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7:9~13 전통으로 말씀을 폐함 2019. 3. 17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 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지난주와 연속이 되는 말씀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본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공격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가 사람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배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멀다고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예레미야도 전합니다.

 

예레미야 12:1~4절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1 야훼님, 제가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그 때마다 옳은 것은 하느님이셨기에 법 문제를 하나 여쭙겠습니다. 어찌하여 나쁜 자들이 만사에 성공합니까? 사기밖에 칠 줄 모르는 자들이 잘되기만 합니까? 2 하느님께서는 그런 자들을 나무처럼 심어 뿌리를 박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시는군요. 그런 자들은 말로는 하느님과 가까운 체하면서, 속으로는 멀리 떠나가는 것들인데 말입니다. 3 야훼여, 주께서는 제 속을 환히 들여다보십니다. 제 마음이 주께 있다는 것을 시험하여 보아서 아시지 않습니까? 저것들을 양처럼 끌어다 죽여 버리십시오. 갈라내었다가 그 날 당장 죽여 버리십시오. 4 언제까지 가뭄 든 이 땅을 내버려 두시렵니까? 들풀이 다 마르게 내버려 두시렵니까? 이 땅에 사는 사람의 잘못으로 짐승이나 새가 죽어 없어져서야 되겠습니까? 어떤 일을 하여도 주께서 보지 못하신다고 저들은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항의하고 기도해도 아무른 응답이 없으니 요즈음 드라마에서 열혈사제가 정의를 시행한다고 합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는데 인터넷에 인기 있는 드라마라고 해서 내용을 읽어보니 신부가 악인들을 응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톨릭은 사제가 있지만 개혁한 개신교는 신분적인 사제가 없고 만민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5백년이 지나도 개혁되지 못한 것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개신교의 전통이 또 자리 잡고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입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린다고 하십니다. ‘라고 하신 말씀은 지난주에 본 음식을 먹을 때에 손을 씻고 먹는 것과 여러 가지 그릇들을 씻어야 한다는 규례들 외에 고르반에 대한 말씀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나온 내용은 그릇을 씻는 내용이 있습니다만 유대인들은 지금도 그릇만이 아니라 음식을 담는 것도 먹는 것도 구별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규례들이 사람들을 얽어매는 전통들이 되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전통으로 인하여 외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입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 마음은 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다른 전통입니다.

 

10절입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습니다. 여기에 인용된 첫 번째 말씀은 출애굽기 20:12과 신 5:16절의 십계명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출애굽기 21:17과 레위기 20:9절의 말씀입니다. 그 중에 출애굽기를 봅니다.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이뿐 아니라 징계하여도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방탕하고 술에 잠긴 자는 성읍의 장로들에게 말하여 돌려 쳐 죽이라고 합니다. 이 때의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이렇게 엄중한 부모에 대한 공경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르반 사상으로 부모 공경을 하지 않습니다.

 

11~13절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너희는 누구든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제가 해드려야 할 것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라는 뜻으로 '코르반'이라고 한마디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해드리지 못하게 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전해 오는 전통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고 무엇이냐? 너희는 이 밖에도 그런 일을 많이 저지르고 있다.” 고르반의 전통만이 아니라 다른 말씀들도 사람의 전통으로 말씀을 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르반이 무엇입니까? 히브리어로 하나님께 바친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새로운 성전을 세운 때를 제 2성전 시대라고 합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 바쳐질 희생제물을 인간의 유익을 위해 사사로이 사용하려는 것을 차단하려는 금지적 맹세어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전통들이 예수님 당시에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르반 사상은 나의 재산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말을 하고 나면 그 사람의 재산을 다른 용도로 처분을 못하기에 자신의 재산으로 부모 공경하는 것이 싫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고 나면 그렇게 말한 것은 성전에 귀속이 됩니다. 성전은 이렇게 함으로 부요해 지기에 도둑의 소굴이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전통으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다고 책망한 것입니다. 유대 사회를 유지하는 장로들의 전통을 무시하니 유대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기에 예수님을 죽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교회당에 모여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성경대로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의 전통대로 하고 있습니까? 예배라는 것은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절한다는 뜻이지만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예배시간만이 아니라 우리는 늘 하나님의 섬김을 받아야만 살아갑니다. 모든 일상이 이러할 때에 삶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겨서 세상에서 복을 받고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우상숭배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흔히 하는 말이 예배 성공하여 인생성공하자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최초로 예배에 성공한 아벨은 가인에 의하여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예배성공은 십자가입니다.

 

마가복음 10:45절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우리에게 대속물로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잘 예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이 예배입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말씀하신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잘 드린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생명을 십자가로 내어주신 그 섬김 없이는 못산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7:22~25절입니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바울이 이 말씀을 전한 이탈리아에 가보면 지금도 그 당시의 신전들이 관광 상품이 되어 있습니다. 2천전에 어마어마한 대리석으로 지은 신전들이 즐비합니다. 그중에 알지 못하는 신 에게라는 신전도 있습니다. 얼마나 종교성이 많았으면 자신이 모르는 신조차 섬기려고 한 것입니다. 종교성은 신을 섬겨서 화를 면하고 복을 받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시며 사람이 지은 건물에 계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이전에는 간과 하셨지만 이제는 회개하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7:30~31절입니다. “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신 그 기준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성경대로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성경대로 삼일 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지 않으면 그것이 심판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증거 하면 종교성에서 돌아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증거 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받을수록 더 강하게 전하여집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이 힘을 잃기 시작합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박해하지 않고 심지어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면서 기독교는 핍박당하는 종교가 아니라 핍박을 하는 종교가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4세기부터 약 천년을 기독교가 세상의 권력을 등에 업고 힘을 가지게 됩니다. 심지어 교황은 태양이며 황제는 달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때에 온갖 이방종교와 미신들이 기독교라는 옷을 입고 들어옵니다. 온갖 사람의 가르침과 전통이 가득하게 된 때에 수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등장합니다. 많은 개혁자들이 핍박을 받고 목숨도 잃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자들의 한결같은 내용은 사람의 전통이나 교회의 전통이 아니라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종교개혁 501년이 지났습니다만 개혁교회 안에 사람의 전통이 없습니까? 우리가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 교회에서 하라고 하는 것들이 정말 성경적인가 하는 의심을 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의심을 하면 벌 받는 줄 아는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청년 때에 절에서 공부한 후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산의 어느 절인데 작은 절의 주지가 절에서도 여자가 있고 도시에도 다른 여자가 있었답니다. 이 일로 다툼이 일어나 절에 있는 여자가 부처님(불상) 앞에서 바른 말하라고 합니다. 중이 화가 나서 불상을 부수어버리고 그 불상을 수리한다고 또 돈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그때 제 후배가 어느 불자에게 왜 이런 곳에 오느냐고 하니 내가 중보고 오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보고 온다고 한 것입니다. 대단한 종교심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교회 다니는 우리의 종교성을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의 전통과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일들이 구약에도 있었고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때에도 있었습니다만 핍박을 받을 때는 종교성이 많이 자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중세가 되면서 온통 우상과 미신이 가득한데도 사람들의 가르침과 교회의 전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며 종교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과연 사람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직분을 주는 기준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일성수와 십일조입니다.

 

창원기독교 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의 12가지 질문 중에 주일성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이미 설교시간에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주일성수라는 말이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는 어떻습니까? 제가 몇 년 전에 서울에 말씀을 나누려고 갔을 때에 김태규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이분이 율법과 복음에 대한 책을 만들어 무료로 나누어 주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전화가 와서 십일조 문제에 대하여 공개적인 제안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카페를 만들고 동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유투브나 구글에 십일조상금 삼천만원검색하면 나옵니다.


십일조 안하면 도둑놈이다. 십일조 안하면 저주 받는다. 십일조가 선악과다. 십일조가 축복의 종자 씨다. 농부가 종자 씨를 먹지 않는다. 십일조를 안 해서 받은 저주와 십일조를 해서 부자 된 간증들을 하면서 십일조를 하라고 한다. 이런 십일조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해야 한다고 바르게 증명하면 상금을 삼천만원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전 재산인데 통장의 잔고증명서를 저에게 보여주면서 이 운동을 하겠다고 하면서 이 일에 참여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2:12~19절입니다. “12 너희가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우리가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모든 것들이 정말로 성경에 있는 말씀인지 아니며 사람의 전통으로 그림자를 붙들고 있는지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율법이 있으면 우리가 불리합니다. 율법을 지키려면 다 지켜야 합니다. 하나라도 어기면 죄가 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의 저주를 십자가로 다 받으셨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을 지우고 제거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버렸습니다. 법조문 많이 아니라 모든 날과 달과 절기들은 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그림자역할입니다. 이제 실체가 오셨습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다시 율법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은 십자가를 다 이루심을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의 머리를 붙들지 않게 됩니다. 교회란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늘 질문하면서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사람의 가르침과 전통을 따라 살아가는지 성경의 말씀 곧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 생활하는지 분별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컷 신앙생활 했다고 했는데 종교생활 하다가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시면 꼭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하고 상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람의 설교나 가르침이나 전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