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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27~29 우리는 무엇을 얻습니까? 2016. 11. 13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1)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지난주에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기 위하여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청년은 그런 율법을 다 지켰다고 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너의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청년은 자신의 소유가 많아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가느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은 사람은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구원이란 사람이 할 수가 없고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은 십자가임을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 질문합니다. 부자가 자신의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얻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여 따라나서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시자 제자들은 배와 그물과 가정도 버리고 따라나섰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따라 나섰지만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가 크냐는 다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28~30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겠느냐는 베드로의 질문에 예수님은 세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제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게 된다는 것과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정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여러 배를 받았습니까? 영생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28절을 보시면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때가 언제인지를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버린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부모, 자식, 전토를 버린 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을 버린 것도 없으면서 아주 조금 한 것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는 이만큼 했다는 계산이 나온다면 우리는 거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라는 사람이 책도 여러 권 출판했다고 합니다. 부자 되고 세상에서 성공하는 그런 책인데 그 중에 모든 인간관계도 거래를 잘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혼 전에 계약서를 써야 재산을 지킨다고 합니다.

 

다시 본문 28절을 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제자들이 우리는 무엇을 얻느냐는 질문에 예수님은 가장 먼저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가 언제입니까? 모든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이때를 언제로 보았습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이 왕으로 등극하는 때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임금이 되면 한자리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도 이런 질문을 하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보좌 좌우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청탁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보좌에 앉을 때에 자기를 따르는 자들이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문자대로 보면 세대주의자가 됩니다. 좀 더 심하게 나가면 신천지가 됩니다. 그래서 신천지 전체 모임을 보면 열두 지파별로 모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시는 때가 언제이며 제자들이 어떻게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것입니까?

 

요한복음 3:14~19절입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5)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심판을 하시는 일은 반드시 십자가에 들려야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이 아들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는 것이지만 이 아들은 믿지 않는 것은 그것이 심판입니다. 이 심판이라는 말은 정죄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정죄를 받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것이 이미 정죄를 받은 것이 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다스릴 것만 생각하였지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생각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나 유대인들은 이 땅의 보좌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땅에서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그 권세를 받으신 분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40일을 지상에 계시다가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이것이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30~36절입니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그 승천의 사건을 오순절 성령이 임한 베드로가 증거 합니다. 다윗 언약을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할 뿐만 아니라(16:8)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실 것도 예언한 것입니다(110: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높이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분이 되셨습니다. 이제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동시에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새로운 세상입니다. 세상이 새롭게 되었다는 이 단어는 중생한다, 거듭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모르는 것입니다.

 

디도서 3:4~7절입니다.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세상이 새롭게 된다는 말과 중생이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보좌에 앉으셔서 성령을 보내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거듭나게 되는 것이 새로운 세상입니다. 이런 새로운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세상에서 열두 보좌에 앉아서 심판한다는 것은 다스린다는 개념입니다. 어떻게 다스립니까?

 

사도행전 2:37~42절입니다.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4)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5)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4)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보좌에 앉으신 분의 영을 받아 복음을 전함으로 예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 28절을 다시 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는 말씀의 의미가 요한복음과 사도행전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기에 성령을 부어주셨고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들도 보좌에 앉아야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보좌에 앉은 모습입니까? 이 땅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모습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영광의 영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벧전 4:14). 이러한 보좌에 앉는 것은 사도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도 다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앉혀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3절입니다. “1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와 더불어 다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고발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러하거든 하물며 세상일이랴성도가 세상을 판단하고 천사를 판단할 자들입니다. 성도의 지위가 어떠함을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도라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 이해관계의 다툼으로 인하여 세상의 법정에 들고 가느냐고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자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4~6절을 봅니다.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허물과 죄로 죽었기에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으며 우리 마음과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간 우리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하늘의 보좌에 앉은 자들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세상에서 보좌에 앉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왕 같은 제사장의 모습으로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6~9절입니다.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 지신 예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걸려 넘어지는 거침돌이 되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믿음으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돌이 됩니다. 그러므로 새롭게 된 세상 곧 예수님이 보좌에 등극하심으로 제자들이나 성도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은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것입니다. 이 복음을 거절하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들이며 거룩한 나라이며 그의 소유된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 왕권을 이 지상에서 행사하는 방식은 대신 희생하는 제사장의 모습인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7~18절입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왕 같은 제사장들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 보좌에 앉혀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에 되었다고 합니다. 심판의 기준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자가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자들이기에 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심판에 이르지 않고 구원에 이르지만 이 복음을 배척하면 그것이 심판에 이르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을 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가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한다고 합니다. 누가복음은 현세에 여러 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기에 여러 배를 받는 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으러 온 가족에게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며 누가 내 형제냐고 하시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나의 가족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이면 이들이 새로운 가족이 됩니다.

 

사도행전 4:32~35절입니다. “32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예수님을 믿으면 유대 사회에서 쫓겨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었더니 여러 명의 가족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합니다.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심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은 자들의 모습이란 예수님의 살과 피로 한 형제와 자매가 된 자들입니다. 가족끼리는 네 것 내 것이 없어야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가족은 그렇지 않습니다. 트럼프 같은 자는 부부도 결혼 전에 계약서를 잘 써야 이혼위자료를 많이 안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이혼해도 자신의 재산을 지켜서 재벌이 된 것입니다. 이런 자가 성경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입니다.

 

본문 30절입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지금까지의 말씀의 결론도 되지만 다음 주에 볼 내용의 시작도 됩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여기까지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와 전혀 다른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는 권력을 부리는 곳입니다. 낮은 자가 높은 자를 섬겨야 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나라입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으니 천국에 무엇을 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열두 보좌에 앉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열두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처럼 자신이 희생함으로 복음 전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상이 무엇이겠습니까?

 

히브리서 111:16절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무엇을 믿고 바라보았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시는데 무슨 상을 주시겠습니까?

 

히브리서 11:24~26절입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믿음의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바로의 공주가 되는 것을 버립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상 주심을 바라본 것입니다. 이 상이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을 때에 주시는 그 상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상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는 것은 이 세상이 힘들고 괴로우니 자기 편한 곳에 가겠다고 천국을 생각한다면 이 사람은 그 천국에 예수님이 안 계셔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엉터리 상 개념인 것입니다.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묻는 제자들과 마찬가지의 사고방식을 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상이 무언지를 알게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이 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성령이 임하고 나니 상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좌에 앉으심으로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고 이렇게 성령이 임한 자들은 함께 하늘에 앉은 자가 됩니다. 하늘에 앉은 자들은 땅의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1~11절입니다.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천국에서 누가 크냐고 묻는 것이냐 우리가 무슨 상을 얻겠느냐고 묻는 것은 아직도 자신이 어떤 죄인인지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경쟁과 시가가 바로 탐심이며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 이렇게 우상 숭배하는 탐심이 땅에 속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위엣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안에서는 어떤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며 만유 안에 계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우리들은 무엇을 얻느냐는 질문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예수님이 만유입니다. 예수님이 전부입니다.

 

요한계시록 21:9~14절입니다.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쪽에 세 문, 북쪽에 세 문, 남쪽에 세 문, 서쪽에 세문이니 14 그 성의 성곽에는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은 건물이 아닙니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이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곳은 건물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로 산 자기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신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두 문은 열두 지파의 이름이며 열두 기초 석은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구원 받은 모든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어린 양의 피로 사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열두 보좌에 앉게 하여준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원 받은 모든 어린 양의 신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보좌에 계신 이와 어린 양과 함께 사는 것이 보좌에 앉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상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신랑이 되시고 그 피로 값 주고 산 우리가 신부가 되는 이 보다 더한 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