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3:13~15 화 있을진저!     2017. 3. 19

 

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14 1)(없음) 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라고 하신 말씀이 일곱 번 나옵니다. 오늘은 두 가지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14절에서 없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고대의 성경은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베껴서 보관을 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 부분에 손실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그대로 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가지고 킹 제임스 성경을 선전하면서 없음이 없는 성경이라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각주를 보면 다른 사본에는 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2:40절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0:47절입니다.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니 그들이 더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의 없음이라는 구절이 다른 사본에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하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렇게 저주를 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13~15절을 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란 앞에서 보았듯이 모세의 자리에 앉은 자들입니다. 율법을 가르치는 랍비며, 선생이며, 지도자며, 심지어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육신의 아버지보다 존경을 받는 것은 육신의 아버지는 이 세상의 삶을 가르쳐 주지만 율법 선생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기에 존경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은 이들이 천국의 문을 사람들 앞에 닫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들은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자기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하였기에 예수님은 이렇게 화를 발하시는 것입니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하여 구약 전체에서 화 있을진저!’ 라는 선지자들의 선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였기에(벧전1:10,11) 그들의 증언들이 예수님의 말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한글 성경 전체에는 화 있을진저!’라는 단어가 54회 나옵니다. 구약에서 35회 신약에서 19회 나옵니다. 복음서에서 17회가 나옵니다. 복음서는 중복되는 내용이 있으니 복음서를 빼면 유다서와 계시록에서 각 한 번씩 나옵니다. 물론 이렇게 문자적으로 화 있을진저! 라는 내용만이 아니라도 수많은 곳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내용까지 다 살펴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화 있을진저!’라고 나온 구약의 내용을 대략적으로라도 살펴 보아야합니다.

 

이사야 5:8~12절입니다. “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2)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은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면 안 됩니다. 그런데도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는 곳이 되어 버렸기에 화 있을진저! 라는 선지자의 책망을 듣습니다. 지도자라는 자들이 바른 말씀을 선포하지 않고 아침 일찍부터 독주를 마시고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입니다. 아모스 선지자에 의하면 벌금을 받아서 술에 취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잔치하느라고 온갖 악기를 갖추었지만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보지 않습니다. 이러한 술 취함이 술만이 아니라 권력에 취하고, 돈에 취하고, 세상에 취하는 모습니다. 율법의 선생이라는 자들이 백성의 지도자라는 자들이 이렇게 취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13~17절입니다. “13 그러므로 내 백성이 무지함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요 그들의 귀한 자는 굶주릴 것이요 무리는 목마를 것이라 14 그러므로 스올이 욕심을 크게 내어 한량없이 그 입을 벌린즉 그들의 호화로움과 그들의 많은 무리와 그들의 떠드는 것과 그 중에서 즐거워하는 자가 거기에 빠질 것이라 15 여느 사람은 구푸리고 존귀한 자는 낮아지고 오만한 자의 눈도 낮아질 것이로되 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시리니 17 그 때에는 어린 양들이 자기 초장에 있는 것 같이 풀을 먹을 것이요 유리 하는 자들이 부자의 버려진 밭에서 먹으리라” ‘화 있을진저!’에 해당되는 일로 인하여 온 백성이 이렇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8~23절입니다. “18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그는 자기의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는 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 하는도다 20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3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 이사야서 한 곳만 보아도 예수님의 화 있을진저! 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화 있을진저!’를 요약하여 말씀드립니다. 가난한 자를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10:2). 이런 모습을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보신 것입니다. 고아와 과부의 재산을 삼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며 어두운데서 행하는 우리의 일을 누가 보겠느냐고 하는 자들이 화 있는 자들입니다(29:15). 여호와로 말미암지 않는 계교를 베풀거나, 맹약을 맺거나, 여호와의 영으로 하지 않는 자들이 화가 있는 것입니다(30:1). 도움을 구하려고 애굽으로 가는 자들이 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병거의 많음과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30:1). 자신은 학대를 당하지 않으면서 학대하고, 남을 속이고도 자신은 속임을 당하지 않는 자가 화가 있는 자입니다(33:1). 

 

이사야 45:9~10절입니다. “9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10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이런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을 무시하는 교만한 모습입니다. 이런 말은 이미 자신을 신적인 존재로 보고서 왜 나에게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하느냐는 자들의 원망과 불평에 대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화 있을진저!’ 대한 내용을 요약하여 봅니다. 간음과 음행과 가증한 것 곧 온갖 우상숭배로 인하여 화가 있는 것입니다(13:27).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22:13).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그 화 있을 진저에 대한 내용이 선지자들에 의하여 증거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행하는 자들이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에스겔서는 주술을 사용하여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13:18).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온갖 이방 나라를 의지하는 것을 보시고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16:23). 의로운 자들과 억울한 자들의 피를 흘렸기에 화가 있습니다(24:6,9). 목자들이 자기만 먹이고 양들을 먹이지 않는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34:2).

 

이 외에도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화를 받는 자들을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떠나 그릇 가 버린 것입니다(7:13). 악을 행하면서도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들이 화가 있을 것입니다(5:18). 시온에서 교만하고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지도자라고하는 자들이 화가 있을 것입니다(6:1).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 것입니다(2:1).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 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 것입니다(2:9). 이렇게 하는 것이 피로 성읍을 건설하며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것이기에 화가 있을 것입니다(2:12). 이웃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자와(2:15), 우상숭배자와(2:19), 악을 행하는 이방 나라들(2:5), 양떼를 버린 못된 목자가 화가 있을 것입니다(11:17).

 

오늘 인용한 이러한 내용들은 18년 동안 구약을 통하여 다 살펴본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최근에 오신 분들은 구약의 이런 내용들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들이 화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그 내용들을 예수님은 백성의 지도자며, 선생이며, 율법 선생이라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퍼 붓고 계십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구약 성경이 무엇을 증거 하는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39절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의 가르침을 부모와 회당으로부터 받습니다. 철저하게 가르치고 학습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는 이유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합니다. 그런데 이 성경이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성경이란 당연히 구약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약의 증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모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을 읽거나, 가르치거나, 설교를 하거나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면 영생을 놓치는 것이 됩니다.

 

요한복음 5:4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성경을 통하여 영생을 얻으려고 그렇게 연구하고 부지런히 노력하였는데 예수님께로 가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양의 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곧 아들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께로 왜 가지 않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모든 구약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을 율법 선생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의 문입니다. 천국 문을 가로 막고 있는 자들이 율법의 선생이라고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의 율법적인 노력으로 전도를 하였지만 그러나 그렇게 전도하여 율법을 행하게 하여도 이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후서 3:6절입니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3장은 옛 언약의 일꾼과 새 언약의 일꾼을 비교합니다. 옛 언약의 일꾼으로 모세를 말합니다. 그런데 율법 조문을 전한 옛 언약의 직분이 죽이는 직분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어느 인간도 율법의 조문을 다 지켜낼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죄의 직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세의 율법은 수건처럼 가려져 있기에 이 수건은 그리스도께로 돌아가면 없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 조문이 왜 죽이는 것인지 봅니다.

 

갈라디아서 3:10절입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율법조문 곧 율법행위에 속한 사람은 저주 아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이 율법을 항상 행하지 않으면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이러한 말씀의 근거를 신명기 27:26절로 삼고 있습니다. 그른데 바울도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런 자였습니다. 율법의 의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자신은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하면서 달려간 결과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핍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삼일 만에 아나니아 선지자가 기도하자 눈에 비늘같이 것이 벗겨졌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수건이 벗겨진 것과 연결이 됩니다. 그러면 이제 무엇이 저주 입니까?

 

로마서 8: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1)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우리가 이 말씀을 보면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할 때에 육신의 생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내가 육체로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세속적인 것들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용과 이생의 자랑, 곧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세상의 자랑이 될 것을 추구하는 것을 육신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런 것도 육신의 생각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문맥에서 무엇이 육신의 생각입니까? 율법의 조문에 갇혀 있는 것을 죄와 사망의 법아래 있다고 합니다.

 

율법 조문이 죽이는 직분이라는 고린도후서 3장과 연결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영은 살린다는 것은 새 언약의 직분을 말합니다. 새 언약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의의 생명의 법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하나님의 언약을 다 이루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죄와 사망의 법이 무엇인지 의와 생명의 법이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율법의 조문을 따라 살면 결국 죽는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와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게 되면 육신의 생각 곧 율법의 조문을 지켜서 의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어지는 7~10절입니다.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2)살아 있는 것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제 육신에 속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십니까? 바울사도가 율법의 조문으로 살아갈 때가 육신에 속한 때였습니다. 그 결과는 앞에서 본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로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에 있는 자란 율법 조문에 아직 머물러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그 아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는 그 아들을 향하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라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6:29)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11:6).


이어지는 12~17절입니다.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육신대로 살면 죽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하여 집니다. 육신대로 사는 것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입니다. 율법의 조문을 가르친다고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지만 이 율법이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는 역할인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살아간다면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되면 그동안 자신의 의를 쌓기 위하여 율법 조문을 이루고자 달려간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해롭게 여기는 것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들은 다시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기에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는 것입니다. 종의 영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와 사망의 법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의와 생명으로 해방되어 나온 자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이런 상속자가 되는 길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길입니다. 이 역사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자가 그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6~10절입니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을 통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로 부르신 복음을 버리고 율법 조문을 전하는 자들에게 속히 넘어가는 것입니다. 다시 율법의 조문을 지켜야 된다는 말에 바울사도는 다른 복음이 없다고 합니다. 사도들이 전한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사도가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에게 십자가는 기쁨의 소식이 됩니다.

 

고린도전서 16:22절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우리 주님이 곧 오십니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이 말을 하면서 무엇이 저주인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딤후1:10). 그런데 말은 복음이라고 하면서 생명도 아닌 것과 썩을 것을 담고 있다면 다른 복음입니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이루어낼 자신들의 욕망에 불과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시는 날에 의미 없는 것들에 목숨 걸지 마시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이며 예수님을 믿는 길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