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20~26 성전, 기도와 용서 2019. 9. 15

 

20 그들이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21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26 2)(없음)

 

본문 20~22절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아침에 어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곳으로 지나갑니다. 그 무화가 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가 나무가 말랐다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무화가 나무가 예수님의 저주로 인하여 뿌리째 말랐다고 제자들이 말씀을 드리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랍비 곧 스승이라고 불렀지만 일반적으로 존경받는 율법의 스승 전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현존으로 일하고 계심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3~24절입니다. “봉독 기도에 대한 설교나 기도에 대한 말을 할 때에 이 말씀은 인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두 문장을 잘라서 인용하게 되면 기도는 만사형통을 이룬다. 기도는 마스터키다. 기도에는 불가능이 없다는 식으로 제목을 붙입니다. 그래서 기도한 내용을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된다고 합니다.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은 줄로 여기라고 합니다. 제가 석포교회 전도사로 있을 때에 담임목사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당 바로 앞 작은 산에 절이 있었는데 기도하였더니 어느 날 포클레인이 와서 그곳을 철거하고 문화회관이 생겼다고 합니다. 실제로 문화회관이 들어선 작은 산은 광안리 바닷가에 매립하려고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믿고 기도하면 받는다고 하면 아멘 합니다.

 

우리 교회당 뒤편에 토지공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이곳에 종교부지가 들어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합니까? 토지공사 측에 가서 토지 정리를 우리가 다 해 줄 테니 그 종교부지 우리에게 달라고 하면 되겠습니까? 토지 정리정도가 아니라 비음산(飛音山) 자체를 마산이나 진해 앞바다로 옮겨지도록 기도할까요? 이루어줄 믿고 기도한 후에 마음에 의심하지 않으면 이루어진다고 하신 말씀을 믿고 우리도 기도할까요? 만약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어떻게 이루시는지를 보여주심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산더러 바다에 옮겨지라고 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신 산이 무슨 산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장소가 예루살렘 성이 있는 곳입니다. 예루살렘 성 앞에서 저 멀리 있는 산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산이라고 하면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입니다. 이런 시온 산이 바다로 옮겨지라고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것은 시온 산에 있는 성전을 파괴하는 내용과 같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시편46). 그뿐 아니라 시온 산은 종말에 모든 산 위에 우뚝 설 것이라고 합니다(2:2,4:1). 이러한 산이 바다에 빠뜨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분문 20~22절을 봅니다. 무화과나무가 뿌리째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예루살렘이 있는 시온 산, 그곳에 있는 성전마저 완전히 파기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으로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가 함께 하시면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지는 일이 있어도 그 피난처는 안전하다고 합니다(46:1).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성전이 있는 산이 바다에 빠진다면 그것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시고 떠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전이 기능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6:3절을 보면 여호와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육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영 곧 루아흐가 함께 하지 않으니 인간이 바사르몰락할 인간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바사르에 대한 심판이 홍수심판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에 보면 이 세상의 종말을 맷돌 같은 돌을 바다에 던져버리면 다시는 보이지 않게 빠지는 것으로 바벨론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두 곳의 말씀과 연결하여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시온 산이 바다에 빠져서 다시 보이지 않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건물성전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성전의 기능이 기도와 용서가 일어나야 하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하는데 도둑의 소굴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처음 성전을 완공하고 난 후 성전의 기능을 보겠습니다.

 

열왕기상 8:22~24절입니다. “22 솔로몬이 여호와의 제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과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과 같으니이다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한 후에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만 자신이 지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언약하신 것을 이루심이 오늘과 같다고 하면서 그 언약을 계속 이루어달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27~30절입니다. “27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28 그러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이 종이 오늘 주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시오며 주의 종이 이 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 주의 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지만 하나님을 성전에 계실 수 없을 정도로 크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성전을 왜 지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언약궤를 모셔둔 곳이기에 여호와의 눈이 이곳을 향하여 보는 것입니다. 성전의 가장 거룩한 곳에 언약궤가 있습니다. 그 언약궤 덮개의 이름이 속죄소입니다. 대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어린 양의 피를 뿌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속죄소 위에서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전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피 흘림을 통하여 속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눈이 성전을 보신다는 것은 피 흘림을 통하여 속죄를 보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건물의 성막이나 성전의 기능들이 기도와 용서를 위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31~53절까지의 내용 전체가 죄를 지었기에 벌이 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직접 기도할 수가 없습니다.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속죄가 없으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과의 관계에서 죄를 범하거나, 밭의 깜부기가 생기거나, 가묾이 오거나, 포로로 잡혀 가거나 간에 한 사람이라도 죄를 깨닫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이방인들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기도하면 들어달라고 합니다.

 

41~43절입니다. “41 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 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이스라엘 백성들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소문을 들은 이방인들도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주시도록 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성전은 기도하는 집인데 만민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56:3~7절입니다. “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6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7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1)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이 이 문맥에서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이 말씀과 지난주에 본 예레미야 7장의 말씀을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지금 율법을 지키고 성전을 지킨다는 자들이 강도의 소굴을 만들어 놓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성전의 진정한 기능이란 제사를 통하여 속죄를 보여주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기도처럼 비록 이방인이나 고자라도 여호와께 연합된 자는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아주신다고 합니다. 여호와께 연합하는 자의 주요 특징은 안식일 지키라고 합니다. 안식일은 창조와 구원의 선물이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에 자기 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고 고백하는 자들이 여호와께 연합하는 자들이기에 이방인이나 고자라도 성전에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이방인의 구역과 여인들의 구역을 유대인 남자들의 구역을 철저하게 구별합니다. 물론 제사장들의 구역에는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함이 당연합니다. 이렇게 율법을 지킨다는 그들은 고자와 같은 장애인이나 세리나 창기나 이방인들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성전입니다. 만약에 이방인이 개종하지 않고 성전에 들어서면 죽이기까지 하는 것이 당시의 성전 규례였습니다(21:27~30).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성전을 뒤집어엎으시면서 이 성전을 헐라고 합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기에 이 성전을 헐고 삼일 만에 새롭게 지어 정말로 만민이 기도하고 용서 받는 성전을 짓는다고 하십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신의 몸으로 세우시는지를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2:20~23절입니다.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21 그들이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쭈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이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때입니다. 이 때에 헬라인 몇 사람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통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찾아온 이방인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 중에 빌립을 만나서 예수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빌립은 헬라식 이름입니다. 갈릴리 지역에서 헬라문화가 섞여 있기에 이런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과 안드레가 예수님께 헬라인이 찾아왔다는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합니다. 이방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이 왜 인자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까?

 

이어지는 24~33절입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25 자기의 4)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4)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27 지금 내 4)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29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이니라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33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말씀을 들으시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십니다. 그 영광이란 예수님의 들리심 곧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많은 열매를 맺으시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이방인도 포함하여 이끌어 들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남자나 여자가 종이나 자유인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서서 한 성령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거처를 삼으십니다.

 

본문 25~26절입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기도해야 합니까?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26절은 없음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본의 차이로 이렇게 한 것입니다. 없음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만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은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데 용서하지 않는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반드시 용서가 무언지 알고 용서를 받고 용서를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용서가 어떠함을 알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고 성전과 제사를 통하여 속죄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나의 죄로 인하여 죄 없는 짐승의 죽음을 통하여 죄의 삯은 사망임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죄를 짐승의 피로는 용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를 사람이 갚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서 사람의 죄를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 없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셔서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들리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자기 백성들을 들어 올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땅의 원리에서 들리는 것입니다. 땅의 원리는 철저하게 인과율이며 거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여 성전 된 성도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압니다. 내가 그동안 살아온 것이 하나님을 살해한 가해자임을 알게 됩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살해한 것이 죄 임을 압니다. 이 죄는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죄를 알뿐 아니라 용서 받고 용서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씀은 성전이 무엇인지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것인지도 알려줍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란 사람의 어떠한 외적이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연합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길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복음을 듣고 믿는 것입니다. 복음은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선포입니다. 이 선포 앞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자신이 어떠한 용서를 받았는지 알뿐 아니라 같은 신앙 고백의 형제를 용서합니다.

 

성령이 임한 자들이 성전이며 이렇게 성전이 됨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그 놀라운 연합에 자기 백성들을 참여시킨 것입니다. 이 일이 성부와 성자의 성령의 일입니다. 그리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 안에서 영원히 사시는 것이 성전의 완성입니다. 이 성전 된 그리스도의 몸에 이방인인 우리가 참여되는 것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건물로 된 성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전히 파기가 된 것입니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성전이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