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31:12-17 안식-영원한 언약 2011. 5. 15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 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면서 설계도를 주시고, 성막을 만들 사람들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으로 지혜와 총명까지 주시면서 성막을 만들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안식과 연결을 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만들라고 하시고서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합니다. 성막을 만드는 동안도 안식일을 지켜야 하지만 성막을 만드시는 목적도 하나님의 안식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안식을 말씀하셨는데도 성막을 만들게 하시면서 다시 안식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이런 계시를 받고 있는 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섬기게 됩니다. 이것은 피로 뿌린 언약을 어긴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한 언약이기에 다 진멸당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모세가 자기의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긍휼과 언약을 의지하여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처음 받은 언약의 돌 판이 깨어지고 다시 돌 판을 주시면서 언약이 유지가 됩니다. 그렇게 언약이 유지되면서 또 다시 안식일을 지키도록 35:1-3절에서 말씀합니다. “봉독” 역시 안식일을 지키게 합니다.

 

오늘본문 13-16절을 봅니다. 누구의 안식일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안식일입니다. 이 안식일을 대대로 지킴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영원한 언약의 표가 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거룩함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 지며 이 날에 일하는 자도 다 생명이 끊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고 안식일은 쉬라고 합니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안식일 지킴을 영원한 언약으로 삼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표징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 째 날에 쉬었다고 합니다.

 

이미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에서 안식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율법에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시는 이유는 천지 창조와(출20:8-11) 애굽에서 구원을 받았기에(신5:12-15)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합니다. 창조와 구원이 다 하나님 홀로 일하신 결과이기에 인간은 창조의 은혜도 구원의 은혜도 다 일한 것이 없이 거저 받는 것이기에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것은 인간의 애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식에서 떠난 인생은 스스로의 안식처를 만들어 보기 위하여 평생을 노력하고 애를 쓰지만 아무리 좋은 주택을 구입하고 비싼 가구를 구입하여도 그것이 안식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을 받아야만 참된 안식을 맛보게 되는데 그 안식에 들어가는 길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특징은 일하지 아니함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고 더럽히면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 안식일에 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 시대에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영원한 언약의 표라고 합니다.

 

영원한 언약의 표라고 하는데도 우리는 아무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안식교인만 안식일을 지킵니다. 안식일은 토요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안식일이 일요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일요일이니 이 날을 안식일로 지킨다고 주일성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증거 하지 않습니다. 이제 모든 날이 다 주의 날이지 어느 특정한 날이 주의 날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때 안식 후 첫날에 모였다는 것은 이제 그림자의 날인 안식일이 완성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5절입니다. “5 어떤 사람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날짜에 매이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자 칼뱅도 기독교 강요에서 성도가 미신적이지 않다면 다른 날에 모여 예배하는 것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칼뱅이 구약의 십계명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성경본문을 다 인용합니다.

 

골로새서 2:16-17절입니다.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안식일은 그림자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실체가 왔는데도 아직도 그림자를 붙들고 있다면 이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하라고 합니까? 반드시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의 시대에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거나 주일을 성수하지 않아서 죽게 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안식일을 더럽히는 것이며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성막을 통하여 안식을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로 인하여 단절된 인간과 하나님이 만날 수 있는 곳이 성막입니다. 출애굽기 15장에서 보았는데 한 번 더 봅니다. 13절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주의 거룩한 처소, 언약의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고 합니다. 그 목적은 17절입니다.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삼으시려고 출애굽 시킨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시려면 거룩한 처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그런 성막이나 성전에 계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시기 위하여 구원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성전은 결코 사람이 지을 수가 없기에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성막이나 성전을 짓게 하신 것은 인간이 비록 만들지만 그 모든 설계도와 만들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께서 주시고 성막이나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재료들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원하는 마음을 주셔서 만들어 냅니다. 이를 통하여 성막이나 성전을 만든 자들은 지난주에 본 대로 주께서 말씀하신 것을 주께서 이루어내심이 이러하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짓게 하시는 것은 그림자로서 하나님의 안식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자기의 처소로 삼으셔야 하십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안식일을 지켜 왔습니까? 영원한 언약이기에 영원히 지켜야 한다고 지켰습니다. 물론 그들의 안식일 지킴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선지자들이 고발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안식일이 끝나서 장사하여 이익을 남길 것인지를 생각하고 안식일을 귀찮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안식일을 어겼고 안식년도 어겼기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70년 동안 약속의 땅이 안식을 합니다.

 

약속의 땅이 안식을 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 운동이 바리새인 운동입니다. 그 결과 얼마나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려고 애를 썼는지 일하지 아니함이 안식일의 특징인데 오히려 안식일 지키기 위한 수십 가지의 세부지침들로 인하여 오히려 안식일이 짐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태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말씀과 행동은 가히 이단적인 언행이었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안식일에 일하시기를 일부러 보란 듯이 행하셨습니다. 김세윤 교수는 이것을 시위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 앞에서 데모를 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이 가만히 둘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는데 그림자인 안식일을 붙들고 그림자인 성전을 붙드느라고 참된 안식과 참된 성전인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여 버렸습니다.

 

구약에서 영원한 언약이라고 한다고 해서 그것을 지금도 영원히 지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할례도 영원한 언약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7:9-14절입니다. “봉독” 분명히 대대에 지켜야할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6:15절을 봅니다.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그러므로 영원한 언약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심으로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구약의 모든 언약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셨기에 다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언약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영원한 언약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그 안식의 완성이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안식하십니다. 안식일과 할례와 성전에 대하여 이미 여러 곳에서 살펴보았습니다만 오늘은 성막과 연결하여 안식일이 영원한 언약이 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3-22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장사하는 성전을 보시고 분노하십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제자들은 시편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님께서 주의 전을 사모함으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을 성령이 임하고 나서 제자들이 깨닫게 됩니다. 이 성전을 헐라고 내가 삼일 만에 일으키겠다고 하신 말씀은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 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면 성령이 임한 자가 성전이 됩니다(고전 3:16, 6:19). 이렇게 성전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음으로 인하여 성전이 된 것입니다. 이런 성전을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없는 사람들이 오늘날도 성전을 짓는다고 합니다. 이미 성전을 헐어버렸는데 무슨 수로 사람들이 벽돌과 시멘트로 성전을 짓는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이 만드는 것은 성전이 아니라 이방신의 신전이 되어버립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집을 지어드리겠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언제 나를 위한 집을 지어 달라고 했느냐고 하시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하여 집을 세워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언약은 다윗의 왕위가 영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삼하7장). 그러나 다윗의 왕위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끊어집니다. 그러면 언약이 어떻게 됩니까? 다윗의 언약대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의 되신다는 것이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음을 솔로몬도 고백하고(왕하8장) 이사야 선지자도 증거 하였고(사66장) 스데반 집사는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행7장).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다가 끊어진다는 것이 새 언약시대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가 되는 것처럼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믿지 않으면 사람들이 만든 신전을 붙듦으로 그리스도에게 끊어지는 자가 됩니다. 참된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기에 그저 받는 것입니다. 성막을 만들게 하시면서 그 전후로 안식일을 지키게 하시는 이유는 성막이 완성됨으로 하나님의 안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데 인간이 일하면 끊어지듯이 하나님의 참된 성전을 사람들이 사수하려고 나서면 역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값없이 거저 받고 삽니다. 이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값은 예수님께서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성전이 된 성도는 날마다 그리스도에게 붙어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교회마저도 치열한 경쟁의 구도 속에서 허덕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참된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전으로서의 교회일까요? 성막을 지으면서 안식일을 지키라고, 일하지 말라고, 일하면 죽는다고 하신 것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성전이 은혜로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그 곳이 어떠한지 요한계시록 21:1-8절입니다. “봉독”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이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 하나님 안식이며 거기에 부름 받은 성도 또한 참된 안식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값없이 생명수를 공급받는 것이 영원한 언약의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