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3:14~18 멸망의 가증한 것 2019. 12. 1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성경의 이런 말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이러한 때가 언제인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그 때를 물은 것입니다. 온갖 이단들도 이런 말씀들로 시기와 징조를 말하여 자기들이 비밀을 깨달은 것처럼 말합니다. 그런데 관심을 두고 그런 사람들을 따라가는 자들은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진리를 알기 위하여 따라갑니까? 자기 구원을 위하여 그렇게 합니까? 어느 산으로 오라고 하면 그곳으로 가고, 어느 나라로 가라고 하면 가는 것은 자기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출발자체가 자기 있음을 진리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신의 있음과 자신이 진리의 척도라고 여기며 세상만사가 자기를 위하여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천지를 창조한 신이라고 하여도 자기를 위하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입니까? 인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배속에서부터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뱃속에서 다투었습니다. 인간이 왜 이러는지 세상의 지식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DNA를 다 분석해도 인간의 이러한 모습을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려줍니다.

 

성경은 인간이 이렇게 된 것은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창세기 3장 이후의 모든 인간들은 이런 생각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그러면 우리 인간의 문제는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 선악과를 만든 하나님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런 태도 자체를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천지를 창조하시고 선악과도 만드신 것입니까?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위하여 만드신 것입니다(1, 1). 그러므로 전도란 자기가 주인인줄 아는 자들에게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는 피조물이며 예수님이 창조주이며 구원주이며 심판주임을 믿는 겁니다.

 

본문 14~18절입니다. “봉독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유대에 있는 자들을 산으로 도망가라고 합니다. 지붕위에 있는 자들을 집안에 무엇을 가지려고 내려가지 말고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려고 뒤로 돌아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 날에 아이 벤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 일이 겨울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아주 시급하고 극심한 환난입니다. 전쟁이 일어나서 피난을 간다고 하면 임신 한 자와 젖먹이를 둔 엄마들이 힘이 듭니다. 겨울에 피난하려면 더 힘이 듭니다. 이러한 위급한 때가 언제인지 사람들은 알려고 합니다. 2011년 후쿠시마에 규모 9.0의 지진과 이어서 밀어닥친 쓰나미를 보고서 집안에 들어가서 무엇을 챙겨 나올 수 없습니다. 이런 징조가 무엇입니까?

 

이런 내용을 가지고 언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 곧 성전에 섰느냐는 온갖 역사적인 내용들이 다 등장합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 168년에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돼지 피로 제우스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성전에 세운 제단의 사건으로 말하기도 하고,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가 로마의 군기를 성전에 들여놓은 사건으로도 말합니다. 또는 예수님의 재림과 제 3성전이 세워지고 그곳에 가증한 것이 세워지는 것을 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잉태하여 해산하여야 하는데 아직도 임신 중이니 화가 있다고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이론을 따라 가겠습니까?

 

다니엘 9:27절입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맺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하게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하니라

 

다니엘서의 숫자풀이로 이상하게 종말을 예언하는 자들의 말을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구약의 일차적인 해석은 십자가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물론 그 십자가는 구약을 완성하시고 신약의 백성도 구원하는 복음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다니엘서로 다시 종말의 날짜를 예측하고 역사의 징조를 예측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 너희는 그 날을 몰라도 되니 성령이 임하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성령이 임하였다면 이미 십자가가 세상의 종말임을 알고 복음만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서의 이 예언도 십자가의 사건으로 봐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한 이레 동안의 언약과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한다는 것은 이제 십자가로 모든 제사가 폐하여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악하여 가증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라고 한 것은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말합니다.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란 우리를 죄 짓게 하여 멸망하게 하는 옛 뱀 곧 마귀와 사탄이며 이들이 죄 짓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겉으로 보기에 예수님만 못 박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창세기 3:15절의 말씀대로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사탄과 그 죄를 멸하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3~13절입니다. “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만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시며 또한 하늘에 오르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입니까? 십자가를 지신 후에 올라가기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자기 백성을 품에 안으시고 하늘에 오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으로 말씀하십니다(21:4~9). 광야에서 백성들이 길이 좋지 않다고 원망합니다. 이런 원망이 나오는 것은 죄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온갖 원망과 불평을 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피조물인줄 모르고 세상만사가 자기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 뱀이 원망하는 자들을 물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달아 올리게 하시고 그것을 쳐다보면 산다고 합니다. 모세가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메달아 올립니다. 뱀에 물려 저주 받아 죽어 가는데 놋 뱀을 쳐다보라고 합니다. 뱀 소리만 들어도 끔찍한데 그 뱀을 누가 쳐다보겠습니까? 그러나 쳐다본 자는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사건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겉으로 보면 저주 받아 죽는 죽음입니다.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저주 받아 죽는 죽음이라고 신명기 21:23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는 우리를 대신 한 저주입니다(3:13). 그와 동시에 죄를 짓게 하고 사망하게 하는 옛 뱀 곧 마귀 사탄을 못 박아 버리는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그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다니엘서 9:27절의 예언이며 이것이 십자가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18절입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5)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5)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5)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우리는 요한복음 3:16절만 잘 외웁니다. 그래서 내가 믿기만 하면 영생 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게 되는 것은 나의 선택과 결정이 아니라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택한 자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성령을 보내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 심판을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14절을 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산으로 피하라고 합니다. 산으로 피하라고 하니 또 세상의 온갖 산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산이라고 하는 것은 감람산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감람산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과 성취들을 예수님께서 이루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주 전 오전에 본 말씀대로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 감람산에 머물다가 하늘로 간 것을 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오셔서 감람산으로 가셨고 기도하신 곳도 감람산입니다. 또 승천하시며 성령을 약속하신 곳도 감람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감람산으로 가야 합니까?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면 예수님 안에 있으면 됩니다.

 

본문 15~16절입니다. 유대인의 지붕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의 사건을 보면 집에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또 밭에서 일을 할 때에 겉옷을 벗어두고 합니다. 그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십자가의 완성을 보았다면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한 것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롯의 처가 뒤를 돌아봄으로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19:26). 소경 바디메오가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께로 간 것처럼 가야 합니다(10:50). 십자가의 완성을 보았다면 뒤로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13:14, 3:27).

 

17~18절입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피난하기 힘든 자들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합니다. AD 70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공격할 때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자들은 맛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이방인의 손에 죽임 당하기보다 자결을 택하였습니다. 이곳을 지금 유대인들은 유대인 정신의 학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선 것이 십자가 사건임을 알았다면 예루살렘의 건물성전을 사수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하여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껍데기 건물 성전을 붙드느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였는지 피가 강처럼 흘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어디로 피하여야 합니까?

 

요한계시록 11:7~8절입니다. “7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요한계시록 18:4절입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두 증인이 죽임당한 곳이 영적으로 소돔이며 애굽인데 그곳이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곳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 골고다 언덕이지만 그 예수님을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곳이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전이 있던 곳이 영적으로 소돔이며 애굽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은 어디이겠습니까? 십자가와 예수님을 이야기 하면서 세상의 힘과 영광을 말하는 곳이라면 멸망하게 하는 가증한 곳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18장은 멸망할 세상의 영광을 붙들고 있는 온 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 백성아 그곳에서 나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붕위에서 집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급합니다.

 

골로새서 2:14~15절입니다.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2)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우리를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을 십자가로 지우시고 못 박아 버렸다고 합니다. 죄를 정하는 것이 율법인데 율법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제하여 버렸기에 그리스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어 멸망하게 하는 통치자와 권세를 폐하여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통치자와 권세란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을 말합니다(2:2). 큰 용,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사판이라고 하며 온 천하는 꾀는 자가 그의 사자들과 함께 하늘에서 내쫓긴 것입니다(12:9). 예수님은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졌다고 하셨습니다(10:18). 겉으로 저주 받아 죽은 모습이며 미련하고 어리석은 죽음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승리가 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함께 죽고 함께 살리심을 받고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은 소망으로 살아갑니다.

 

골로새서 3: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1)진노가 임하느니라

 

이 땅이 멸망을 받는 것은 핵무기나 지진으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의가 없는 세상이라서 멸망합니다. 오시리라고 예언한 선지자를 죽인 자들은 그 오시리라고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세상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이시며 다시 오실 주님이라고 증거 한 자들도 죽이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온 세상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가득 찬 세상으로 보이는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사람의 혈과 육의 힘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며 땅의 일들을 말하는 곳이라면 그곳에서 속히 피난가야 합니다. 어디로 피난하여야 합니까? 저주 받아 죽은 모습이기에 유대인들에게 거리끼고 지혜롭다는 헬라인들에게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로 피하여 가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께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