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53~65 내가 그니라 2020. 3. 1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5)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오늘이 삼일절입니다. 191931일 정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날입니다. 1910829일 일본이 친일파들을 앞세워 한일합방을 하였습니다. 이 날을 경술국치(庚戌國恥)라고 합니다. 경술국치이후 9년 만에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습니다. 이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이 되자 일본은 무력으로 진압을 합니다. 독립 운동가를 잡아서 고문하였습니다. 천안 독립기념관에 가보면 고문한 장면들을 모형으로 만들어 전시하여 놓았습니다. 고문하던 나쁜 일제경찰의 잔재가 아직 남아있어서 장애를 가진 한 청년이 살인범으로 몰려 20년을 억울하게 감옥살이 하였습니다. 살인범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증거를 조작하여 고문하여 자백하게 하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군사독재시절에 간첩조작사건이 많았습니다. 간첩이라는 결론을 내려놓고 고문을 통하여 거짓 자백을 하게 하여 간첩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일반적인 세상에서도 불의한 권력을 유지하려고 약한 자를 정죄하여 희생양을 만들어 냅니다. ‘르네 지라르라는 사람은 문학을 통하여 이런 희생양 메커니즘을 연구하다가 성경의 예수님을 통하여 희생양이 어떤 의미였는지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재판하면서 고문으로 강제진술을 받아내는 방식은 아닙니다. 적어도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에서 율법을 따라 재판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재판은 유대인 성인 남자 두 명 이상의 증언이 있어야 유죄가 됩니다(35:30,17:6). 재판도 하지 않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이미 결의를 해 두었지만(11:18, 12:12, 14:1) 처형하려면 율법의 절차를 따라야 하기에 증인들을 모아서 율법을 어긴 증언을 하게 합니다.

 

본문 53~54절입니다. 유다가 인솔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대제사장에게로 갑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였습니다. 새벽에 공식적인 시간이 아닌데도 긴급소집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체포될 때에 도망간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습니다. 불이라는 단어에 각주가 있는데 헬라어로 빛이라는 단어입니다. 불이라는 일반적인 단어와 달리 진리의 빛이라고 할 때에 그 빛이라는 단어를 쓴 것은 다음 주에 베드로의 부인과 함께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재판 받는 과정만 보려고 합니다.

 

55~56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두 사람의 말이 일치해야 하는데 증인이라고 나온 자들이 다들 틀리게 말을 하기에 증언으로 채택 될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에 본 대로 미리 입을 맞추고 왔다면 거짓 증언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체포하고 재판하는 과정이라 치밀한 준비를 못한 모양입니다. 거짓 증언으로 살해당한 사건이 구약 열왕기상 21장에 있습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의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남편에게 주기 위하여 불량한 한 두 사람을 고용해서 나봇이 왕과 여호와를 모독하였다고 거짓 증언하게 합니다. 그 결과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판에는 그럴 겨를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 나와서 고소를 하는데 증언하는 내용이 일치를 하지 않습니다.

 

57~59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증언도 서로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한 가장 큰 이유가 성전을 허는 자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성모독이며 율법을 파괴하는 자가 되기에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짓겠다고 한 이 말도 두 명의 말이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3:1~2절입니다. “1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제자가 성건 건물을 보고 자랑할 때에 예수님은 이 큰 건물들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라고 수동태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이 한 말이 일치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연결하여 요한복음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2:19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여기서도 예수님께서 건물성전을 허신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이 성전을 할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이 나와서 말해도 일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할 후에 알아들은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자신이 성전이 되시기에 유대인들이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지만 예수님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건물 성전이 무너지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에 건물의 성전 휘장이 찢어짐으로 건물로서의 성전 기능은 끝이 났습니다(15:38, 10:20). 결국 증거를 못 찾았습니다.

 

본문 60~61절입니다.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님께 직접 묻습니다.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이러한데 너는 아무 대답이 없느냐고 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 53:7절의 성취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때 대제사장이 다시 묻습니다.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지 못하기에 찬송 받을 이라고 하면서 그 아들 그리스도냐고 묻습니다.

 

62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지금까지 침묵하신 예수님께서 네가 찬종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는 질문에 이 답변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그니라고 합니다.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입니다. ‘내가 그라는 대답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기 이름을 말씀하실 때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그 말씀입니다(3:14). 그러면서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합니다.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않는 것은 시편 110:1절의 말씀이며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은 다니엘서 7:13절의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이 다 자기라고 대답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두 가지 반응만 나옵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그 분이심을 믿는 다면 그 분 앞에 무릎을 꿇고 주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고 그에게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라면 예수님을 신성모독 자나 귀신들린 자나 미친 자로 몰아서 배척하고 죽이는 일을 하게 됩니다. 둘 중에 중간은 없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이 어떻게 합니까?

 

63~65절입니다.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다고 합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슬픔과 회개를 표하는 행동입니다. 대제사장은 예수님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권능의 보좌에 앉을 것이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보리라는 이 말씀을 듣고 신성모독이라고 옷을 찢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공회원들에게 묻습니다.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자로 정죄합니다. 재판은 끝이 났습니다. 대제사장의 입에서 신성모독 자로 몰려고 이제 사형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옷을 찢으면서 신성모독이라고 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내가 그로다고 하신 대답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이라고 대답하시면서 인자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신 것을 듣고 왜 이렇게 분노하여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님이 대답하신 그 대답이 모세가 여호와의 이름을 물었을 때에 여호와께서 대답한 그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14절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히브리어 여호와를 헬라어로 번역하면 내가 그다에고 에이미입니다. 구약의 성경을 잘 알고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경악함이 당연합니다.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거룩하신 하나님과 자기가 하나라고 하시는 이 예수님을 가만 둘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한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다는 메시아의 상과 예수님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이런 것을 하늘과 땅의 차이라는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제사장들과 그기에 동참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보고서 도저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율법과 종교적인 전통을 하나도 인정해 주지 않는 예수는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려면 그동안 자기들이 행한 모든 일들을 부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들의 행위를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의 모든 행사가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하여 너희가 믿는 않은 이유는 너희의 아비가 마귀라서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평소에 이런 말씀을 하고 다니셨기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이미 죽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그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넘기겠다고 하자 급속하게 진행이 되었습니다. 유월절 지나서 죽이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유월절에 잡히시고 죽임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이 있기에 겉으로는 율법대로 정식 재판을 열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증인들의 말들이 서로 맞지 않으니 대제사장이 직접 심문하여 이 답을 얻었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신성모독으로 몰아 죽이려고 결정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하면서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칩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조롱과 수치를 당하십니다. 이 분이 하나님이심을 누가 믿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믿는 다고 사도신경으로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분이시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장차 다시 오실 것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배척한 자들의 모습과 다를 바가 있습니까?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몰아서 죽이는 이런 자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모습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모습이 너무나 다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과 일반 백성들이 동의할 부분이 하나도 없었기에 예수님을 배척하였습니다.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 바이러스로 요란합니다. 그동안 신천지가 기성을 부려도 어떻게 하지 못하고 끙끙 거린 교회들이 일제히 반격에 나설 수 있는 호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신천지 부산지역 야고보 지파에서 우한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죽어가지만 신천지 신도들은 하나도 감염이 안 되었다는 설교를 하니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를 기존교회는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고 기도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 사태가 계속 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버드대 어느 교수가 말한 것처럼 전 세계 40~70퍼센트 감염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두 주째 인터넷으로 가정에서 예배합니다. 몇 주 전만 해도 자리가 부족하다. 예배를 일부 이부로 나누면 안 되는가 하는 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해 버렸습니다. 저는 이 바이러스를 통하여 우리의 실체가 뽀록난 것에 감사합니다. 물론 말이야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려고 한다고 저도 말합니다. 우리 교인들 가운데 여러 직업들이 있습니다. 교사도 군인도 경찰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감염이 되면 그가 속한 전체에 막대한 민폐를 끼칩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를 목숨처럼 지키자고 한 교회들도 인터넷으로 예배한다고 합니다. 안 그러면 세상 사람들은 신천지나 교회나 같이 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도행전 24:1~9절입니다. “1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6 그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1)(6하반-8상반 없음) 8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예수님이 당하신 그 일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런 대접을 받습니까? 전염병 취급을 받습니까? 오히려 세상에서 욕을 얻어먹는 것은 세상의 것을 더 추구하기에 욕을 얻어 먹는 것이지 복음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의 복음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저주 받은 내용이라서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는 로마를 반역하다 처형당한 미련하고 어리석은 내용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방금 본 사도행전의 내용은 이 세상의 질서를 뒤집어엎는 내용입니다. 세상이 받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가 바른 복음을 전한다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막는 것보다 더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오늘날 복음이 다른 복음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몇 주간 쉬시면서 내가 왜 교회당을 다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환경이 열악해서 밥 먹는 것도 밀접접촉을 해야 하고 앉는 것도 보조 의자에 불편하게 앉아야 합니다. 제가 바른 복음을 전하였다면 이만큼 모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므로 다시 모이자고 할 때에는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대로 계속하여 바이러스가 변종에 변종을 거듭하고 창궐하게 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이 되어 교회의 모임이 없어질 거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도 신천지처럼 모이려고 하면 국가권력으로 강제 폐쇄를 할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모이겠습니까? 이러함에도 모이려면 목숨을 걸고 모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함에도 모이는 자들이 있다면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배척받은 그 예수님이 내가 그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하신 분만이 자기의 뜻을 이루어 내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나사렛 예수가 내가 그라도 하신 그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입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합니다. 부활이라고 하십니다. 선한 목자이며 양의 문이라고 합니다.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눈에 보이는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내가 죽어도 괜찮은 사람입니다. ‘내가 그라고 하신 예수님이 전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