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4:1~20 씨 뿌리는 자 2018. 12. 9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지난주의 말씀은 누가 예수님의 가족인지를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미쳤다거나 귀신들렸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배척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가족이 아닙니다. 그런데 혈육의 가족들도 밖에 서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되는 것은 혈육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지난주에 본 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도 결국은 십자가 앞에서는 다들 돌아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마저 돌아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되는 길은 사람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의 의를 자기 백성에게 넘겨주심으로만 됩니다.

 

본문 1~9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듭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올라 앉으셔서 육지에 있는 무리들에게 가르칩니다. 여러 가지 비유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시는데 오늘 말씀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유대인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농사법으로 이해가 잘 안됩니다. 우리나라는 밭을 갈아서 이랑을 만들어놓고 콩 같은 것은 몇 알씩 점점이 심습니다. 밀이나 보리는 줄로 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의 농사법은 씨를 먼저 뿌려놓고 갈아엎어서 씨를 덮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밭에 사람이 자주 다니면 길이 날 수도 있습니다. 흙 아래 묻혀있는 돌들은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에 뿌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시덤불을 걷어내어도 그 뿌리가 있으면 나중에 자라서 곡식을 가로막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을 다 아는 농부이지만 그대로 씨를 뿌립니다. 그러면 길가에 떨어진 씨는 새들이 먹어 버리고, 돌밭에 떨어진 씨는 잠시 자라다가 말라버리고, 가시떨기에 떨어진 것은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 기운에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결국 세 곳에서는 열매가 없지만 좋은 땅에 떨어지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이 농사법을 유대인들은 다 압니다. 그런데 들을 귀 있는 자를 들으라고 합니다.

 

본문 10~1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들에 대하여 묻습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농사법인데 들을 귀 있는 자를 들으라고 하셨기에 그 뜻을 알지 못하여 예수님께 물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알아들을 자만 알아듣게 하시고 알아듣지 못할 자는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믿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이 사랑의 하나님에 합당한 모습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은 너희와 외인을 구분하십니까?

 

그 이유는 이사야 6:9~10절입니다.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서는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알게 됩니다. 입술이 부정한 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뵈었기 때문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을 할 때에 천사가 제단의 숯불로 그 입술을 지지면서 네 죄가 사하여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 것 인가 하는 음성을 듣고 자신이 가겠다고 합니다. 그때 받은 소명이 이 말씀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구원을 저지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들어보셨습니까? 스스로 돌이키고 구원받지 못하도록 그들은 눈과 귀를 막아버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스스로 돌이켜 올 수 없게 하십니다.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시켜 놓으신 이유를 선지자들을 통하여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가 언제까지 그렇게 되어야 하느냐고 주님께 묻습니다. 그러자 대답하시기를 나라가 망하여 사람들이 멀리 옮겨져서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망한 중에 십분의 일이 남아 있어도 그것도 다 베임을 당하지만 그루터기를 남아 있는 것처럼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라고 합니다. 거룩한 씨란 메시아 칭호입니다. 결국 거룩한 씨만 남기시고 그 거룩한 씨로 자기 백성을 새롭게 만들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거룩한 씨로 오신 분이 누구십니까? 창세기 3:15절에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분이시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씨가 거룩한 그루터기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그 씨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15:6).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씨란 그리스도라고 바울사도가 증거 합니다(3:16).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약속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모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백성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시기 위하여 천국을 설명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알 수 있는 농사짓는 내용으로 천국을 설명하시는데 알아들을 귀가 없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말씀을 뿌리는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뿌리시는데 그 말씀이 뿌려지면 그 밭이 어떤 밭인지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좋은 밭이 되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옥토 밭이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밭이 스스로 좋은 밭이 되는 밭은 없습니다. 어떻게 밭이 돌을 뽑아내고 가시덤불을 뽑아냅니까?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목사가 좋은 밭이 되라고 하면 아멘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맹목(盲目)적으로 믿는다고 맹()신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비유는 좋은 밭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씨가 밭을 구별해 낸다는 말씀입니다.

 

15절입니다.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씨를 뿌리는 자의 능력이 없어서 그 뿌려진 말씀을 빼앗기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말씀은 사람의 마음 밭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 밭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말씀합니다. 싹도 틔우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돌과 같이 딱딱한 마음입니다(36:26). 이 세상의 신이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도록 막고 있습니다(고후4:4).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가 어떻게 말씀이 들리겠습니까? 옛 언약이 아닌 새 언약으로만 부드러운 마음이 됩니다(36:26). 빛이 비치라고 하신 그 창조의 능력으로 새롭게 창조해 내셔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게 됩니다(고후4:6). 그러므로 아담이후의 모든 인간은 다 길가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16~17절입니다.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지만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자를 말합니다. 제가 종종 복음을 듣는 것도 취향이라고 말씀을 드립니다. 자기가 원하는 내용이면 기쁨으로 받지만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으로 인하여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면 다 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도 그렇게 넘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돌밭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넘어진 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는 자들은 돌아옵니다(22:32).

 

18~19절입니다.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세상의 염려가 없는 분이 계십니까? 재물의 유혹과 다른 욕심이 없는 분이 계십니까? 단 한명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욕심을 없애려고 하는 욕심마저 없어야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가시떨기와 같은 마음의 밭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어떤 인간도 스스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분명하게 성경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한 명도 좋은 밭이 없습니다.

 

히브리서 6:7~8절입니다. “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땅이 비라는 은혜를 받고서도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불살라집니다. 이 말씀의 전후 문맥을 보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버리고 다시 율법주의로 돌아가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욕을 보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복음을 들은 히브리인들이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 열매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0~12절입니다. 봉독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너희 곧 택하신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따로 설명을 합니다. 그런데 외인들 곧 택함을 입지 못한 자들은 알아듣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다시 비유의 말씀을 풀어주신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돌이켜 죄 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매란 말씀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매라고 하니 우리의 육체로 행할 수 있는 업적들을 열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6:29). 이 열매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은 농부가 되시고 예수님은 포도나무가 되셔서 자기 백성들을 자기에게 접붙이십니다. 그 접붙이시는 일을 십자가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좋은 땅에 대하여 어떤 부가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땅은 설명이 나옵니다만 좋은 땅에 대한 설명은 없이 바로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이스라엘에서 밀 이삭 하나를 뽑아서 비벼서 쭉정이는 날려버리고 알곡만 세어보니 80개가 나왔다고 합니다. 곡식 농사는 보통이면 30배이고 조금 잘 되면 60배이고 최고로 잘되면 100배가 됩니다. 이것은 돈으로 환산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좋은 땅에 열매가 맺히는 이야기는 누구의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은 씨일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신 유일하게 좋은 밭입니다. 하나님과 동등 되시나 그 동등 됨을 스스로 버리시고 종의모습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단 한 번도 자기 뜻대로 사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뜻을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좋은 밭이십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씨입니다. 그 씨앗이 좋은 밭에서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이게 누구에게 적용될 말씀입니까?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죄인은 죄인을 살려 낼 수가 없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자가 아무리 죽어봤자 자기 자신도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오직 생명이신 예수님만이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살려 내시는 것입니다. 좋은 밭에 좋은 씨가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 12:32~33절입니다.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예수님께서 좋은 밭이 되시고 예수님께서 좋은 씨가 되셔서 죽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이 십자가에 들리심입니다.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자기 백성을 자기에게로 이끌어 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일하신 열매입니다.

 

베드로전서 1:23~25절입니다. “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24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25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는 것은 썩어질 육체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열매 맺을 수 없는 밭에 씨를 뿌리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복음을 듣고 깨달아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는 열매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