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27~33 무슨 권위로? 2019. 9. 22

 

27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28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30 요한의 3)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31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니 32 그러면 사람으로부터라 할까 하였으나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하는지라 33 이에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요즈음 시대를 현대 이후라고 해서 포스터모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은 모든 것을 다 해체하여 버리는 시대입니다. 권위라고 하는 것도, 진리라고 하는 것도, 성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도 해체하여 버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장유유서(長幼有序)를 이야기하면 꼰대 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신분제가 있었습니다. 왕은 늘 왕입니다. 귀족은 늘 귀족입니다. 양반은 늘 양반이고 종은 늘 종입니다. 이 경계가 엄격하여 종이 양반을 함부로 대하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이러한 신분제가 있을 때에는 권세라는 것은 하늘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이 변화합니다. 문예부흥, 종교개혁, 산업혁명, 프랑스 혁명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소수의 절대적인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평등과 민주를 말하게 되었습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시대에 2천 년 전에 십자가지신 예수님이 절대적인 진리이며 권위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믿겠습니까? 2천 년  온갖 권위가 인정되어도 예수님의 권위는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7~28절을 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첫날부터 계산하면 오늘이 삼일 째입니다. 첫날은 성전을 둘러보시고 나가셨습니다. 둘 째 날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셋째 날인데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거니십니다. 평행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 이때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심으로 이미 죽이기로 결의한 자들입니다. 성전을 무너뜨리려는 자가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기에 예수님을 책잡기 위하여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행하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랍비의 훈련을 받은 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사장 가문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권위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29~30절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물음에 답을 하면, 예수님께서 무슨 권위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사람들을 가르치는지 대답하여 주겠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질문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왔느냐 사람으로부터 왔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이 질문 속에는 이미 답이 들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증거 한 사람이 세례 요한이기 때문입니다.

 

31~33절입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자들이 서로 의논합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고 하면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증거 하였기에 왜 그를 믿지 않느냐고 할 것을 이들이 예측을 한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왔다는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사람으로부터 왔다고 대답을 하려니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므로 백성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래서 양단간에 답을 하지 못하고 모른다고 합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대답을 피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도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당장 막을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먼저 구약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을 짓고 성전을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막의 설계도는 모세가 받습니다. 성전의 설계도는 다윗이 받습니다. 모세 언약이나 다윗 언약에서 성막과 성전이 등장하는 것은 성전이 무엇을 하는 곳이라고 지난주에 보았습니까?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내용은 세상의 썩어질 소망을 이루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죄를 사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고 용서를 받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성전의 그 기능을 종교화 시키면서 하나님과 거래하는 우상의 신전이 되어버렸기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는 그 성전이 도적의 소굴이 되었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말라기 1:10절에서는 헛되이 제물을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성막도 지으라고 하셨고 성전도 짓고 제사를 드림으로 죄의 용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이 성전을 향하여 책망을 하여도 성전을 깨끗하게 하라는 말로 듣지 성전 자체를 없애버리라는 말로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율법보다 선지자 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이셔야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고 믿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태어날 때에 늙은 제사장 시므온과 요게벳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천사가 시므온에게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하니 자신과 아내가 늙어서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고 함으로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천사가 전한 말대로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여 이름을 지을 때에 시므온의 입이 열림으로 세례요한을 다들 특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성전에서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광야로 나가서 회개를 외칩니다. 어느 정도로 외치는지 봅니다.

 

마태복음 3:1~12절입니다. “1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말하되 2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 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4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요한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하는데도 요한에게는 아무른 말을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제사장의 아들입니다. 태어날 때의 기적을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나 세례요한을 함부로 대하지 못합니다. 세례요한이 가짜 선지자라고 하면 백성들에게 돌 맞을 지경이 될 만큼 백성들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자신이 다만 자기 뒤에 오실 분을 증거 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기 뒤에 오시는 분이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시며 타작하시는 분이라고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모든 메시아 예언의 내용들이 세례요한의 손가락으로 모아져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3~17절입니다. “13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14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1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네가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며 사람들을 가르치느냐고 질문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 대답을 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이 증거를 하늘로서, 곧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대제사장이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서기관들조차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을 일입니다. 그 정도로 세례요한의 증거는 분명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증거입니다. 더구나 세례요한에게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하늘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리시며 하늘로서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며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이 세례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인정하면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른다고 합니다.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위하여 모른다고 한 것입니다.

 

시편 2:7절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편 2편은 다윗의 시편입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네가 너를 낳았다고 한 이 아들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윗은 다윗이 왕으로 시온에서 세움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편만이 아니라 다윗이 시편 110:1절에서 주께서 내 주에게 라고 고백한 내용을 예수님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리스도를 주라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에 서 음성이 들리시기를 이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이미 왕이 되어 있고 재판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자라나시고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고 마리아의 아들인 그를 우리의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메시아라면 자기 민족을 구원할 능력과 힘을 가지고 와야 하는데 예수님의 언행을 보면 예수님의 나라가 세상의 나라가 아님을 말씀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동안 성전중심으로 돌아간 모든 권위들까지 다 무너져 내려야 하기에 답을 안 합니다.

 

시편 2:1~6절입니다. “봉독 세상이 요란한 이유는 타락한 모든 인간이 다 자기가 주권자라고 하기에 세상이 소란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을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면서 시온에 한 왕을 세우신다고 하십니다. 그 왕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세례 요한이 증거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조차도 예수님께서 그 예언된 메시아인지 의심을 하였습니다. 그 정도로 유대인들의 메시아사상은 유대민족을 위한 정치적 메시아였습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라고 하셨기에 모두에게 배척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택함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게 됩니다. 12절을 보면 그의 아들에게 입을 맞추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급합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회개하라고 외친 것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천국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권세를 가지신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기의 권세를 행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세상의 권세와 힘으로 전도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은 십자가의 도로 전도하였기에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핍박받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그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그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2:1~12절입니다. “봉독 이미 앞에서 본 내용입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가 하나님께만 있는 줄 아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면서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유대인은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예수님께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권세로 성전을 무너뜨리시고 자기 몸으로 된 성전을 세우시는 일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그리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그리스도의 몸 된 성전을 만들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자들은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권위에 복종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에게 입을 맞추는 것이며 믿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7:36~50절입니다. “봉독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기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향유를 붓고 그 발에 입 맞추기를 쉬지 않는 이 여인을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수군거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이 많은 용서 받았기에 많이 사랑한다고 합니다. 누가 예수님의 권세에 무릎을 꿇은 자가 됩니까?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 많은 한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죄를 사하여 주시는 주님으로 믿은 것입니다. 이 복이 우리에게도 임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