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43~52 유다의 입맞춤 2020. 2. 23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잡히시는 내용입니다. 지난주에 본 내용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 홀로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잔을 마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한 결론입니다. 마가복음 14:41~42절을 봅니다. 제자들에게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죄인들의 손에 팔린다는 말씀을 보려고 합니다.

 

마가복음 2:17절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힐난하기에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죄인들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자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부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하여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마가복음 14:41절에서 죄인들의 손에 팔린다고 한 이 죄인들을 누구입니까? 가장 우선은 가륫 유다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룟 유다의 정보를 받고서 몰려온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사주한 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입니다. 이들은 유대 최고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의 눈에 예수는 눈에 가시와 같습니다. 그래서 속히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무리들이 무서워서 어떻게 못하다가 유다가 예수를 주겠다는 제안을 받고 한 밤중에 예수를 잡으려고 온 자들이나 보낸 자들이 죄인들입니다.

 

율법에서 죄인이라고 정죄한 자들을 예수님은 구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죄인들에게 팔린다는 말씀을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죄의 기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이전에는 율법이 죄를 규정합니다. 율법이 죄를 규정하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입니다. 그러나 아직 계시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율법을 지킨다는 자들은 율법의 기능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껍데기로 지키는 자들의 의로운 자라고 착각하면서 세리와 죄인들을 정죄하는 자들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백성의 장로라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이들이 죄인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6절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 까지라고 합니다. 모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이 다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합니다(24:44). 그래서 세례요한이 모든 구약성경을 자기의 손가락으로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구약의 완성이 됩니다. 율법에서 죄를 지으면 정결한 짐승의 희생으로 속죄제를 지냅니다. 율법 받기 이전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범죄 후에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십니다. 이 모든 내용이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요한복음 16:9절입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의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한다고 합니다. 그 첫째의 책망이 죄에 대한 책망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들의 죄의 개념을 앞에서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율법의 조문을 어기면 죄로 여깁니다. 그렇게 죄로 규정하면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번에 영원히 자신을 속죄의 제물로 드리심으로 이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죄인들에게 팔리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몰려온 그들이 죄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죄인들을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다 이루심을 믿지 않는 자들이 죄인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유대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어느 설교를 들어보니 유대 최고의 랍비가 2006년에 이사야 53장을 읽다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며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는 이 말씀이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으로 믿었다고 합니다. 자기 생전에 밝히지 못하고 유언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마가복음 14:42~44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마치신 후에 일어나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합니다. 자기를 파는 자와 무리들이 함께 몰려오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잡히시려고 가자고 하십니다. 이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잡으러 온 자들과 군호를 짭니다.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고 합니다.

 

본문 45절입니다.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여기서 입을 맞춘다는 헬라어 단어에 접두어가 붙어 있습니다. 오랫동안 다정하게 입을 맞춘 것이라고 합니다. 가륫 유다는 예수님을 입맞춤으로 팔아넘기는 일에 망설임이 없습니다. 랍비라고 존칭어를 쓰면서 아주 존경하는 자세로 입을 맞춥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중심을 헤아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드러나는 행동을 보고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주 성실하게 보이는 사람이 어느날 사기를 칩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곳에서 배반의 입맞춤을 합니다. 입을 맞춘다는 것은 서로 사랑해서 입을 맞추는 일이 있습니다. 수요일 저녁에 보는 아가서에서 사랑하는 자의 입맞춤은 꿀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이런 사랑 외에도 유대 사회에서 입을 맞추는 것은 스승에 대한 존경과 친구의 우정과 인사로 입맞춤을 합니다. 그러나 유다의 입맞춤은 배신의 입맞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서로 입을 맞춘다는 말은 범죄를 모의하면서 알리바이를 조성하는 말로 쓰입니다. 그러므로 가륫 유다의 입맞춤만이 배신의 입맞춤이 아니라 온 세상에 가득한 것이 배반의 입맞춤입니다.

 

저는 이 가룟 유다의 입맞춤을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저를 포함한 목사라고 봅니다. 이 말에 어떤 목사가 시비를 건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자기의 의가 있기에 시비를 걸 것입니다. 그래도 시비를 거는 목사가 있다면 당신이 바울사도 만큼 수고를 했느냐고 물어볼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그렇게 헌신 충성을 다하였지만 자기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에 대한 것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고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죽음에 넘겨진다고 합니다. 그렇게 죽음에 넘겨지는 것이 예수님이 생명이 나타나는 증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수많은 목사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세상의 복을 받고 코로나 바이러스도 오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은 유다의 입맞춤과 다름 없는 배반의 입맞춤을 하는 설교이며 여기에 아멘 하는 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배반의 입맞춤을 하는 두 곳의 말씀을 봅니다. 먼저 사무엘하 15:1~6절입니다. “1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 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5 사람이 가까이 와서 그에게 절하려 하면 압살롬이 손을 펴서 그 사람을 붙들고 그에게 입을 맞추니 6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마다 압살롬의 행함이 이와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압살롬이 아버지 다윗 왕을 배반하기 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도둑질하려고 백성들에게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20:9~10절입니다.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세바의 반란으로 어수선한 틈에 군대의 실권을 지려고 라이벌 아마사를 입맞춤 하면서 찔러 죽입니다.

 

본문 46~47절입니다. “봉독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것을 보고 무리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습니다. 그러자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쳐 귀를 베어버립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칼을 휘두른 사람이 베드로이며 귀가 베인 사람은 제사장의 종 말고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고 하시면서 내가 이 잔을 마셔야 한다고 하십니다.

 

본문 48~49절입니다. “봉독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고 하시면서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않았다고 하십니다. 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온 것은 성경을 이루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일입니다. 구약의 예언된 모든 말씀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잡혀가시는 것도 성경을 이루시는 일입니다.

 

본문 50절입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한 명이라고 도망가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는 자가 있었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도 구원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일을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흩어지는 것도 이미 앞에서 본 대로 목자를 치면 양들이 흩어지리라는 스가랴서 13:7절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서 본문을 보면 그렇게 흩어진 작은 자들 위에 주께서 손을 드리우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본문 51~52절입니다.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 성경이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 사람이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마가 자신이 기록한 것이라면 이것이 인간적인 작품이라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이란 자신의 잘남을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입은 겉옷이라는 단어와 예수님을 장사지낼 때 세마포와 같은 단어입니다. 이 사람은 죽지 않으려고 벌거벗고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벌거벗음으로 이 사람의 수치와 우리의 수치를 가려주신 것이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오늘날 배반의 입맞춤이 무엇일까요? 고린도후서 11:1~4절입니다.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1)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 하는구나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중매하지 않는 것이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육체를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자기들은 사도들의 추천서가 있다고 합니다. 율법의 행위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십자가의 다 이루심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십자가로는 부족하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은혜인데 이 은혜를 욕되게 하는 자들이 배반의 입맞춤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이들이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합니다. 이런 일을 사탄과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듯이 나타나서 거짓 이적들로 미혹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를 예수님 믿는 것으로 말하는 자들이 배반의 입맞춤을 하는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 3:1~9절입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1)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2)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3)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3)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십자가를 가리는 짓이 배반의 입맞춤을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14절입니다. “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머무는 자들이 구원 받은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으로 머물 수가 없기에 십자가로 다 이루신 예수님께서 그 영을 우리에게 넘겨주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이 임한 자들은 세상에 입을 맞출 수 없도록 막으시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입을 맞추도록 조치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고난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난을 통하여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자들은 복이 있지만 그렇지 않는 자는 하나님이 진노가 임하는 것입니다.

 

시편 2:12절입니다.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춘 여인은 많이 용서 받은 여인입니다. 우리를 십자가로 용서하신 그 주님께 입을 맞춤이 영원한 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