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1~8 사람의 전통 2019. 3. 10

 

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1)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2)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오늘 본문은 23절까지 연결이 되지만 내용이 많아서 8절까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이 사람의 전통입니다.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라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그 근거와 기준이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사람의 전통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까? 우리는 성경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교라고 말하는 가톨릭은 성경만이 아니라 교회의 전통과 교황의 어록까지 성경의 권위와 동등 또는 그 이상으로도 봅니다. 이러한 것들을 개혁하여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이 개신교입니다. 그런데 예배시간, 주일성수, 십일조, 각종절기 지킴이 성경대로 하는 것이니까? 교회의 전통을 따라 하는 것입니까? 사람의 전통이 어떤지 본문을 봅니다.

 

본문 1~2절을 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 중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이들이 왜 왔을까요? 갑자기 등장한 나사렛 예수라는 사람이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수많을 사람들이 따른다고 하니 어떤 사람인지 조사하려고 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언행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면밀히 살피고 있습니다. 요즈음 말로 하면 이단성이 있는지 조사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딱 걸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은 것입니다. 손을 씻지 않으면 부정한데 그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었으니 부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3~4절입니다. 괄호로 되어 있는 것은 어떤 사본에는 있는데 어떤 사본에는 없기에 이렇게 표시를 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손을 씻지 않고 먹으면 부정하게 된다는 장로들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설명을 할 필요가 없기에 생략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풍습을 모르는 자들을 위하여 포함시킨 사본도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모든 생활가운데서라도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자는 운동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자기 반성이 일어난 것입니다. 나라가 망한 것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그렇다는 자기반성에서 출발하여 모든 율법만이 아니라 세부규칙까지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이 더욱 권위가 있게 하기 위하여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문서로 전달된 모세오경만이 아니라 구전으로 받은 율법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들이 발전하여 서기 200년경에 미쉬나가 만들어집니다. 미쉬나에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구전 율법을 받아 여호수아에게 전수했고, 여호수아는 장로들에게, 장로는 선지자들에게, 선지자들은 공의회 회원에게 전수했다이 정도의 권위를 부여한 것이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후에 미쉬나가 만들어졌다고 해도 예수님 당시에 이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손을 잘 씻는다는 각주를 보면 팔뚝 까지 씻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려야 한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목욕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는데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는 것입니다. 저도 청년 때에 레위기를 보면서 씻으라는 말씀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찝찝하면 씻었습니다. 그런데 씻고 돌아서면 또 씻어야 할 일이 생기서 결벽증이라 할 만큼 씻었지만 속을 씻을 수 없었습니다.

 

5절입니다. 장로들의 유전에 철저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니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겁니다. 그래서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인들인데 왜 이들은 손을 씻지 않고 먹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드셨을 것이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라 사셨다면 음식을 드시기 전에 꼭 손을 씻고 드셨을 것이며 제자들도 그렇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장로들의 전통을 아주 무섭게 책망하십니다.

 

6~7절입니다. “6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 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철저하게 지키는데 이것이 외식하는 것이라고 책망하시면서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려고 한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게 되었다고 책망하십니다.

 

이사야 29:13절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은 그 시대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오늘 우리도 다 해당이 됩니다. 입으로는 공경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이 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의 일상에도 늘 경험합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공허한 말로 들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럴 때 영혼 없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데 마음이 먼 이유는 사람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이사야 29:9~12절입니다. “9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맹인이 되고 맹인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10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11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12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왜 입술로만 공경한다고 하면서 마음이 멀게 되었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계시를 볼 눈과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잠들게 하는 영을 부어주셨기에 술에 취한 것이 아님에도 술 취한 자처럼 비틀 거립니다. 지도자라고 하는 선지자와 선견자의 눈과 마음이 덮여있습니다. 이 말은 계시가 봉하여져 있다는 말입니다. 글 아는 자에게 읽으라고 하면 책이 봉하여져 읽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글 모르는 자에게 읽으라고 하면 글을 모른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것은 계시를 볼 눈이 없으니 결국 사람의 가르침은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29:14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가르침의 결과로 계시를 볼 눈이 없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가르침은 여호와의 계시를 본 것이 없기에 자기 마음에 나오는 것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가득하니 하나님을 헛되이 섬깁니다.

 

이사야 29:15~16절입니다. “15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 16 너희의 패역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 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하나님의 계시를 볼 눈과 마음이 닫혀 있으니 자기 속마음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고 합니다. 말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하면서도 자기 탐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지혜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사야 6:8~13절입니다.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사야 6:1절부터 보면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거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뵈었다고 합니다. 그때 천사가 여호와의 제단의 숯불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면서 네 죄가 깨끗하여 졌다고 합니다. 이때 하늘의 음성이 들리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음성에 이사야 선지자가 응답합니다. 그런데 가서 무엇을 하라고 합니까?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라고 하는 내용이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거룩한 메시야 칭호이기에 메시야 올 때 까지 눈과 귀가 감겨 있어야 합니다. 눈이 감겨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면서 온갖 부칙까지 말들어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니 결국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이며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계시가 열립니까?

 

요한계시록 5:1~5절입니다.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나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더라 4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이 계시를 받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그리로 이끌려 올라가서 본 내용들이 4장부터 시작이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승리하신 내용입니다. 재림은 20:6절 이후부터 아주 짧은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무엇을 승리하셨는지 아무도 보지 못한 그 내용은 사도요한이 계시로 본 것입니다. 그 중에 오늘 본문과 연결되는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인 사람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계시가 가려져 있기에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계시가 열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계시를 볼 수 없는 눈과 귀를 말하지만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도 계시를 받았지만 그것이 봉하여져 있다고 합니다(12:4). 그러면 언제까지 입니까? 이사야 선지자나 다니엘이나 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그리스도를 예언합니다(벧전1:10,11).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5장에서 요한이 본 내용은 하나님의 오른 편에 있는 그 봉한 두루마리를 받아서 펼쳐볼 자가 없어서 울고 있는데 장로 중의 한 사람이 울지 말라고 하면서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뗄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 책을 취하니 온 우주 만물이 주님을 찬송합니다. 그런데 이 일곱 인을 떼는 분이 일찍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입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는 자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완성하시고 여신 것을 요한이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찬송합니다(5:6~14)

 

에베소서 1:17~19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율법의 의로 흠이 없다고 할 정도로 율법에 열심이었던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았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가르침과 사람의 전통의 결론입니다. 이런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눈에 비늘이 벗겨져서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 함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서 기도하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도록 기도하는 내용이 이 본문입니다. 하나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도록 기도합니다.

 

그 하나님의 강력한 일하심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이며 동시에 성령을 자기 백성들에게 부어주심으로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1:20~23).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함께 살리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2:4~7) 이렇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르침에는 하나님의 은혜는 입에 발린 말이고 결국 사람의 열심을 이끌어내고자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로 섬겨주심의 은혜를 가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가르침이 아닌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 이루심이 무엇인지 알 뿐 아니라 그 다 이루신 내용이 우리 안에 충만히 담겨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