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28~31 모든 것을 버리고 2019. 7. 28

 

28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2)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지난주에 본 말씀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율법만 다 지킨 사람이 아니라 부자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다 지키면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유대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생을 얻는 일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예수님께 와서는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영생의 길이지만 이 사람은 부자였기에 근심하며 슬퍼하며 영생 앞에서 돌아섰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매우 놀라면서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가겠느냐고 합니다. 이때 예수님은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이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것도 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헌신 충성 봉사를 얼마나 잘 하느냐로 판단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서 아멘하고 헌신 충성 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까?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감사하여 헌신 충성 봉사 한 것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까? 아니면 장부에 기록하듯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까? 기억에 남아있다면 그것은 감사와 은혜로 한 것이라기보다 자기 행위이기에 이런 것도 다 버려야 합니다.

 

본문 28절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이 들어있습니까? 어려서부터 율법을 다 지켰으며 부자이기도 한 사람이 다 버리지 못하여 주님 앞에서 돌아서는 것을 보고서는 자기들은 다 버리고 따라 왔으니 우리는 무엇을 얻느냐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에 정말로 다 버리고 따라 왔습니다. 부모도 버리고 배와 그물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온 것입니다. 단숨에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것도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라는 그 말씀의 능력임을 제자를 부르실 때에 보았습니다. 그 말씀의 능력에 의하여 따라 나섰지만 그 속마음에는 또 다른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10:35~37, 41절입니다.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41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다 다음 주에 자세히 보겠습니다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들이 여기에 다 나옵니다. 우리가 무엇을 버리고 따른다고 할 때에 내가 버리는 것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을 때에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버린 것은 버린 것이 아닙니다. 결국 자아의 확대를 꿈꾸며 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해도 어떤 세상적인 조건이 좋은 사람이 좋지 않은 사람과 결혼을 할 때에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살다가 힘이 들면 나는 너를 위하여 다 버리고 왔는데 너는 나를 왜 힘들게 하느냐고 따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버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면서 다 버렸다고 하지만 하나도 버린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진실로라는 말은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아멘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진실입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현세에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동격으로 사용합니다.

 

이 말씀을 가장 천박한 자본주의 원리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 씨 뿌리는 비유를 인용하면서 3060100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으로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버린 자들은 100배나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백배나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현세에서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가족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이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됩니다.

 

마가복음 3:31~35절입니다. “31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3)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32 무리가 예수를 둘러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3)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33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3)동생들이냐 하시고 34 둘러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3)동생들을 보라 35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이 말씀의 성취가 백배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현세에는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 하십니다. 왜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이 되면 핍박을 받습니까?

 

요한복음 9:18~22절입니다. “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자는 출교 당하는 이것이 핍박입니다. 이 당시의 출교는 무서운 겁니다. 성전에 나갈 수도 없거니와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요한복음 19:38절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부자이면서 산헤드린 공회원입니다. 상당한 권력이 있는 사람이기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요구하여 허락을 받아 자신의 준비해둔 새 무덤에 장사지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 유대인들이 두려워 제자 됨을 숨겼습니다. 이제 죽었으니 모른 체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 죽음이 오히려 자신을 제자로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승리임을 여기서도 드러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이며 부자인 요셉조차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을 드러내기가 두려운 유대사회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런 핍박도 각오하고 정말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지만 결국 십자가 앞에서는 예수님을 버립니다.

 

마가복음 14:27~31절입니다.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3)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4)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삶의 터전을 버리고 가족도 직업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는 다 도망갑니다. 예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구약 성경 스가랴 13:7절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나 다른 제자들이 모두가 하는 말이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들의 진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진심이라도 자기의 목숨을 정말로 내어 놓아야하는 자리에서는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왔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 목숨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음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능력으로는 현세에서 백배를 받을 수도 없고 내세에 영생을 받을 수도 없음을 보여줍니다.

 

본문 31절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다 버리고 따라간 자들은 현세에 백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신 후에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지금 제자들의 사고방식으로 따라는 오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지난주에 본 사람이 영생 앞에서 돌아섰습니다.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킨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부자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 누가 봐도 유대인들이 기다린 그 내세에 일순위로 들어갈 자라고 보았지만 꼴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등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반대된 개념을 말합니다. 그런데 전혀 들어갈 수도 없다고 본 세리와 죄인들과 창기들이 먼저 들어간다면 천국은 세상의 모든 가치관을 심지어 유대인의 가치관도 다 전복시킵니다.

 

그러면 현세에 백배나 받지만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는 그 새 가족과 내세에 영생이 어떤지 살펴보겠습니다. 제자들이 아무리 예수님을 위하여 다 버리고 따라가도 십자가 앞에서 다 도망갑니다. 그러므로 현세에 백배나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십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러자 정말로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여 복음을 전하니 그 복음을 받은 자들끼리 내 것 네 것이 없습니다.

 

사도행전 2:44~47절입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사도행전 4:32~35절입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5)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이런 모습이 현세에 백배나 받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런 모습이 안 일어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아직도 내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버리기는커녕 더 모으려고 합니다. 목사는 목회 성공을 꿈꾸고, 교인들은 그런 목사의 목회 성공을 도와주면 자기도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따라 간다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확대시키는 것이기에 영생과 점점 멀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면 영생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주님은 조치하십니다. 주님의 일하심이 드러나는 자는 자신이 무너져 내리고 그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채워짐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일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온전히 자신을 다 버려서 자기 양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자기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0:14~18절입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의 그 버림받으심은 하나님의 생명을 우리에게로 나누어 주시고 우리를 짊어지시는 버림받음입니다.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다는 말씀은 자신을 우리에게로 버려 우리를 살려내시는 권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버림으로 지금 현세에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백배를 만들어 내실 뿐 아니라 그 새로운 가족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십니다. 이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같은 사랑을 받은 사람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한 몸의 현상입니다.

 

요한일서 3:16,23,24절입니다.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