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1~13 표적을 구하느냐? 2019. 4. 21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1)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2)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2)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2)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지난주에 귀가 먹고 말이 둔한 자를 예수님께서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에바다였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 말씀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생명과 썩지 아니할 내용입니다.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에 대하여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귀가 열리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의 기적과 비슷합니다. 이미 마가복음 6:30~44절의 오병이어 기적은 제자들이 무리들을 마을로 보내어 음식을 먹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합니다. 그러자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라는 말이냐고 묻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한 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에게 떡 몇 개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시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나누어 주시자 오천 명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 중심의 오병이어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열두 광주리의 상징하는 바가 열두 지파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의 숫자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먼저 무리의 굶주림을 말씀하십니다. 본문 1~4절을 봅니다.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긴다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계시는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 무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은 지 사흘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먹을 것을 가져왔는지 모르지만 광야에서 사흘 동안 지나니 먹을 것이 다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 할 것이라고 하시면서 멀리서 온 자들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 제자들이 어떻게 대답을 합니까?

 

본문 4절입니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오병이어의 기적 때와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마가복음 8:14~21절을 보면 이 기적이후에 다시 배를 태고 가면서 남은 떡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떡을 가져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조차 아직도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며 들을 귀가 없다고 하십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본문 5~1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떡이 일곱 개 있다고 합니다. 무리를 앉게 하시고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에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줍니다. 그리고 생선 두어 마리로 그렇게 하십니다. 그러자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입니다. 먹은 사람이 약 사천 명입니다. 오병이어에서는 유대인 중심이라면 이곳에서는 이방인도 많이 섞인 곳이라고 봐야 합니다. 갈릴리 이방인이 섞여 사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들도 예수님의 떡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남은 광주리가 일곱입니다. 역시 이것도 우연히 남은 광주리의 숫자가 아닙니다.

 

열두 광주리의 의미가 있듯이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의 뜻을 말합니다. 오병이어의 말씀을 보면서 요한복음 6장과 연결하여 썩는 양식을 보고 온 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가 참된 생명의 양식이라는 말씀 앞에서 다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간에 예수님의 기적의 사건을 보고 썩는 양식을 주는 세상의 메시아로 보았다면 이들은 결국 생명의 떡을 주시기 위하여 자신의 살과 피를 주셔야 하신다는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갈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남게 되는 자들은 열둘과 일곱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들만 온전히 남게 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제자들은 눈과 귀를 열리지 않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35:1~4절입니다. “1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광야와 메마른 땅이 꽃이 피고 아름답게 변하는 것을 여호와의 구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약한 속과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여호와의 구원을 소망합니다.

 

이어지는 5~10절입니다. “5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6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9 거기에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여호와의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 구원으로 인하여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구원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지난주에 본 에바다의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구원이 일어났음을 메마른 광야에서 굶주린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긍휼을 베푸셔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구원이 일어났음을 보여주신 표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제자들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 8~10절입니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고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 무리들을 흩어 보내십니다. 왜 예수님을 이러한 무리들을 흩어 보내시는 것입니까? 썩는 양식을 보고 따라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리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열두 광주리와 일곱이라는 숫자들이 의미가 있습니다.

 

이사야 10:22~23절입니다. “20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23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로마서 9:27~29절입니다. “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28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남은 자만 구원받는 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긍휼로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일하심이 못 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힐난합니다.

 

본문 11~12절입니다. “11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표적을 다 보여주셨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유대인들은 압니다. 귀가 먹고 말이 어눌한 자가 듣고 말하게 되고 광야에 식탁이 베풀어집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보고서 메시아로 믿지 못하고 또 다른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들에게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미 나타난 표적으로도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오늘 본문의 기적을 보고서도 이들은 또 다른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것입니다. 더 강한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합니다.

 

평행본문인 마태복음을 보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떠나십니다. 오늘 본문도 배를 타고 건너온 지역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자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버리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무슨 표적을 구하시겠습니까?

 

마가복음 14:22~23절입니다.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최후의 만찬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시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십니다. 이것은 오병이어의 기적과 오늘 본문의 기적과 똑 같은 표현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떡을 떼어주시면서 자신의 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잔을 주시면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유일한 표적입니다. 즉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는 결코 표적이 아닙니다. 신명기 율법에 의하면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 받아 죽는 죽음입니다(21:23). 그러므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결코 믿을 수 없는 저주 받아 죽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이 표적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내가 너희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너희는 이것을 도저히 표적으로 믿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 예언들을 문자대로 성취하셔도 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믿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다는 것은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40일간 지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신다는 말씀은 이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죽으심과 떠나심으로 성령을 보내신다는 약속을 하셨고 승천하신지 10일 만에 오순절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그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한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유일한 표적입니다.

 

고린도전서 1:22~24절입니다. “22 유대인은 2)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증거 됩니다. 그런데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도 지혜를 찾는 헬라인도 믿을 수 없지만 부르심을 입은 자는 믿게 됩니다. 그러므로 참된 표적은 세상 사람들이 미련하고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가 표적입니다.

 

갈라디아서 3:10~14절입니다. “10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에게 미련스럽게 보이는 십자가가 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전혀 표적이 안 되는 십자가가 택함을 입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원의 능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에바다의 사건과 연결하여 오늘 본문을 보면 구원이 일어난 것입니다. 광야에 식탁이 마련된 것입니다.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합니다. 주의 구원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