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6:14~18 믿는 자들에게는 2020. 5. 10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3)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5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4)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16 믿고 5)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6)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지난주의 결론이 14~16절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제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제자들이 이 여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자들도 부활의 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두 사람에게 부활을 모습을 보여주고 믿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약성경으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합니다. 이 두 제자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서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합니다. 부활을 믿지도 않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심으로 복음 전파역시 주님께서 이루심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정죄를 받는 다는 이 말씀은 전하는 자나, 듣고 믿는 자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주님 되심이 드러나는 일이 복음전파이기에 사람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18~24절입니다.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의 도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되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세상의 뛰어난 지혜나 세상 사람들이 감탄할만한 표적으로 전하여지지 않습니다. 표적을 보아온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십자가는 저주 받아 죽는 죽음이기에 거리끼는 일입니다.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입니다. 이 당시 십자가의 도는 지금 시대는 상상할 수도 없는 저주와 공포의 이야기라서 침을 뱉고 돌아서야 하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자들이 전염병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이 미련한 전도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이유는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만이 그 아들의 희생인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땅에 수많은 전도의 방법들은 복음의 내용인 십자가의 도를 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교회당으로 데리고 오려는 상술로 보입니다. 제가 오년 전에 예레미야 설교를 할 때에 어떤 분이 전도세미나에 참석하였는데 오늘날은 예수 자나 하나님 자도 들어가지 않는 전도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였답니다. 그런 전도지 한부가 삼백 원인데 그런 전도지 구입하여 전도하라고 하더랍니다. 하나님은 전도의 미련한 것, 곧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오늘 본문 17~18절을 봅니다. “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시면서 이런 능력을 제자들에게 주셨기에 이런 표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대도 이런 표적들이 나타나면 전도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날도 이런 표적들이 나타난다는 곳이 신오순절 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신오순절 운동이나 신사도운동을 하는 곳에서는 사도들에게 나타난 이런 일들이 오늘도 계속된다고 봅니다. ‘신오순절이나 신사도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과 같은 일들이 오늘날도 계속된다고 보기에 자를 붙입니다. 그러나 보수적인 교단들은 사도들로 제한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인들이 이런 운동으로 많이 몰려가니 교인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보수적인 교단들도 신사도운동으로 많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본문 17절의 믿는 자들에게는여기서 믿는 자들을 예수님의 사도들에게 국한 시켜야 합니까? 아니면 오늘날 믿는 자들도 포함이 되는 말씀입니까? 우선은 사도들에게 이런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과 병 고침을 받는 일이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예루살렘에서 믿는 자들에 대한 핍박이 일어나자 믿는 자들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집니다. 그래서 복음이 사마리아에도 전하여 집니다.

 

사도행전 8:4~25절을 보면 빌립이 사마리아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병 고침을 받습니다. 그곳에 마술을 행하던 시몬도 빌립의 말을 듣고 따릅니다. 이런 소식에 예루살렘에 들리자 사도들이 확인하러 갑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같이 취급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복음을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확인하러 갔더니 정말 복음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니 성령이 임합니다. 이 당시 믿음과 성령 임함이 다르게 나타남은 사도들에게 이방인도 복음을 믿는 일에 차별이 없음을 계시하시기 위한 일입니다. 그런데 신오순절 운동에서는 이 본문으로 믿는 것과 은사로서의 성령세례가 다르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이 능력을 본 시몬이 돈을 주고 그런 은사를 받으려고 하다가 저주를 받습니다. 은사를 돈을 주고 사서 자신이 소유하려고 하는 짓이 저주 받을 짓입니다. 은사는 말 그대로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도들도 은사를 소유한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확증하기 위한 표적일 뿐입니다. 사도들도 자신들이 병 고치는 은사를 소유한 것이 아니기에 단 한 번도 은사집회를 한 적이 없습니다. 사도들은 오직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함으로 나타나는 은사들은 성경이 완성될 때까지입니다.

 

사도행전 16:16~36절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지역에 가서 전도를 할 때입니다. 그곳에 귀신 들린 여자가 있는데 이 여자가 점을 쳐서 주인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입니다. 귀신 들린 여자가 여러 날을 바울 일행을 따라다니면서 소리를 지릅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귀신 들려 점을 치고 주인에게 이익을 끼치는 자가 이런 말을 하면 복음이 더 잘 증거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식의 간증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런 말이 괴로워서 그 귀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나오라고 하니 즉시 나왔다고 합니다. 복음이 증거 되는 일은 그런 귀신들린 자, 그래서 그 지역에서 능력 있는 자를 통하여 전하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자 이 여종에게 귀신이 나감으로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주인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합니다. 우리가 받지 못할 풍습을 전한다고 하여 매를 때리고 옥에 가둡니다. 귀신을 쫓아낸 결과가 이러합니다.

 

그 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중에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다 풀렸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할 때에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말하기를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여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며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을 것인지 묻습니다. 그때 대답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제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사도들이 표적과 기적을 나타냄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그럼에도 표적과 기적들이 나타나는 일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계심을 증거 하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도 그런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면 잘 믿을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만약 그런 표적과 기적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지지 않고 표적과 기적만 보여주어도 됩니다.

 

마태복음 12:38~40절입니다. “38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3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40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으리라

 

예수님께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은 요나의 표적뿐이라고 합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 있는 것이 표적이라고 합니다. 물론 부활도 포함이 되는 말씀입니다만 밤낮 사흘 동안의 일이 무엇인지는 마가복음 끝나고 요한 계시록을 다시 보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은 사람들에게 표적과 기적을 일으키는 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사도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나타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성경을 기록하기까지의 제한적으로 나타납니다.

 

본문 17~18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 사도행전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과 병 고침을 함께 봤습니다. 이제 새 방언을 말한다는 내용입니다. 왜 새 방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새 언약을 담아내는 방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이 하나님의 큰일을 전합니다. 하나님의 큰일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2:11~13절입니다.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 12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사도들은 자기들의 말로 복음을 전하는데 각국에서 온 자들이 자기들의 언어로 복음을 알아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새 방언입니다. 그러므로 새 방언이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큰일이 십자가로 일어났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새 방언을 말하는 자들이며 이 말을 듣고 십자가로 다 이루었음을 믿는 자들이 새 방언을 알아듣는 자들입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얼거림은 모든 이방종교에도 다 있습니다.

 

본문 18절입니다.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로마로 가던 바울이 탄 배가 파선을 하여 멜리데 섬에 헤엄쳐 올라갑니다. 그 섬에서 바울이 불에 올리려고 나뭇단을 집어 올리다가 독사에 물렸습니다. 원주민들은 배에서 살아나왔으나 독사에 물린 것은 살인한 자가 공의의 심판을 받는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물려도 죽지 않으니 바울을 신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오늘도 어떤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면 죽지도 않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아무리 표적과 기적을 행한다고 하여도 다 죽었습니다. 이런 표적과 기적이 나타난 사도들조차 다 죽어갔습니다. 사도들도 자기의 병도 고치지 못하고 순교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이런 표적과 기적은 사도들에게 제한됩니다. 제한되는 시기는 성경을 완성할 때까지입니다. 성경이 완성이 되고 나면 이제 표적과 기적으로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기록된 말씀 외에 오늘날도 표적과 기적을 구한다면 그들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임을 자인하는 꼴입니다.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봉독이런 말씀을 문자대로 표적과 기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이것이 귀신에게 풀려나는 것이라고 봅니다. 병 고침도 죽음에 이르는 죄와 사망의 병에서 고침을 받는 다고 해석합니다. 어떤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복음을 듣고 믿었다면 어떤 이단의 교리에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새 방언은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십자가의 복음이 새로운 방언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신오순절 운동이나 신사도운동에 빠지지 않는 건전한 해석이기도 하지만 성경이 완성 될 때가지 실제로 사도들에게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사도들에게 나타난 일들이 그의 제자들에게 계속되는지 봅니다.

 

전에도 몇 번 인용하여 말씀드렸습니다만 개혁주의신행협회라는 곳에서 나온 작은 책자 신오순절 운동비판입니다. 소제목으로 장로교회의 계시와 이적 관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계시로서의 은사는 중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사도들에게 나타난 은사는 계시를 전하고 완성하기 위함이라고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은사는 있습니다. 은사라는 말은 은혜의 선물이기에 햇빛과 비가 자비로운 하나님의 은사로 주어집니다. 그래서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주십니다. 이런 것을 일반은총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특별은총이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특별은총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로부터 직접 복음을 들은 자들을 속사도(續使徒) 라고 합니다. 이들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 도전하는 다른 이론들을 막아내려고 성경으로 변증을 하였기에 교부(敎父)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교부들의 이름 중에 클레멘트, 이레네모, 폴리갑에 대하여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들을 사도들과 엄격하게 구별합니다. 사도들은 주 예수님께 직접 복음을 받아서 전한 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사도들처럼 명령을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말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 곧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 다른 것을 덧붙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3:9~13절입니다. “9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2)제일은 사랑이라

 

여기서 얼굴과 얼굴로 대하여 온전히 안다는 이 말씀을 예수님의 재림 때를 말한다고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완성으로 보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이 일어나면 온전히 알게 되는 일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일차적으로 성경의 완성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도 이 기록된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알라고 하였습니다(벧후1:19). 얼굴과 얼굴로 본다는 말씀은 오늘 오후에 제사장의 축복에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들의 직접 제자가 속사도이며 교부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자들의 기록에는 사도들과 달리 자신들이 어떤 명령을 덧붙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표적과 기적이 나타난 기록이 없습니다. 로마시대의 박해 때에 핍박받고 순교한 기록들만 남아있습니다. 그러함에도 십자가의 복음은 흔들림 없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핍박받거나 순교할 때에 기적적으로 보호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짐승들의 밥이 되고 화형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은 힘 있게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4세기부터 조금씩 기적들이 교회사에 등장하여 중세시대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적들이 오늘날도 이어지는 것이 성모발현과 같은 내용입니다.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흐른다든가 하는 그런 일들이 지금도 심심찮게 뉴스에 등장합니다. 그러면 왜 핍박받을 때에 기적이 안 일어나고 기독교가 공인을 받고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에 표적과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로마제국이 점령하는 지역은 다 십자가를 깃발로 꼽습니다. 그러면 그 나라의 온갖 무당이나 마술사 시몬의 일과 같은 것들이 표적과 기적인양 기독교라는 옷을 입게 됩니다. 그래서 이 당시에 주술적으로 사용되던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것을 다 모으면 거대한 함선을 만들 정도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를 가리켜 중세암흑기라고 합니다. 이런 종교에서 개혁한 것이 종교개혁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에 없는 것들을 배격하였습니다. 교회의 전통이나 성경의 권위와 동등 내지는 위에 있다는 교황의 말도 성경에 없는 것은 배격합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을 한지 오백년이 지났습니다만 개혁교회들 안에 수많은 신오순절 운동과 신사도운동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는 예수님은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9~12절입니다. “9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1)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진리의 사랑을 받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임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믿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표적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43~47절입니다.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2)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들에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그러자 믿는 자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줍니다. 믿는 자의 표가 이러합니다.

 

사도행전 4:32절입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됩니다. 이것은 한 성령을 마시게 됨으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한 성령을 받았다면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자들의 표적인데 우리는 이런 표적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한 성령이 임하여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표적을 구하여야 합니다.

 

사도행전 7:55~60절입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2장과 4장과 7장의 이런 모습이 믿는 자들의 모습이며 이런 식으로 복음이 증거 됩니다. 이런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라 마술사 시몬이 돈을 주고 사서 자기의 소유로 삼으려고 하는 그런 표적을 구함이 저주 받을 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하여야 할 믿는 자의 표적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스데반의 표적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표적을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반드시 이 역사 속에서 자기의 것이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십니다. 죽음의 순간에라도 자기의 것이 아님을 알게 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데리고 가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일어날 때에 당황하지 마시고 모든 믿는 자들이 이 길로 이끌리어 갔음을 아시고 잠잠히 그길로 이끌려 가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