. 이런 자들의 삶이 어떨까요? 세상에서 공부도 못하고 성공도 못하는 그런 무지함을 말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고 마음이 굳어진 것입니다. 이런 무지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2:13~21절입니다. “봉독”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기의 형에게 명하여 유산을 나누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아마 형이 부모의 유산을 가로챈 모양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는 그런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합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정당한 요구를 예수님께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저 탐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비유로 말씀하신 내용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입니다. 자신의 소유가 많아지자 창고를 늘리고 가득 쌓아두면서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다고 하십니다. 이런 자가 바로 하나님의 생명을 떠나 있는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가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하며 그 마음이 굳어 있다는 말은 자기 생존에는 지각이 있지만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는 지각이 없는 자를 말합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총명이 없고 무지한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에서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어떻게 해야 세상에서 잘 살아남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오히려 세상에서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훨씬 많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대다수가 예수님을 믿고서 세상에서 지혜롭고 능한 자가 되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18~31절을 봅니다. “봉독”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지혜로도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세상이 볼 때에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지혜임을 알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세상의 지혜와 세상의 능력으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되기에 이런 자들은 어느 누구도 자기 육체의 잘남을 자랑할 수가 없게 하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6~14절입니다. “봉독”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 온전한 자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된 자들입니다. 이들이 장성한 자들인데 이들에게는 지혜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는 세상의 통치자들이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밀한 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최고의 지혜라는 자들이 결코 알 수가 없었기에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영광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지혜의 한계입니다.

 

세상 최고의 브레인 집단들이 통치자 집단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세상의 지혜로는 성령의 일들이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일들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것입니다. 세상은 은혜의 원칙이 아니라 인과율의 원칙이며 거래입니다. 이런 것이 옛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사마저 돈으로 주고 사려고 하는 시므온과 같은 자들입니다.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피와 땀을 투입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내려고 하는 것도 세상의 지혜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에 나오는 것인데 바로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는 일입니다.

 

본문 19절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떠난 자들의 또 다른 특징들이 나옵니다.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감각이 없다는 말은 마음이 굳어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을 방탕에 풀어 놓고서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는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채움으로 자기의 생존을 보장하려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욕심을 하나님의 거룩한 일로 바꾸어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일들은 성경은 더욱 경계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18~21절입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들은 세상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다닌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의 모습이 어떤 것입니까? 그 신이 욕망입니다. 그 마침이 멸망이며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데 이들이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에 붙어있는 자들은 시민권이 하늘에 있기에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생명에 다시 접속이 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서 살아온 것이 악임을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삽니다. 그러나 이 조차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들이 생명이 있는 자들입니다. 아무리 이마에 땀을 흘려도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시지 않으면 모든 인생의 수고들은 전부 허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흔히 말하는 일반은총도 은혜이지만 이것을 아는 자는 특별은총을 받은 자들만이 아는 것입니다. 특별은총이란 모두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들이지만 그 가운데 하나님의 자기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창세전에 택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주께서 구원하시는데 그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이루어내십니다.

 

로마서 5:8~11절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우리가 죄인 되어 있을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가 되어 있을 때에 오직 그의 피로 인하여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들이 다시 생명을 얻는 길은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로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은혜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생명을 얻은 자가 됩니다. 이 생명을 얻은 자들은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서 사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사는 자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자들은 내가 나를 살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내가 나를 살리기 위하여 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그 웅덩이란 세상에서 소유할 수 있는 것들만이 아니라 자기의 착함과 의로움을 담는 웅덩이도 만들어 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에 돌아온 자들은 이제 자기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세상의 소유들을 의지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의 착함과 자기의 종교적인 업적들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인데 이런 자들은 자기에게서 생명이 나오지 않는 자들임을 압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임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 같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7:37~39절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면 더 이상 세상에 목말라 하지 않게 됩니다. 전에는 자기의 배에서 욕망만 나왔습니다. 그러나 생명에 접속이 되면 이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옵니다. 이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라는 고백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와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이며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말라죽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가지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고 포도나무에 붙어만 있으면 절로 과실을 맺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에서 떠난 자가 생명을 얻는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나의 생존력이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