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14~29 세례 요한의 죽음 2019. 2. 3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이르되 이는 3)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일어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그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22 헤로디아의 4)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5)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3)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3)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5)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를 보내시는 내용이었습니다.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면서 보내시는데 전도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 배낭, 전대의 돈과 여벌 신발과 여벌옷도 가지고 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을 누가 영접하겠습니까?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느 집에 가면 빈손으로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빈손으로 오는 이런 자들을 영접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면 그 집에 머물고 영접하지 않으면 발에 먼지를 털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복음이 증거 됩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전도를 하고 다니니 소문이 났습니다. 열두 명을 두 명씩 보냈으니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복음이 전해집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귀신도 쫓아내고 병자들도 고칩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지는 것이며 이런 정보는 아주 상세하게 그 시대의 세상 통치자의 정보수집망에 의하여 보고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반응이 헤롯입니다. 이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로 주전 4년부터 주후 39년까지 갈릴리와 베레아의 분봉 왕입니다. 헤롯은 제자들의 활동을 통하여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난 보고를 받고서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능력이 예수에게서 일어난다고 본 것입니다.

 

15절입니다. 헤롯의 주변 사람들이 한 말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가 엘리야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그가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전도를 통하여 그 지역에 소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헤롯은 자기가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엘리야나 다른 선지자로 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엘리야로 보는 것은 엘리야는 이 세상에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려 졌으며(왕하2:11) 또한 말라기의 예언이 있습니다.

 

말라기 4:5~6절입니다.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다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메시아가 오시는 날입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자기들은 구원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한 자들이 율법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돌이키지 않으면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구원이 아니라 심판이 됩니다. 이런 말씀을 알고 있는 자들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엘리야로 본 것입니다.

 

마가복음 9:9~13절입니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시는 순간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이 장면을 보았습니다. 읽은 말씀은 변화산에서 내려오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본 것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까지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 말씀의 의미를 모르고 엘리야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엘리야가 먼저 와야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말라기서를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함부로 대하였다고 합니다(9:13).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엘리야라고 하셨습니다(11:14).세례요한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고난 받을 것입니다(17:12). 그런데도 헤롯과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지는 않습니다.

 

본문 16~28절입니다. “봉독 사복음서 중에 세례요한의 죽음을 마가가 가장 상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헤롯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서는 자기가 목을 벤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말한 것은 어쩔 수 없이 세례요한의 목을 베었지만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였다는 일말의 가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세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그가 세례 요한으로 인하여 번민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요한의 목을 벤 이유를 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때 유일하게 예수님께만 성령이 임하며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도 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보았습니다. 메시아가 왔기에 이제 여호와의 큰 날을 기대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심정으로 회개를 외친 것입니다. 헤롯이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자기 이복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입니다. 헤로디아의 딸은 살로메로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옵니다. 헤로디아도 남편을 버리고 더 큰 권력을 쫓아 헤롯과 결혼 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이러한 것을 보고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율법으로 헤롯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본문 17~20절입니다. 세례 요한을 헤롯이 왜 옥에 가둔 것입니까? 헤로디아가 세례 요한을 죽이라고 헤롯에게 들들 뽁은 것입니다. 자신의 권력과 쾌락을 위하여 헤롯에게 시집을 왔는데 세례 요한이 대놓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므로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서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당장 죽이지 못한 것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였기에 아내가 죽이라고 하였지만 보호하였습니다. 헤롯이 요한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침 요한을 죽일 좋은 날이 왔습니다. 좋은 날이라는 것은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일 수 있기에 좋은 날이라고 하였겠지만 사실은 영원한 심판의 날이 됩니다.

 

21~25절입니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를 합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하였습니다. 왕이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면 주겠다고 하면서 맹세까지 합니다.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겠다고 합니다. 그 딸이 그 어머니에게 말하니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고 합니다. 그러자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26~26절입니다. 왕이 심히 근심합니다. 지금까지 헤로디아가 요한을 죽이라고 하였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여겨서 보호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꼼짝달싹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잔치의 여흥에 취하여 살로메의 춤에 반하여 맹세하면서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큰소리 친 것입니다. 자기의 맹세와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거절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거절할 수 없음이 헤롯의 자존심입니다.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자기 이름이 욕을 얻어먹는 것입니다. 그것도 갈릴리 지역의 고관대작들을 다 부른 자리입니다. 그래서 살로메의 말대로 하라고 합니다.

 

27~28절입니다.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목을 베에 소반에 담아서 들고 가는 소녀의 모습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들의 잔치 여흥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를 목을 베어 소반에 담아갑니다. 그 소녀가 억세고 강한 자가 아니라 잠자리 날개 같은 옷을 입고 남자들을 호릴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소녀가 세례요한의 목을 들고 갑니다. 피가 흐르는 그 머리를 들고 갑니다.

 

29절을 봅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세례 요한의 갇힘과 죽음은 예수님께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14~15절입니다.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세례 요한이 헤롯을 책망하다가 잡히셨는데 예수님은 갈릴리에 가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그런데 왜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고 외치자가 감옥에 갇혔는데도 구하여 주시지도 않으시고 물러가셔서 복음만 전하시는 것입니까?

 

베드로전서 1:9~11절을 봅니다.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하여 얻는 구원에 대하여 구약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기록하여 두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가 받을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증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도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였기에 그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구약의 선지자와 신약의 사도들이 간 길입니다. 왜 이런 방식으로 복음이 증거 되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1:2~6절입니다. “2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5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을 증거 한 세례요한마저 유대인의 메시아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메시아를 증거 하였기에 이제 거침이 없이 헤롯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외친 것입니다. 전두환과 박정희가 권력이 있을 때에 회개하라고 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을 향하여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메시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기대한 메시아 왕국을 예수님이 이루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다른 메시아를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내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시면서 인자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조차 실족할 만한 복음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믿는 예수님은 어떤 주와 그리스도이십니까? 이 땅에 유통되고 있는 복음이라는 내용이 과연 어떤 내용입니까? 세례 요한이 회개를 외치다가 옥에 갇혀있는데 예수님은 구하여 주지도 않습니다. 심지어 권력자들의 유흥거리로 요한의 목이 잘려나가는데도 예수님은 아무른 조치도 하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복음 전하심에는 어떤 세상적인 권력의 추구나 승리주의가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 자신도 무력하게 잡히시고 제자들은 도망가고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다 이루신 것입니까?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죄와 비참함으로 죽어가야 할 자기 백성들에게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실패와 좌절 속에, 허무와 고독 속에,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그 무력함과 연약함 속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수 있는 길은 십자가뿐입니다. 저주와 수치와 침 뱉음과 모독을 묵묵히 감내하신 그 십자가만이 우리 인생이 가장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자리에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더 이상 바닥이 없다고 하는 그 밑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헤롯이 왜 요한을 목 자르라고 합니까? 요한을 의로운 사람으로 두려워도 하였지만 그러나 자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 그 자존심이 요한을 목 자르라고 한 것입니다.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이라는 설날입니다. 가족과 친척들 친구들에게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에 처하여 자존심 세울 것이 없으면 거짓말이라도 합니다. 그러니 인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명절이나 생일의 여흥이 선지자를 죽인 것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명절은 세상의 자존심이라는 묵은 누룩을 내 버리고 유월절 양으로 희생하신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날이 날마다 명절입니다(고전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