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15~19 성전, 강도의 소굴 2019. 9. 8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무화가 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신 말씀과 그 저주대로 말라 죽어버린 사건 가운데 성전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의 저주로 말라 죽어버린 것처럼 강도의 소굴이 된 성전을 폐기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이 내용을 성전 청결사건으로 보신다면 성전을 깨끗이 하셔서 다시 사용하시기 위하여 청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을 헐어버리라고 하셨기 때문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을 의논한 것입니다.

 

본문 15~16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습니다.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십니다.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먼 지역에서 성전에 제사하려고 오려면 짐승을 끌고 오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는 것들을 돈으로 바꾸어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에 가서 다른 것을 구입하여 드리게 하였습니다(14:25,26). 그리고 통용되는 돈은 로마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형상금지의 율법을 따라 성전에서 사용하지 않기에 성전에서 통용되는 돈으로 환전을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에서 매매하는 일들은 율법과 대제사장들의 허락 하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차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신 후에 가르치십니다. 그 내용은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의 내용입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였는데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이사야서의 내용은 다음 주에 기도와 용서에 대한 말씀을 통하여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중심으로 보려고 합니다. 성전에서 매매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으시고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하여 어떤 반응들을 보이는지 봅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의논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 의도는 마가복음 3:6절부터 나옵니다. 예수님을 고발할 거리를 찾으려고 호시탐탐(虎視耽耽) 노리는 자들 앞에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십니다. 너무나 쉬운 대답인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악한 모습입니다. 그들은 그림자인 안식일을 지키느라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들 앞에서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쳐주십니다. 안식의 주인으로 안식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가지고 안식일에 일을 하였다고 하면서 바리새인들이 헤롯당과 함께 예수님을 죽일 의논을 합니다. 그 이후로 계속하여 예수님의 언행을 살핍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계획을 본격적으로 가동을 합니다. 그런데 그 이유를 18절에서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언행을 옳게 여기며 따라간 것을 종교지도자라는 자들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간다면 그동안 성전 중심으로 돌아간 유대의 종교체제라는 것이 무너질 것입니다. 율법도 해이하게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성전에 생존이 걸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니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심도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께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니 그들이 죽이려고 합니다.

 

예레미야 7:11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한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성전이 있고 제사를 드리고 있으니 유다 나라가 망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곳이 성전이라고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일상적인 삶은 약한 자들을 학대하고 억압하는 거짓이 가득한데 성전에 와서 제사 드리면서 자신들이 구원받았다는 거짓 확신을 가지는 이런 모습이 도둑의 소굴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7:1~4절을 봅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 곳에 살게 하리라 4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성전제사가 있는 시대에 성전에서 제사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성전이 거짓말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5~7절입니다. “5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 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7 내가 너희를 이 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무궁토록 준 땅에니라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는 것은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라고 합니다.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합니다.

 

8~11절입니다. “8 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 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선지자들의 이런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런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였기에 결국 나라가 망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바벨론 포로에서 70년 만에 돌아옵니다. 성전이 재건됩니다. 그런데 구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에서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1:10). 말라기 이후로 무려 400년간 하나님의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에 바리새파 운동이 일어납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남으로 성전제사나 절기들을 철저하게 문자대로 지킵니다. 이러한 시대에 침묵을 깬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그가 세례요한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외칩니다. 세례요한은 태어날 때에 기적이 있었던 사람이며 제사장의 아들이기에 사람들이 무시하지 못하고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례요한이 가리킨 사람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회개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이 예수님께서 모든 구약의 언약들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전도 절기도 다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내용이기에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자기 죽음으로 이루어 내십니다. 그러므로 성전도 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삼일 만에 일으키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자신이 성전이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건물성전을 파기 하시고 자신의 몸 된 성전을 세우십니다(2:19~2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어 주십니다. 성령이 임한 자가 성전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7:46~51절입니다. “46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3)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더니 47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니라 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가 말한 바 49 )주께서 이르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냐 50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 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구약의 선지자를 핍박한 자들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그렇게 하였는데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른다고 합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가 아직도 성전제사를 고수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보고 말한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리기는 하였지만 이를 갈고 있는데 스데반 집사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귀를 막고 달려들어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입니다. 건물성전을 지키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으신다는 말을 이사야 선지자, 예레미야 선지자, 성전을 지은 솔로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 집사, 바울사도가 다 그렇게 증거 하였습니다. 바울사도는 참 신은 성전에 계시지 않으실 뿐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생명과 만물과 호흡을 주신다고 합니다(17:24,25). 이들이 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순간 성전 휘장이 찢어짐으로 성전의 기능이 끝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이 성전입니다(고전3:16, 6:19).

 

출애굽기 15장을 보면 출애굽 하여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가 찬송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언약을 따라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을 주의 힘으로 약속의 땅에 심으신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자기 처소를 만드시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영원 무궁히 다스려 달라고 합니다(15:17,18). 시편 90편은 모세의 시로 되어 있는데 영원부터 영원까지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처소가 되신다고 찬송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하신 자들을 하나님의 거처라고 하시는데 그렇게 구속받은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영원한 처소라고 찬송합니다. 이런 구약의 내용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서 예수님께서 거처를 마련하신다고 합니다. 그 거처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거처를 마련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그 깨어짐으로 예수님 안에 계신 그 성령을 자기 백성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아버지가 계시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 예수님이 계시는 그 하나 됨의 관계 속에 자기 백성도 참여시키시는 일을 십자가로 이루신다는 것이 거처를 마련하시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성령이 임한 성도가 성부와 성자의 거처가 되십니다(14:23).

 

또한 성령이 보증하십니다(고후5:5, 1:14). 성령이 보증하신다는 것은 아직 몸의 구속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8:23). 몸의 구속 곧 부활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격할 뿐만 아니라 그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3:4). 그러므로 성도는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 결코 슬픔이 아닙니다. 오히려 설레는 기다림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24절에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오늘 하루 더 그 영광의 날에 가까워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건물성전을 철거하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세우시는 내용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성령이 임한 자는 성전이 된 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합니다. 우리 안에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의 가치관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보의 그림을 보면 예수님께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시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예수님의 눈치를 보면서 자기 물건들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저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지만 성령이 임하였다면 건물성전처럼 파기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책망하십니다. 책망을 받을수록 믿음의 창시자며 완성 자이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합니다.

 

에베소서 2:20~22절입니다. “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바로 앞의 말씀을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이 원수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원수 된 관계를 예수님의 자기 육체로 허무시고 한 새 사람을 지어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된 자들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 성전이 이제 다 지어져 갑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 되고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이 되면 이 역사는 마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전이 된 사람이라면 세상의 요란함에 함몰되지 않고 주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