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2:1~12 건축자들이 버린 돌 2019. 9. 29

 

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2 때가 이르매 농부들에게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한 종을 보내니 3 그들이 종을 잡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4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의 머리에 상처를 내고 능욕하였거늘 5 또 다른 종을 보내니 그들이 그를 죽이고 또 그 외 많은 종들도 더러는 때리고 더러는 죽인지라 6 이제 한 사람이 남았으니 곧 그가 사랑하는 아들이라 최후로 이를 보내며 이르되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7 그 농부들이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 하고 8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던졌느니라 9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10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11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

 

지난주에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았습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시면서 장사치들을 쫓아 내셨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란 이사야서의 말씀이고 도둑의 소굴은 예레미야의 말씀입니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여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벧전1:11).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사야와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실 말씀을 선지자들이 미리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다가 세례요한의 세례가 어디로 왔는지 되 질문하심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버린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란 제자들이 마땅히 듣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란 예수님의 권위를 질문한 자들입니다. 질문한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자 이 말씀을 들은 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입니다. 12절을 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은 자들이 자기들에게 한 말로 알아듣고서는 예수님을 잡아가서 죽여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으니 무리들이 두려워 그냥 갑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 1~5절을 봅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을 완벽하게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갔습니다. 농부들이 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농부들은 농사만 지어서 주인에게 소출의 얼마를 드리기만 하도록 계약을 한 것입니다. 때가 되어 농부들에게 소출 얼마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냅니다. 한 종을 보냈는데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냅니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내니 이번에는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모욕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주인은 다시 종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죽여 버립니다. 또 다시 다른 종들을 많이 보냈지만 때리고 죽여 버린 것입니다. 세 번 네 번만이 아니라 아주 많은 종들을 거듭거듭 보냈지만 이들은 그 종들을 때리고 죽여 버린 것입니다.

 

6~9절입니다. 이제 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는 그가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최후로 내 아들을 보내면 농부들이 존대하리라고 생각하고 아들을 마지막으로 남은 한 사람 곧 자기 아들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농부들이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자 그러면 그 유산이 우리 것이 되리라고 하고 이에 잡아 죽여 포도원 밖에 내 던져버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시면서 그들을 진멸하고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이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20:16~17절입니다.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누가복음의 평행본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들은 자들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새 번역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번역합니다. 공동번역은 "어디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로 번역합니다. 이런 반응은 설마 그 주인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겠느냐 말입니다.

 

본문 10~12절입니다.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으며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라는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유는 주인의 아들 곧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이 죽임을 당할 것이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무리들 곧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자기를 향한 말로 알고 예수를 잡으려고 하지만 무리가 무서워서 당장은 떠나갑니다. 자기들을 향한 말인 줄 알아듣는 것은 구약에서 포도원의 이야기, 선지자들 이야기, 모퉁이 돌 이야기가 다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1~7절입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었도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 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포도원이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하였습니다. 남 유다마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를 바라셨는데 도리어 포학이며 공의를 바라셨는데 도리어 온 땅에 부르짖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하지 말라고 하는데 부동산 투기하여 홀로 살아남으려고 하는 이런 나라를 심판하십니다. 그 심판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지만 여전히 악한 열매만 가득합니다.

 

예레미야 2:20~21절입니다.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시편에서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80:8~16). 에스겔 15장도 포도나무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면 아무른 쓸모없는 나무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는 공의와 긍휼입니다.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이방나라들이 맺는 온갖 탐심의 우상숭배만 가득하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심판하시기 전에 하나님은 자기의 종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십니다. 그런데도 돌이키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7:25~26절입니다. “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26 1)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1)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예레미야 7장 전체만 읽어도 이스라엘 죄와 오늘 우리의 죄가 다 드러납니다. 부지런히 성전에 나가서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자신들의 탐심을 채우기 위한 제사이기에 그런 성전은 성전이 아니라고 하면서(7:4) 도적의 소굴이라고 한 것입니다(7:11). 유다가 이러함에도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하셔서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출애굽 때부터 유다가 멸망할 때 까지 하나님은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냈지만 그들이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신실하셔서 망한 유다를 70년 만에 회복시켜 성전도 재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에는 성전에서 보이는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는 자기반성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보이는 우상은 섬기지 않았습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자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런 운동이 바리새파 운동입니다. 거룩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모든 생활가운데서 율법을 적용하면서 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율법이 죄 아래 가두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인줄 알지 못하고 오히려 그 율법의 의로 온갖 치장을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짐에 메어 쉼이 없이 살아갑니다. 예수님은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보낸 이 이 아들을 죽여 버린다는 말씀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서만 간단히 살펴보았습니다. 포도원 이야기와 선지자들의 이야기들이 다 나옵니다. 이 외에도 구약의 수많은 내용들을 유대인들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원의 악한 종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장로라는 자들은 바로 자기들이 악한 포도원 품꾼임을 지적받은 것입니다. 포도원이 이스라엘이라면 이스라엘을 잘 돌보는 일을 백성의 지도자들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들을 핍박한 그 선조들의 일을 이들이 동일하게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마지막 오시리라 약속된 하나님의 아들마저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하지만 이미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시편 118:22~23절입니다. “22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 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건축자들 곧 집을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행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오늘 본문의 비유를 알려면 포도원 이야기와 주인이 보낸 종들을 잡아 죽인 이야기와 건축자들에 의하여 버림받은 돌의 이야기를 알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자들은 성경박사라는 자들이니 자기들의 말인 줄 알아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오히려 죽여 버린 것입니다. 이것도 성경의 성취입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은 집을 지어본 적이 없습니다. 옛날로 갈수록 집을 지으려면 돌과 흙과 나무가 필요합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재료가 돌입니다. 그러므로 돌을 많이 모아야 합니다. 그 돌들을 집을 지을 때에 적재적소에 사용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돌은 도저히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는 돌이 있습니다. 그래서 건축자들에 의하여 쓸모없다고 버려진 그 돌이 새로운 집의 기초석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다 버린 돌을 새로운 집의 기초로 삼으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인생이라는 집을 짓는 건축자들입니다. 그래서 나의 인생의 집을 잘 짓기 공부도 하고,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종교도 하나 가지려고 합니다. 종교는 마음의 안정, 내가 알지 못하는 사후의 준비, 게다가 요즈음 교회는 취미와 문화생활까지 제공이 됩니다. 이런 종교 중의 하나도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골라잡은 것이 기독교라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전이라는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너무나 불편하고 거북합니다. 도대체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사사건건 시비를 겁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탐심이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런 예수님을 계속 믿고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조용히 내다 버려야합니까?

 

나의 인생에 도저히 도움이 안 된다고 쓸모없다고 내어버린 그 돌이 예수님입니다. 그 돌을 버린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오늘 주보의 그림에 칼과 몽둥이와 낫을 든 자가 누구입니까? 자기 것도 아닌 주제에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진짜 주인을 죽여 버린 자들이 누구입니까? 나입니다. 나 아()자는 손수()변에 창과()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로 인간들은 손에 창을 들고 살아갑니다. 그 창을 믿고 사는 자들이 가인계열입니다. 성읍을 쌓고 문화를 발달시키며 자신이 자신을 보호하겠다고 살아갑니다. 이런 모습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도 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받은 율법으로 자기들을 보호하는 창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 율법을 통하여 죄를 알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세상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보내셨는데도 그들은 때리고 죽여 버렸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시대로부터 노아 홍수 때에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출애굽 때부터 유다 멸망 시까지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지막으로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마저 죽여 버린 세상입니다. 유대 종교와 로마의 정치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진멸당하여야 마땅합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을 살해한 공범입니다. 정말로 인정하십니까?

 

사도행전 4:8~12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합니다.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사도들을 따릅니다. 무려 5천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느냐고 할 때에 이들은 예수님을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 돌이 된 예수님을 말하면서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 복음을 들은 자들은 내가 살해한 그 나사렛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가 됨을 믿습니다. 그 이름 외에는 구원을 줄 수 있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4~8절입니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여기서는 시편 118편의 모퉁이 돌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사야 28:16절에서 그 돌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씀과 이사야 8:14절의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돌을 함께 인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예수님이신데 어떤 자들은 믿어서 구원을 얻지만 어떤 자들은 거침돌이라서 버립니다. 예수님을 믿고서 세상의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에게는 거침돌이 됩니다. 그러나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신 자들은 나는 그를 버렸는데 그는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버림받아도 예수님께 붙어진다면 그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이어지는 9~10절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믿는 자들은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그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은 사람의 어떤 자격이 아니라 오직 긍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랑을 할 수가 없고 우리를 부르시고 택하셔서 그 버림받은 모퉁이 돌을 믿게 한 주님을 자랑 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