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3 마음의 할례 2018. 4. 22

 

1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1)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지난주에 본 1~2절은 개들을 조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사도가 개들이라고 까지 격하게 표현한 자들은 육체의 할례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행악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신 것을 부인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모든 언약의 완성이며, 율법의 완성이며,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한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얻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전한 복음을 믿고 있는 자들에게 할례를 해야 구원을 얻는 자들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으로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향하여 개들이라고 하고 행악하는 자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고 합니다. 할례 받는 것을 개들이라고 해 놓고서는 자기들이 할례파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할례라고 말하는 것은 손으로 행한 그 할례가 아니라 마음으로 한 할례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고 율법에서도 할례를 하라고 하지만 이러한 몸의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을 보여주는데 유대인들은 오히려 이러한 할례를 자신들의 자랑거리와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할례를 받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면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가 할례파라고 합니다.

 

신명기 10:15~16절입니다.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 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의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고 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이스라엘의 짐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을 택하시고 그들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안다면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목을 곧게 하지 않는 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몸의 할례를 할 수가 있지만 마음의 할례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신명기 30:6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마음의 할례를 누가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시는데 바로 앞의 1절부터 보면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으로 저주가 임하여 쫓겨 간 모든 나라에서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주께서 마음을 돌이켜서 긍휼히 여기시고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여 주신다고 합니다. 2주 전에 오후에 본 느헤미야의 기도와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결국 마음의 할례는 범죄로 인하여 완전히 망한 자리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마음의 할례를 베푸신다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9:23~26절입니다. “2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면 1)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26 곧 애굽과 유다와 에돔과 암몬 자손과 모압과 및 광야에 살면서 살쩍을 깎은 자들에게라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까? 지혜, 용맹,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로 자랑하라고 하는 것은 명철하여 여호와를 아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분이심을 아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때가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다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방인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에 심판을 받고 이스라엘은 몸에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몸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몸의 할례는 사람이 할 수가 있지만 마음의 할례를 어떻게 할 수가 있습니까?

 

에스겔 36:24~28절입니다. “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예레미야의 말씀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몸의 할례를 받았지만 마음의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에 결국 나라가 망합니다.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다시 돌이켜 주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지만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아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우리의 이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이름을 위한 구원입니다. 우리는 언약을 어겼지만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어길 수 없기에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하시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여러 나라에 흩어진 자들을 모아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서 맑은 물을 뿌려서 정결하게 하고 새 영을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31장의 새 언약과 같은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돌 판에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기록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내시겠다고 합니다. 이러한 구원이 일어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어지는 29~32절입니다.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구원이 일어나는 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악한 길과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인하여 스스로 밉게 봅니다. 자신의 죄를 알게 됩니다. 이것이 마음의 할례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가 일어난 자들은 자신의 육신으로 행한 일이 어떤 죄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자들은 지금까지 자랑으로 여겨왔던 것들을 해로 여기며 배설물로 여기게 됩니다. 이런 자들이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의 할례를 받았습니까?

 

본문 3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의 특징 세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서 봉사한다는 것은 예배한다. 섬긴다는 뜻으로도 사용합니다. 우리의 예배나 섬김이나 봉사가 성령으로 합니까? 육신의 합니까? 성령으로 봉사하는 특징은 감사와 기쁨입니다. 바울이 복음전하다가 고난을 받고 감옥에서도 기뻐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자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합니다. 어떤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지만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하였다고 합니다(고전15:10).

 

이렇게 성령으로 봉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자랑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한다는 말은 할례를 자랑하거나 자신의 율법지킴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음 주에 보겠습니다만 바울은 자신이 자랑할 것들이 너무나 많지만 그런 것들이 배설물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이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죽도록 충성하여도 그것이 성령으로 봉사한 것이기에 자신이 자랑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라는 말입니다.

 

갈라디아서 6:12~15절입니다.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갈라디아 교회에도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한 박해를 면하려 할 뿐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할례를 주장하였다면 유대인들의 핍박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나 무 할례가 아무른 소용이 없고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은 새 언약으로 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 안에 있는 할례가 죄인을 새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살과 피로 이루어내신 새 언약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 안과 밖으로 나누어진 모습입니다. 십자가 안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의 자랑거리가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밖에서 십자가 안의 바울을 보면 바울이 죽은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자랑은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로마서 2:28~29절입니다. “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표면적(表面的)이라는 말은 겉으로 드러난 혈과 육의 유대인이나 할례가 아니라 이면적 유대인과 할례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면적(裏面的)이라는 말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마음의 할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할례를 율법 조문이 아니라 영에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것이 마음의 할례가 일어나는 것이며 이런 자들은 앞에서 본 대로 자기 죄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이러한 자들은 그 칭찬이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성령으로 봉사하는 자는 사람을 의식(意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의 칭찬이나 인정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게 됩니다.

 

끝으로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육신이라고 말할 때에는 그 문맥을 따라 살펴보아야 합니다. 육신이란 단지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락한 우리 인생의 경향성을 육신으로 보면 됩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진 자들은 자기 자원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킨다고 하여도 자기 힘으로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키는 자들은 반드시 시기와 경쟁과 자기 자랑과 자기 공적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물론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위장할지라도 그 속은 하나님과 본인이 알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신뢰한다는 말은 자기의 행함에 의지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로마서 8:1~8절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라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육신을 따르는 자의 일이 무엇입니까? 율법의 요구를 자기 육신의 능력으로 이루어내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율법의 의로 자기 의를 삼은 자들이기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신뢰할수록 하나님의 원수가 됩니다.

 

이어지는 9~17절을 보면 몸과 육신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우리의 몸은 그릇으로 보면 됩니다. 타락한 인간의 몸은 육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바로 앞에서 본 육신의 생각이 자기 자원으로 자기 의를 세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율법을 주면 율법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율법이 없는 자들은 자기 양심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합니다. 그래서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살해하듯이 양심적으로 하나도 거리낌이 없다고 하는 자들 역시 예수님을 배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주의 영이 임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의 영으로 인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육신을 자랑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육신의 일이 죄 뿐임을 알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서 어떤 선한 열매가 나오게 되면 자기를 부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이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육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도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