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설교]

출애굽기 22:28-23:9 거룩한 사람 2010. 11. 14

 

28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29 너는 네가 추수한 것과 네가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하지 말지며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 30 네 소와 양도 그와 같이 하되 이레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다가 여드레 만에 내게 줄지니라 31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를 먹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질지니라 23:1 너는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4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31절의 말씀을 보시면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이 너희는 내게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보입니까? 아니면 너희는 내게 거룩한 백성이다. 이렇게 보이십니까? 아마 대부분의 느낌은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볼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가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들에서 죽은 짐승의 고기는 먹지 말아야 한다는 식으로 해석하고 적용을 합니다. 그런데 다른 번역을 보면 너희는 거룩한 사람이다. 영어로도 너희는 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0:1-2절입니다.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십계명 서론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십계명을 지켜서 출애굽 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고 구원받아 나왔기에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교회에서 걸음도 함부로 걷지 않고 웃어도 소리 크게 소리 내어 웃지 않습니다.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이 거룩한 것인 줄 그렇게 압니다. 그러나 밖에서는 다른 행동들을 합니다.

 

서울 하나교회에서 세 가지 거룩함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시간의 거룩함입니다. 안식일로 연결이 됩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할 때에 어떻게 해야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까? 말 그대로 안식은 일하지 아니하고 쉬는 것입니다. 노동하지 아니함으로 종들도 한숨 돌리고 짐승들도 쉼이 허락됩니다. 이런 쉼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선물을 값없이 은혜로 받는 것을 알게 하고 보여주는 것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의미보다 껍데기만 붙잡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안식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기에 참된 안식은 예수님이 주신다는 것을 배척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의 안식주심을 배척하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거룩함을 이루어 낸다는 것이 이런 꼴이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제 칠일 안식교가 있습니다.

 

둘째는 공간의 거룩함입니다. 아담이 범죄 함으로 이 땅이 다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은 자기 언약을 위하여 이 땅에 임하십니다. 그렇게 임하시는 곳이 거룩한 공간이 됩니다. 그러나 그 공간은 고정된 곳이 아니라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만 단을 쌓게 하시지만 그 단도 사람의 솜씨 발휘를 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이런 공간의 고정이 구약의 성전이 됩니다만 이 성전도 더렵혀져서 파괴되고 결국 거룩한 성전은 그리스도의 몸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따로 거룩한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이 거룩한 곳입니다.

 

셋째로 거룩한 사람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본문과 연결이 됩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사람이기에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사람으로 구별하여 놓고서 이 율법을 주셔도 인간은 스스로 거룩함을 유지하지도 못하는 것이 구약의 증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까? 인간은 스스로 거룩함을 만들어내지 못함을 보여주시면서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여 주셔야만 되는지를 율법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28절입니다. 너는 재판장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의 재판장은 하나님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율례를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재판장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재판하는 사람이기에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백성의 지도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법이란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법들은 다 사람들이 만들어냅니다. 독재자의 법이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한 법이든 사람들이 만들어냅니다. 그 법들의 목표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율법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법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한 백성이기에 주어진 이스라엘의 법과 규례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의 재판장이나 백성의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율례를 따라 재판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룩하지 못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사람이기에 재판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23:1-9절에 나오는 말씀들입니다.

 

23:1,2,3,6,7,8절이 다 재판에 관한 말씀들입니다. 거짓 증언을 하지 말고,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고, 다수에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고,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게 두둔하거나 정의를 굽게 하지 말고,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이 모든 말씀들을 지켜서 거룩하게 되라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너희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었으니 이런 법들을 지킴으로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으로 살라는 것은 성전에 나와서 종교적인 규례를 잘 지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전을 나서면서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 조정래씨의 허수아비 춤이라는 소설을 보았습니다. 소설이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이 시대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재벌회사가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하여 정치권과 법조계와 국정원과 공무원들과 언론을 장악하는지 아주 생생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인맥을 형성하고 그냥 뇌물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온갖 인맥을 동원하여 감동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재벌들이 온갖 불법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 되게 하는 것입니다. 풀어주면서 하는 말은 그동안 경제발전에 공헌한 바가 크며 잠시도 손을 놓을 수 없는 경제상황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소설을 쓴 이유가 정치 민주화만이 아니라 경제 민주화를 이루자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돌아가는 대한민국의 교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패사슬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그 중간에 예수 믿는 자들도 다 뇌물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교회에서 거룩함을 말합니다. 교회에 말하는 거룩함이란 세상의 일과 교회의 일을 이원화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거룩한 일이고 세상의 일은 속된 일로 여깁니다. 그러나 정작 거룩함이 나타나야 할 현장은 세상입니다. 23장의 내용들이 다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야할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온갖 비리로 가득한 이유는 거룩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분리된 것이 거룩함인데 오히려 세상에서 더욱 들어붙기 위한 예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사람인지 고린도전서 6:1-11절을 봅니다. “봉독” 고린도 교인끼리 이해관계로 다툼이 일어났는데 세상의 법정에 고소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재판관들을 불의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한다고 합니다. 성도가 천사까지 판단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물며 세상의 지극히 작은 일 하나도 판단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세상 법정에 소송을 한 것은 손해 보지 않으려고 한 것입니다.

 

교인끼리 송사가 있는데 교회에서 가볍게 여김을 받는 사람들 앞에서 세우느냐는 것입니다. 세상의 판사와 검사나 변호사란 교회에서 아주 가벼운 자들입니다. 그렇게 고발하느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의를 행하고 속인다고 책망을 합니다. 이 뿐 아니라 불의란 음행,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적, 탐욕, 술 취함, 모욕, 사기 같은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이 11절에 나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거룩함과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으로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이란 사람으로서는 이룰 수가 없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으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자들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죄인들이 거룩한 사람이 됩니까? 22:29-30절입니다. “봉독” 추수한 것의 짜낸 즙을 바치기를 더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짜낸 즙이란 포도나 올리브입니다. 그리고 처음 난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소와 양도 처음 난 것은 그렇게 하되 7일 동안 어미와 함께 있게 하고 팔일 째 바치라고 합니다. 처음 것을 구별하여 드리게 하는 것은 이미 유월절 규례에서 나왔습니다. 10번째 재앙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처음 난 수컷이 죽임 당할 때에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난 것은 다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게 한 것입니다.

 

처음 것을 드리게 하시는 것은 나머지도 다 주의 것이라는 말입니다. 맏아들의 희생으로 나머지도 거룩함을 얻는 방식이며 처음 곡식이 거룩한즉 나머지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그러므로 처음 것을 거룩하게 구별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어떻게 구별되었는지를 늘 기억하는 장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처음 것은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우선이지요! 하나님도 이웃도 우선이 아닙니다. 내 자신이 우선입니다. 이런 사람을 성경을 거룩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이나 우리나 간에 다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거룩하지 못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어떤 거룩함을 다 동원한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오직 맏아들의 희생으로만 거룩함을 얻는 것입니다.

 

22:31절을 봅니다.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들에서 짐승에게 찢긴 고기를 멀지 말고 그것을 개에게 던지라고 합니다. 왜 짐승에게 찢긴 고기를 먹지 말게 합니까? 그 이유는 레위기 17:10-16절에서 나옵니다. “봉독” 피를 먹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데 스스로 죽은 짐승이나 들짐승에 찢겨 죽은 짐승은 피를 흘리지 않았기에 고기에 피가 그대로 고여 있기에 먹지 못하게 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피는 생명입니다. 피가 죄를 속합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그 희생이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성령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가지고 오시면 그제야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알고 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로만 의롭다 함과 거룩함을 얻는지를 압니다. 이런 자들은 증거 할 것이 자기의 거룩한 행실을 증거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증거 할 뿐입니다.

 

히브리서 10:10절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후에 다 마치고 예배당 문을 닫고 가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현관의 이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18-31절입니다. “봉독” 세상에서 이런 자들을 택하신 이유는 아무 육체라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면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됨을 알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