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35~45 인자가 온 것은 2019. 8. 11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39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지난주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방인들이 능욕하고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지만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예수님은 세 번이나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어느 정도 말귀를 알아야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들이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그 조건으로 무엇을 얻겠느냐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본문 35~37절을 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나아와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되면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게 가시면 무슨 일을 당하실지 두 번이나 말씀하셨고 지난주에 본 대로 아주 구체적으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며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의 손에 넘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등극하면 그 좌우편에 앉기를 원합니다.

 

38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따라온다고 하지만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성경에서 잔을 마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잔이 있으며 축복의 잔도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지금 마신다는 잔은 어떤 잔이겠습니까? 진노와 심판의 잔입니다. 그리고 세례는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잔을 마시고 세례도 받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이런 말씀을 고진감래(苦盡甘來)정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큰소리치던 제자들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갑니다.

 

39~41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시려는 잔과 받으실 세례를 그들이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겠지만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그 고난의 길을 지금은 따라가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 하셔서 성령을 보내시면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가신 길로 가게 됩니다. 그렇게 가게 되어도 그들이 예수님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의 세례를 받은 조건으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평행본문에서는 그 자리는 이미 아버지께서 정하여 놓으신 것이라고 합니다(20:23).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하지만 아무 것도 버린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린 만큼 더 큰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그들의 속셈은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지 경쟁하면서 따라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좌우편에 않는 것이 그들의 충성도에 따라 보상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다른 사람보다 더 충성하여 더 높은 자리 차지하려는 마음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아직도 자신들이 따라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모르고 서로 높아지기를 경쟁하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와 요한 외에 열 명의 제자들이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다른 제자들도 같은 마음인 것입니다.

 

여기서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다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상을 주지는 않습니다. 지극한 정성을 바치면 하늘이 감동하여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자기의 소원이 강렬할수록 더욱 지극한 정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종교성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이 속담에는 하늘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 대상이 하늘이어도 상관이 없고 해와 달과 별과 바다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나의 소원만 이루어진다면 어떤 대상이라도 나의 정성을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면서 충성경쟁을 하는 것도 종교성입니다. 서로 높은 자리 차지 하기위하여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 나라는 세상의 나라이지 결코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것입니다.

 

본문 42~45절을 공동번역으로 봅니다. “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놓고 "너희도 알다시피 이방인들의 통치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을 강제로 지배하고 또 높은 사람들은 백성을 권력으로 내리누른다. 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세상의 사람들이 높아지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을 섬기려고 합니까? 사람들의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까? 국회의원들 선거할 때에 어떤 말을 합니까? 국민의 머슴이 되어 잘 섬기겠다고 합니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투표로 뽑는 사람들이 선거에 나오면 전부다 잘 섬기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사람치고 정말로 잘 섬기는 사람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물론 제대로 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만 조직 속에 들어가면 자기 조직에 반대되는 목소리를 내면 가차 없이 제거하여 버리는 것이 조직의 힘입니다.

 

세상은 이러하여도 예수님은 따르는 자들이 이런 생각으로 따르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으뜸이 되려고 하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남을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고 으뜸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많은 사람의 섬김을 받는 사람이 큰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많은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로 섬기는 사람입니까? 자기의 자기됨을 다 버리고 종으로 죽기까지 섬기는 그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미 타락한 세상은 아무도 그렇게 살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하니 지옥입니다. 제자들 사이에서도 시기와 경쟁을 하면서 따라갑니다. 예수님은 자신은 섬기기 위하여 종의 자리로 내려가십니다. 종보다 더 낮은 십자가에서 저주 받는 죽음의 자리로 가시는데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려고 따라갑니다. 이것을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믿고 따라가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내가 주님을 열심히 섬긴 것만큼 세상에서 높아지고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저 세상에서도 높아지기를 바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잘 못 알고 잘 못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예수님의 섬김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느 정도로 섬김을 받아야 합니까?

 

본문 45절을 다시 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을 자신을 인자라고 합니다. 인자란 다니엘서에도 나오는 표현입니다. 다니엘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서에 나타난 인자라는 이 말씀만 보면 하늘 구름을 타고 그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 인자입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이 그를 섬기게 될 것이며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을 영원한 권세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인자의 나라가 되려면 먼저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다니엘서에 다 나와 있지만 그런 내용은 보이지 않고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서는 메시아 왕국을 꿈꾼 사람들이 유대인들이며 제자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자의 영원한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서는 인자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합니다. 그 죽으심으로 많은 사람을 대속하여 낸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며 이러한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이런 인자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의 죽으심으로 섬겨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53:10~12절입니다. “10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3)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11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여호와의 종이 고난 받으심과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내신다는 예언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구약의 선지자들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이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속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나를 섬겨주셔야 함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교와 완전히 다른 복음입니다. 이런 복음을 믿는 믿음은 사람에게서 나올 수가 없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주셔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성령이 임하여야 믿는 것이며 성령이 임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46~49절입니다.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3)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스데반 집사가 이 설교를 하고서 돌에 맞아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시고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는 다는 말씀을 견딜 수가 없어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인용된 말씀이 이사야 66:1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실제 건물 성전을 지은 솔로몬도 하나님은 사람의 손에 지은 전에 계실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왕상 8:27). 스데반 집사를 돌로 친 자들은 자신들이 지은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 성전의 제사를 받아서 자기들에게 복을 주신다고 부지런히 섬긴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에 성전의 휘장이 찢어짐으로 이미 성전의 기능이 끝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이며 성령이 임한 자가 성전입니다.

 

사도행전 17:22~25절입니다. “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그리스 아테네에 온갖 신전들이 가득합니다. 지금도 그 유적들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그들의 종교성을 지적하면서 참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잘 대접하여 드리는 것은 성전을 짓고 주님을 섬겨드리려고 하는 종교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를 섬겨주셔야 할 정도로 우리는 전적인 죄임을 알고 어린 아이처럼 주님의 섬겨주심을 받아들이는 자가 예수님을 대접하여 드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