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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7:22~23 제자들의 근심 2016. 9. 4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아주 짧은 단락입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난다는 말씀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완성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의 구속도 완성되는 길입니다. 이렇게 기쁜 복음의 소식이 제자들에게 근심이 됩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짧은 단락이지만 지난 주 본 말씀과 다음 주에 볼 말씀과 다 연결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성경의 중심입니다.

 

우선 오늘 본문을 지난주의 말씀과 연결하여 봅니다. 지난주의 말씀은 산 아래에서 제자들이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지 못하였을 때에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오래 참아야 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에 대하여 신명기의 말씀과 시편을 말씀을 통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어떠한지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들의 후손들에게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모습으로 친히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고 많은 표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믿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그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받았지만 그들이 얼마나 믿음이 없고 패역한지를 이미 보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선지자들을 돌로 치고 죽여 버린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이러한 자들의 후손들이기에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도 믿음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하시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별세를 의논하시는 것을 보고 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조차도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고난을 받고 죽으신 후에 제 삼일에 살아날 것에 대하여 근심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도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죽으심을 말리려고 든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가로 막고 나선 일이 사람의 일이며 곧 사탄의 일이 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죽으심 외에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 부으심이 아니면 믿음이 주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자기 백성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야 믿음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근심하고 염려가 나오는 것은 믿음이 없는 모습입니다. 먼저 마태복음에서 근심과 믿음이 작은 것에 대하여 찾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19~24절입니다.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이미 앞에서 자세히 살펴본 말씀이기에 오늘 본문의 제자들의 근심과 연결하여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보물을 땅에 쌓아두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보물이 자신을 지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마다 그 보물이 무엇이냐에 따라 땅의 보물을 생각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늘의 보물을 생각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늘의 보물이라고 하여 내가 이 땅에서 노력하여 하늘에 상급을 쌓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에 있다고 하신 것은 너의 마음에 무엇이 보물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 땅이 멸망할 때에 함께 사라질 것들이 보물인지 아니면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이 보물인지 점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미 타락한 이후의 인간들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중하게 여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염려합니다.

 

이어지는 25~34절입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염려와 근심이 생기는 것은 믿음이 작은 연고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풀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이들을 먹이고 입히시는데 왜 너희가 염려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없는 이방인들이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러한 말씀을 듣고 따라갔습니다. 염려와 근심을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들을 목격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먹고 12 광주리나 남았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서는 보리떡 일곱 개과 고기 두어 마리로 사천 명이 먹고 일곱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병자가 고침을 받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예수님만 계시면 정말 아무른 염려와 근심이 없다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시기만 하면 그들이 바라고 바랐던 메시아의 등극을 보게 되는 것이며 자신들도 높은 자리 차지하게 될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6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비로소 자신의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부활에 대하여는 그들이 마지막 날의 부활만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만 들린 것입니다. 그렇게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께서 고난과 죽으심을 말씀하시니 베드로가 말리고 나서다가 사탄아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십자가 없는 영광을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또다시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넘겨져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합니다. 제자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그들과 늘 함께 하실 것을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죽음을 이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사람들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없는지 보게 됩니다.

 

마태복음 13:22절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막혀 말씀이 결실을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일에 대한 염려가 없습니까? 내일의 염려가 있기에 재물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많이 쌓아둠으로 내일의 염려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노후를 위하여 재물을 많이 쌓아두고 이제 평안히 먹고 마시자고 할 때에 예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이 쌓아둔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준비한 것으로 염려를 없애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9:16~22절입니다.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이 청년은 또 다른 근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생을 위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이 청년을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합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라고 합니다. 하늘의 보화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합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이 청년의 근심은 영생 앞에서 재물을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능력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만약 이 청년이 재물을 다 버리고 따른다고 하였다면 예수님은 네가 영생을 얻으려고 하는 그 마음도 욕심이라고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스스로 찾아 나서는 길을 막으십니다.

 

이어지는 23~26절입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십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십니다. 이 부자란 세상의 물질적인 부자도 있지만 자기 의를 가지고 부자로 생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런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묻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사람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어떤 율법지킴이나 자신의 선행으로 구원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하시는 그 구원의 길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을 다시 봅니다.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예수님께서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고 하십니다. 이 길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 유일한 생명의 길에 대하여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매우 근심을 합니다. 이러한 제자들이 십자가 이후에 부활과 성령의 임함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의 소식이 근심의 소식이 아니라 기쁨의 소식이 됩니다. 이러한 내용이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1~6절입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예레미야 31장은 새 언약의 나타나는 장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시는데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4~7절입니다. “4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5 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나무들을 심되 심는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 6 에브라임 산 위에서 파수꾼이 외치는 날이 있을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 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여러 민족의 앞에 서서 야곱을 위하여 기뻐 외치라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포로에서 돌아오는 자들이 즐거워하며 춤추며 올 것이라고 합니다.

 

11~14절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바벨론 포로에서 기쁨으로 돌아오는 것을 구원의 즐거움으로 말합니다. 새 언약으로 구원이 일어나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직 이러한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이러한 예언의 말씀을 받았어도 그들이 마음과 눈이 가려져 있기에 메시아의 고난과 죽음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자신의 떡과 포도주를 나누면서 자신의 살과 피라고 하시면서 특히 잔을 주시면서 이 잔은 많은 사람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새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로 가는데 제자들은 근심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20:20절입니다. “19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에 제자들이 두려워 모여 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 손과 옆구리를 보여주시자 제자들이 기뻐합니다. 그런데 다시 예수님은 승천하십니다.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드디어 오순절 성령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2:44~47절입니다.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내일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자들이 성령이 임하자 자신들의 물건을 내 것 네 것 없이 서로 통용합니다.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줍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를 힘쓰며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음식을 먹고 교제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백성들이 칭송을 합니다. 무엇으로 보고 칭송합니까? 내일의 염려로 인하여 재물을 축적하며 살던 자들이 재물을 나누면서 기뻐하며 찬송하는 이런 모습이 나타나니 사람들이 칭송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함이란 이런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염려한 제자들이 이렇게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5장에서는 주의 이름으로 능욕을 당하며 매를 맞는 것도 기뻐합니다. 근심하며 두려워하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말리려 하였고 근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 앞에서는 제자들이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세상의 지혜로는 결코 알 수가 없는 내용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에게만 구원의 능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증거 되는 복음은 오늘날도 세상에서 보면 미련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참여된 자들은 기뻐합니다.

 

고린도후서 6:1~13절입니다. “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3 우리가 이 직분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4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5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6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좌우에 가지고 8 영광과 욕됨으로 그러했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러했느니라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기쁨이라고 하는 것들이 여기에 들어있습니까? 많이 견디는 것, 환난, 궁핍, 고난, 매 맞음, 갇힘, 난동, 수고로움, 자지 못함, 먹지 못함 이러한 것들은 다 피하고 싶은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에게 이런 일이 다 일어납니다. 그러함에도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역하였습니다. 그런데 평가가 갈립니다. 복음을 받아 들인지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와의 갈림이 일어납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사도들을 보면 욕됨, 악한 이름, 속이는 자, 무명한 자, 죽은 자, 징계를 받는 자, 근심하는 자, 가난한 자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 자신들과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겉으로 보기에 이러한 모습이지만 이들의 모습을 영광, 아름다운 이름, 참됨, 유명함, 살아 있는 자, 항상 기뻐하는 자,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는 자,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평가와 근심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7:8~10절입니다. “8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 9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책망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 편지를 보내고 나서 후회를 했습니다. 그 책망으로 인하여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를 했지만 지금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후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 편지가 잠시만 근심하게 하고 오히려 그 책망을 받음으로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만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근심은 무엇입니까? 세상에 대한 근심입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까? 세상에 대한 근심은 어떻게 하면 내가 나를 편안하게 하며 행복하게 살 것인지를 근심한다면 이것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성경의 말씀으로 책망을 받습니다. 내가 믿음으로 사는지 아닌지 책망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고 있음을 책망 받고 근심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근심은 회개하게 됩니다. 회개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살았음을 회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심을 믿지 못하기에 염려와 근심이 나옵니다. 그래서 내가 다른 것을 보태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믿음 없음을 알고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