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21~43 누구의 믿음인가? 2019. 1. 13

 

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38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39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40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43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지난주의 말씀에서 누가 귀신 들린 자였습니까? 군대귀신 들린 자는 누가 봐도 다 귀신 들린 자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을에서 추방하여 쇠사슬로 묶어두어도 끊어버리고 무덤 사이에 살면서 밤낮 소리를 지르며 자해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주시자 이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을 귀신 들렸다고 추방한 자들은 자신들 재산의 손해가 났기에 예수님을 떠나 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고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계시면 손해가 된다고 떠나달라고 하는 자가 귀신 들린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 21~2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십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떠나 달라고 하였으니 예수님은 그곳에서 떠나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모입니다. 그때 회당장 중의 한 사람인 야이로가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간곡히 간구하기를 자기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셔서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말을 듣고 함께 가시는데 많은 무리가 에워싸서 밀어댑니다.

 

25~34절입니다. 회당장의 집으로 가시는 중에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은 여인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샌드위치 구조라고 해서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두 사람의 믿음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믿음을 말씀하시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당장은 회당의 예배를 주관하며 회당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의 딸이 다 죽어가게 되었으니 예수님께 나아와서 엎드려 간곡히 간구한 것입니다. 그런데 중간에 등장한 이 여인은 어떤 사람입니까?

 

12년을 유출 병을 앓고 있습니다. 레위기에 의하면 이런 자는 다른 사람과 접촉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부정함을 입게 됩니다. 이 병을 고쳐보려고 많은 의사에게 갔지만 고침 받기는커녕 괴로움만 받았습니다. 재산도 다 허비하였습니다. 아무른 효험도 없었고 오히려 더 중하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는 무리 가운데 끼어서 그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지면 율법을 어긴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한 가지 믿음은 예수님의 옷에 손만 대어도 구원을 받을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댄 즉시 자기 몸이 나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치료한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십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십니다.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무리가 에워싸서 미는데 누가 손을 대었는지 어찌 알겠느냐고 합니다. 한 두 사람이 손을 댄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십니다. 그러자 고침 받은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밝힙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이 여인의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병 고치려다가 돈은 다 떨어졌고 병만 더 중하여졌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만지면 부정을 입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데서 나온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은 믿으면 된다는 믿음 만능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없는데서 나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과 반대되는 자리의 회당장의 모습을 봅니다. 회당장은 이 여인에 비하여 모든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율법의 의도 있고, 회당장의 직분도 있고, 가정도 있습니다.

 

본문 35~36절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중에 이 여인의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시고 계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당신의 딸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선생을 더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미 죽어버린 자를 어떻게 살리겠느냐며 올 필요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회당장은 자기 딸이 죽어버렸다는 말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도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오해하여 믿음만능주의로 갈 수가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면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7장에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하나님께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그 좋은 것이 성령임을 누가복음 11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택한 자라면 내가 좋은 것을 달라고 구하였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면 무엇이 죄인지를 알고 참으로 구하여야 할 것을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오늘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기만 하면 소원이 다 이루어진다고 하면서 다른 구절도 인용합니다.

 

야고보서 1:6~8절입니다. “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오늘 본문의 말씀과 야고보서의 이 말씀을 가지고 믿고 구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는데 받지 못하는 것은 의심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의심하지 말고 두 마음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면 모든 구하는 것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앞뒤도 안 보고 아멘 하는 자들 때문에 온갖 교주가 나옵니다.

 

야고보서 1:1~5절입니다. “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복음 때문에 핍박받아 흩어진 열두 지파에게 야고보가 편지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당연히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험을 당하면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런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고 인내를 통하여 온전해 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에 우리는 지혜가 없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으면 무언가 하나님께 잘못하여 벌을 받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까닭모를 고난과 핍박을 받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할 때에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후하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고 구하여야 할 내용이 무엇입니까? 환난 가운데서 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9~11절을 봅니다. “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세상의 높아짐이나 부함을 위하여 구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인생이 부함이라는 것이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이기에 그런 것을 구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욕심에 끌리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15).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믿기만 하라는 말씀은 무슨 의미입니까? 회당장은 예수님이 자기 집에 오셔서 자기 딸에게 안수하여 주시면 낳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런데 가는 중에 한 여인의 일로 시간이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자기 딸이 죽어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 예수님도 죽은 자는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낫겠다는 믿음에 비하여 회당장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것입니다.

 

본문 37~4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떠드는 것과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비웃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웃는 그들을 다 내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 세 명과 아이의 부모만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십니다.

 

본문 41~43절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하십니다. 이 말은 소녀야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잔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걷습니다. 소녀의 나이가 열두 살입니다. 사람들이 크게 놀랍니다. 제자들과 부모가 놀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십니다. 그러면서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십니다. 분명하게 살아난 것을 보여줍니다.

 

소녀가 죽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울고 곡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일입니다. 죽은 열두 살 딸이 예수님이 들어갔다가 나오시니 살아난 것입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당신 딸이 어떻게 살아났느냐고 하면 예수님께서 살려주셨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너는 그런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책망입니다. 자신도 믿지 않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 때에 구약신학을 가르친 송제근 교수가 예배란 언약의 갱신이라는 말을 예배학에 대하여 공부하고 나올 때에 복도로 지나가면서 했습니다. 송 교수가 이 본문에 대하여 목회자 세미나를 하면서 오늘날 목사로 적용하면서 너는 설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회당장이나 당회장이나 비슷합니다. 자기가 믿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설교하느냐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본문의 대비는 아무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부정한 여인이 된 자의 믿음과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는 회당장의 믿음의 대비를 통하여 어떤 믿음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4:17~18절입니다.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2)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기록된바라고 하는 것은 다 구약의 내용들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이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은 이 여인, 아무 것도 없는 이 여인, 부정하게 된 이 여인의 믿음은 누구의 것입니까?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에게서 온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떤 믿음입니까? 21~25절입니다.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23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24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25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오늘 우리도 위함이라는 이 믿음은 예수님께서 범죄 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고 또한 의롭다 하기 위하여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인이 나에게 없고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증거 하려고 하는 내용임을 사도들이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없는 이 부정한 여인에게서 나온 믿음은 없는데서 있게 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그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나오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은 자신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 의지합니다. 이런 믿음의 사람들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주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