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1:12-17 사형에 해당하는 죄 2010. 10. 3

 

12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13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의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그를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14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15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17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애굽기 19:4-9절입니다. “봉독” 애굽 사람들에게 어떻게 행한 것과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온 세계가 다 내게 속한 것인데 너희가 내 말을 잘 들으면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이 말을 백성들에게 전하니 백성들은 일제히 응답하여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백성들의 말을 모세가 여호와께 전함으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선포되고 그 다음 여러 가지 언약의 규례들이 주어지는데 처음에 본 것이 종들에 대한 규례였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형에 처할 범죄들을 말씀합니다. 이런 범죄들은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그 첫째가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이미 십계명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말씀하시는 것은 살인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 큰 구원을 체험한 자들도 살해의지가 다 들어있기에 이런 금지명령을 주십니다.

 

21:13절에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어느 경전에나 다 있는 것입니다. 절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불경이 성경보다 더 깊고 넓다고 한답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너희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지만 우리는 아예 살생하지 말라고 하기에 미물조차 죽이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절에 다니는 사람들이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이 소중하기에 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유가 없습니다.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말합니다. 그 속에 자기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믿는 다는 사람들에게 왜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가 물어보면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살인하지 말라고 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면서 진멸전쟁을 하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닙니까? 그래서 초대 기독교에 마르시온 같은 신학자도 나옵니다. 스스로 바울의 후계자라면서 구약의 하나님은 폭력과 보복의 신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말하는 하나님은 사랑과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다르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도 구약을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모든 인간이 정말 하나님의 형상이라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인간이 처음 창조될 때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나 범죄 이후에도 과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창세기 1:27절을 보시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됩니다. 범죄 한 이들이 과연 하나님의 형상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간단하게 영어로 보면 이미지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이미지를 담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미지가 범죄 이후에 계속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범죄란 너도 하나님처럼 되리라고 한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미지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 범죄 이후에도 과연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5:1-3절을 봅니다. “봉독”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는데 3절에서 아담이 셋을 낳고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아담의 형상입니다. 아담 자기의 형상이라는 말입니다. 아담은 범죄이후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니 아담의 후손은 흙에 속한 형상입니다. 아담이라는 말자체도 흙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형상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생기를 하나님의 숨결 하나님의 영이라고 번역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 떠나버리면 그것은 사람이아니라 그냥 흙입니다. 창세기 6:3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사람은 동물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입김이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은 백 이십 년밖에 살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나님의 입김이 사람과 함께 할 수가 없어서 떠나면 육신이 되는데 즉 짐승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노아 홍수이후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말씀이 창세기 9:6절입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범죄 한 아담의 후손이며 노아 홍수 이후인데도 피를 흘리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지었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범죄 이후에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지는 노아 언약과 연결하여 보아야 합니다. 노아 언약은 정결한 짐승의 희생제물을 받으시고 언약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희생의 제물로 인한 은혜의 언약 안에 있어야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 이후로는 구약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러면 구약에서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이 있습니까?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의 그림자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은혜의 언약 안에서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보여주어야 하기에 이스라엘 안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은혜의 언약을 깨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가차 없이 사형에 처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으로 출애굽도 하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그런데 같은 동료를 쳐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을 무시하는 것이기에 마땅히 사형에 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21:14절은 사람이 고의로 죽인 것이 아니라 과실로 죽인 경우가 있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서 옆에 사람이 죽었다든지, 고의성이 없이 우연히 밀치게 되었는데 넘어져서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피의 보수 자들이 쫓아오기 전에 도피성으로 피하면 됩니다. 물론 도피성에서 재판을 받아서 고의가 아님이 입증이 되면 그 성의 제사장이 죽을 때 까지 그 성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죽으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고의가 아닌데 죽임당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 됩니다. 그러니 고의로 살해한 사실이 들어나면 제단의 뿔을 잡은 자라도 끌어내어 죽이라고 합니다.

 

15절에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17절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도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부모를 치는 정도가 아니라 저주만 하여도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엄중한 것입니까? 이것은 동양의 효 사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는 하나님의 언약 전달자입니다.

 

신명기 6:1-9절을 봅니다. “봉독” 부모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자녀와 손자들에게 평생에 여호와를 섬기도록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부지런히 가르치고 강론하여야 합니다. 집에 있을 때도 길을 갈 때에도 누울 때에도 일어날 때에도 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들 이렇게 하고 계시지요! 숙제 했나? 시험공부 했나만 묻지 않지?!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을 전하는 부모를 치거나 저주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치고 저주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죽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윤관태집사 아들이 도서관에서 떨어져서 중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후 예배 후에 광고하고 기도를 요청하였는데 지난 주 죽었습니다. 그 부모가 아이들 교육은 그렇게 챙겼다고 합니다. 사고가 난 그날이 주일인데 누나가 고삼이라 시립도서관에 간다고 가니 엄마가 중학교 1학년 되는 아들을 누나 따라 가도록 도서관에 보낸 것입니다. 그 아이가 부모의 사랑을 그렇게 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공부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떨어져 죽는 일도 일어납니다. 이런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16절에서는 사람을 납치하여 그 사람을 팔았든지 아니면 자기의 수하에 두었든지 그는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아이들을 유괴하거나 납치하여 협박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영화로도 많이 나왔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저희 집에도 이런 비슷한 보이스 피싱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당하면서 이 범죄자들이 한국의 상황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올인 하고 있는 것을 알기에 아이 이야기만 하면 그냥 부모들이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범죄자들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왜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것입니까? 사람을 납치하고 팔아먹고 자기수하에 두는 이런 일들이 왜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에 일어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약자들을 보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도 안식년도 희년도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매 삼년마다 평소의 십일조 외에 십일조를 더 하여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가나한 자들을 위하여 돕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행되지 않았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땅에서도 이런 범죄자들이 나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공범들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의 대 강령을 교회 다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다는 우리들조차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아이만 성공하기를 거저 우리집안만 잘 되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아왔기에 오늘 우리는 다 사형에 합당한 자들의 공범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이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사형에 해당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로마서 1:28-32절을 봅니다. “봉독” 사람들이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미 자기가 하나님이 되어 있기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 버려두십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여기서 자유로울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무엇에 해당되는 죄가 됩니까? 사형에 해당됩니다. 왜 이런 것이 사형에 해당이 됩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크고 작은 죄가 없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됩니다. 우리의 탐심이 신이 되려고 하는 욕망으로 인하여 이 모든 죄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형에 해당되는 죄임을 알고서도 자신이 그 죄를 지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이 모든 죄악이 다 동원됩니다. 예수님은 참된 하나님이 형상입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 가짜 신이 되어 있는 인간들이 참으로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다 공범이 됩니다. 시기하고 악의가 가득하고 탐욕과 수군거림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들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을 옳다고 여깁니다. 역시 우리 안에도 이런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그러니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의 공범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다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입니다.

누구를 죽인 것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를 죽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4절입니다.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복음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이 세상의 신이 그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하는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골로새서 1:15절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예수님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죽였기에 마땅히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제대로 아는 자들입니다. 십자가의 저주가 바로 나의 저주인데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저주임을 알고 믿게 됩니다. 그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신 분이 그를 믿는 자들에게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자기의 형상을 입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 한 내용이고 이 성경의 말씀이 믿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이런 복음을 전할 뿐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주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8:28-29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그 결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바로 본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그 아들을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 믿는 자들, 즉 미리 아신 자들에게는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과 심지어 죽임을 당하여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만드시는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52절을 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가 다 아담 즉 흙에 속한 형상을 입었기에 땅만 바라보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듣고 믿게 되면 이제 땅의 흙에 속한 형상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분의 형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오시기를 소망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