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32~34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019. 8. 4

 

32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그들이 놀라고 따르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가 당할 일을 말씀하여 이르시되 33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34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지난주의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다 버리고 따랐다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이 다 버리고 따랐다는 말을 예수님께 한 것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입니다.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다는 부자가 자신의 것을 다 버리지 못하여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자신들은 다 버리고 따랐는데 우리는 무엇을 얻느냐고 물어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 버린 자는 현세에서 백배나 받고 내세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현세의 백배란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새로운 가족인 교회입니다.

 

참된 교회란 성령이 임하여 자기주장이 죄인 줄 알고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십니다(16:8). 여기서 죄에 대하여 책망하신다는 말씀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라고 합니다(6:9). 그러면 성령이 임하여 깨닫게 된 죄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까? 작은 이익 앞에 얼굴색이 달라지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구요? 자기 자존심이 조금만 상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요? 우리는 제자들처럼 다 버리고 따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봐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앞장서 가시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시면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당하실지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가시는 길이 어떤 길인지 분명히 알고 가십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할 것을 생각하고 따라 갑니다. 그래서 전에 동상이몽이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무슨 일을 당하실지 두 번이나 말씀하셨고 오늘은 세 번째로 말씀하십니다. 앞의 두 번 말씀을 봅니다.

 

마가복음 8:31절입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시자 제자들이 바른 답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비로소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실지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말리고 나섰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는데 제자들은 성공을 꿈꾸며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생각입니다.

 

마가복음 9:30~32절입니다.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두 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깨닫지도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32~34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앞장서서 가십니다. 그런데 따라가는 자들이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고난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두제자들에게 자기가 당할 일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넘겨지면 대제자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방인들이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지만 예수님은 삼 일 만에 살아난다고 하십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날 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십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그 결과가 수치와 조롱과 죽임 당함을 안다면 그 길을 가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고 부활하십니다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무리들이나 제자들은 그 부활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전혀 경험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말씀은 들리지도 않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만 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메시아가 죽으시면 메시아 일의 실패로 알고 그 죽음에 대하여 묻기도 두려워하는 제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 번이나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고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누가복음 13:33절입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31절부터 보면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곳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알려줍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예수님 자신이 하실 일을 온전히 이룰 것이라고 전하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이유는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일이 없다고 하신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죽기 위하여 가십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성전이 있습니다. 온갖 율법의 규례를 따라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킵니다. 대제사장과 수많은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자들이 가득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이런 곳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밖에서 선지자가 죽는 일이 없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성전과 율법이 무엇을 말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소경이며 귀머거리임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11:47~51절입니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는 가짜들이 진짜 선지자를 죽인 것입니다. 그러자 선지자들을 죽인 후손들이 우리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면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가 사도들을 보내면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박해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죽임 당한 자들을 아벨에서부터 제단과 성잔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말씀하시면서 그 피 값을 이 세대가 담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러한 선지자들을 보낸 주님이 오셨지만 그 주님을 죽임으로 이들의 악함이 어떠한지 드러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계속하여 이 말씀을 보겠습니다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당하실 일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십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은 다 잡아 죽여서 교회를 완전히 멸하여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인줄 알고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의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가다가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만난 후에 완전히 달라져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됩니다.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삼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바울사도도 예루살렘에 가면 자신이 무슨 일을 당할지 알고 갑니다.

 

사도행전 20:22~24절입니다.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바울사도가 밀레도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를 청하여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자신이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합니다.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어느 성이든지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복음 전함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사도행전 21:10~14절입니다.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길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예루살렘으로 가신 예수님의 길이며 성령이 임한 바울이 간 갈입니다. 분명히 예루살렘으로 가면 환난을 당하고 죽는 길임을 압니다. 그러함에도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인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다고 합니다. 바울자신도 유대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동족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결국 예루살렘으로 가고 로마까지 죄수의 모습으로 갔지만 복음을 전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디로 가는 길입니까?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 선지자들이 증거 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바울도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은 죽음의 길인 줄 알지만 그 길로 갔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디로 가는 사람들입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면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죽임을 당하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게 부활하신 주님은 믿는 자들 안에 영으로 오십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은 이 땅의 삶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새로운 예루살렘을 사모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3:11~13절입니다.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예수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 그가 받은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것은 복음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는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이 이기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세상의 성공이나 자아실현이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한다고 합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며 이들을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1~2절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이 새 예루살렘이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 받은 자들을 새 예루살렘이라고 합니다. 이 길로 가는 자들이 성도입니다. 그 가는 과정은 예수님께서 가신 길과 바울사도가 간 길처럼 자기가 부인되어지는 길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 속에서 가는 길은 자기의 것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 빼앗기는 과정입니다.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게 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만들어진 곳이기에 오직 은혜로만 만들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이 곳에는 단 하나라도 자기의 것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에 이 세상에서 다 털리고 빈손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은 한 결 같이 나는 없음이며 주님이 전부라는 고백을 삶으로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