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25~30 함께 된 자들 2018. 4. 8

 

25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6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27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 29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그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30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바울사도가 빌립보 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려고 하다가 에바브로디도를 먼저 보내는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지난주에 디모데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빌립보 교회를 진실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의 일을 구하는 자들이지만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 복음의 구체적은 내용은 지난주에 요한복음 6장을 통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자신의 죽음으로 이루어내신 일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 그리스도의 일을 증거 하는 것 또한 그리스도의 일이며 이 그리스도의 일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5~8절을 다시 봅니다. “봉독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들과 같이 되신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십자가에 죽기 까지 복종하신 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복음의 가장 놀라운 신비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심 말씀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셔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내어주심으로 자기에게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나타난 사람들이 바로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인하여 모여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아닌 다른 뜻으로 모인다면 그것은 자신의 취미생활일 뿐입니다. 제가 종종 말하는 자기 취향을 따라 모인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의 일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그 일들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일로 나타나는 자가 디모데였고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예수의 마음에 함께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도 함께 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함께 된 자들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는 일에 함께 된 자들입니다. 이것 외에 우리가 여기에 모일 아무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도 서로 이견이 나올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도 서로 다투는 일이 일어났으며 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을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자들이 가서 바로 잡아 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를 자기의 형제라고 하면서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며 너희의 사자라고 합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의 사역을 도우라고 보낸 사람입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를 빌립보 교회로 보내면서 어떤 사람인지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아주 먼 거리를 와서 돕다가 병이 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이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선교사를 보냈는데 그 선교사가 병이 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염려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어떤 사람인지 말합니다.

 

바울사도는 에바브로디도를 자신의 형제라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라는 말입니다. 말로만 형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으로 형제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런 뜻에서 바울은 자신의 형제라고 합니다. 또한 함께 수고한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함께 수고한 자라는 말은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함께 군사 된 자며 너희의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동역자라는 말과 함께 군사 된 자라는 표현을 다른 곳의 말씀으로 봅니다.

 

로마서 16:1~4절을 봅니다.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자매 뵈뵈를 추천한다고 합니다. 일꾼의 각주를 보면 집사입니다. 여자 집사 뵈뵈를 추천하는데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합니다.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복음을 위한 동역자라는 말입니다. 또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까지도 내어 놓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동역 자들은 다 복음에 참여된 자들입니다.

 

이어지는 5~16절을 보면 아배네도가 나옵니다.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라고 합니다. 바울이 문안하라고 하는 자들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된 자들이며 동역자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만 나열해 보겠습니다. 마리아,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암블리아, 우르바노, 스다구, 아벨레, 아리스도불로의 권속, 헤르디온, 나깃수의 가족 중 주 안에 있는 자들이라고 함으로 그 가족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아닌가봅니다. 드루배나와 드루보사, 버시, 루포와 그의 어머니, 아순그리도와 블레곤과 허메와 바드로바와 허마와 및 그들과 함께 있는 형제들, 빌롤로고와 율리아와 또 네레오와 그의 자매와 올름바와 그들과 함께 있는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17~20절입니다.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함께 동역하는 자들이 나오지만 그런 복음을 전하는 일에 방해꾼들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잘 분별 하라고 합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자기들의 배만 섬기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욕망을 이루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들이 바울에게 들리고 있기에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배후가 사탄이기에 그 사탄을 주께서 발아래 속히 복종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21~23절을 보면 다시 동역자 이름이 나옵니다. 그 이름이 지난주에 본 디모데이며 그 외의 사람들에게도 문안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이 구술하고 바울의 편지를 기록하는 더디오도 나옵니다. 그리고 온 교회를 돌보아 주는 가이오와 에라스도와 구아도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문안을 합니다. 이러한 이름들이 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에 동역 하고 있기에 이렇게 길게 살펴본 것입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다른 서신서에도 여러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러한 이름들 가운데 복음의 동역 자가 나오기도 하지만 복음에 반대하는 자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동역하는 일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라운 일인지 아십니까?

 

이어지는 25~27절입니다. “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26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27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러 이름의 동역 자를 언급한 것은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서입니다. 복음에 동역하는 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계획한 일이 십자가로 나타난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영원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뜻하신 바들을 다 이루어내신 자리가 십자가입니다.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의 영광스러운 메시아가 아니라 십자가로 다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선지자들과 사도들로 인하여 증거 된 것이 복음이며 이 복음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려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전파되고 알려지는 것은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라고 합니다. 계시란 하나님께서 보여주셔야 알게 되는 것이기에 신비한 것입니다. 똑 같은 복음을 들어도 믿는 자들이 있고 믿지 않고 핍박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도 신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은 그 복음으로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영광을 돌립니다.

 

저는 이런 말씀을 읽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감격입니다. 나 같은 죄인이 이런 말씀이 믿어지는 것이 신비이며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 자체가 감격입니다. 저는 감히 바울의 동역 자들과 비교하기에는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복음을 전한다고 동역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입니다. 저의 가장 중요한 일이 가정사가 아니라 복음 전하는 일로 인정하고 배려하여 줍니다. 그리고 말씀을 들어주는 여러분들과 여러 지역에서 저 같은 사람을 불러서 복음을 나누게 하시는 일에 수고하는 분들도 동역 자들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가장 조심스러운 부분이 그러면 너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복음에 동참하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를 반대하셔도 아무른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의 말을 복음이라고 교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일은 결코 나의 의도나 자질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오직 은혜라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동역 자에 대하여 고린도후서 8:16~24절 한 곳을 더 봅니다. “16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17 그가 권함을 받고 더욱 간절함으로 자원하여 너희에게 나아갔고 18 또 그와 함께 그 형제를 보내었으니 이 사람은 복음으로써 모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자요 19 이뿐 아니라 그는 동일한 주의 영광과 우리의 원을 나타내기 위하여 여러 교회의 택함을 받아 우리가 맡은 은혜의 일로 우리와 동행하는 자라 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22 또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한 형제를 보내었노니 우리는 그가 여러 가지 일에 간절한 것을 여러 번 확인하였거니와 이제 그가 너희를 크게 믿으므로 더욱 간절하니라 23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료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24 그러므로 너희는 여러 교회 앞에서 너희의 사랑과 너희에 대한 우리 자랑의 증거를 그들에게 보이라

 

디도와 이름도 없는 몇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복음으로 교회에 칭찬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지금 여러 교회로 보내면서 이들이 은혜의 일로 동행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 은혜의 일이란 예루살렘의 교회를 위하여 여러 교회가 연보한 것을 말합니다.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사람들이 아무도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고 주 앞에서만이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조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각 교회에서 복음으로 칭찬을 받는 자를 이런 일에 협력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직분들이 다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위한 일로서 중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직분을 맡은 자들을 교회의 사자들이며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감격스러운 칭호가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직분 자들만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이 다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에베소서 4:1~6절입니다.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1)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예수님을 믿고 성령이 임한 자는 한 몸입니다. 그래서 한 몸, 한 성령, 한 소망,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 한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7~12절입니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교회는 은사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아 내시고 그들에게 선물을 주셨습니다. 원래 사로잡혔던 자들이 풀려나왔다면 풀어주신 분께 감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와 사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썩어질 것에 대하여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이런 우리를 사로잡아 내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한 것은 모두가 은사를 받은 것입니다. 직분은 다르지만 은사는 같은 것이기에 한 몸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6~28절을 봅니다.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를 보냈는데 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빌립보교회가 근심하는 것을 알고 에바브로디도가 얼마가 근심한 것인지를 바울이 알려줍니다. 그런데 에바브로디도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그를 긍휼히 여기셨고 그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대한 근심이 있었는데 에바브로디도까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으니 근심위에 근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서 그가 나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하게 에바브로디도를 보냄으로 너희가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한다고 합니다.

 

29~30절입니다. 에바브로디도를 이렇게 빌립보교회에 말하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에서 파송을 하였지만 중간에 병이 들었다고 하니 어떤 사람들은 비난도 했을 것입니다. 복음을 위하여 갔는데 병이 들었으니 무언가 잘못한 것이 있지 않는가 하는 말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사도는 빌립보 교회에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면서 이런 편지를 보내는 것은 그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를 섬기는 일에 너희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했다고 합니다. 빌립보교회가 선교비와 사람까지 바울에게 보낸 것이 부족하다는 말이 아니라 너희가 직접 함께 하지 못하는 일들을 에바브로디도가 죽도록 충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바브로디도를 모든 기쁨으로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하게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니 고 허운석 선교사가 생각이 납니다. 아마존 밀림에 목숨을 걸고 선교하였습니다. 실제로 원주민들이 죽이려고 우물에 독을 넣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선교를 하여 많은 열매가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사역하는 중에 아들의 일로 인하여 근심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목숨 걸고 선교하는데 하나님께서 왜 아들하나 제대로 인도하여 주지 않느냐는 항의를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십자가를 발견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알고서는 죽기까지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런데 폐암 말기가 되자 큰 교회에서는 설교해 달라고 하지 않더랍니다. 그렇게 목숨을 걸고 선교를 했다면 건강하고 사역을 성공하고 자녀들도 잘 되고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자를 강사로 초청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초청하였습니다.

 

선교사님을 위하여 교회가 연보하고 한 두 사람이 상당한 금액을 연보했습니다. 그때에 치료비와 여러 가지 비용이 어려운 때였는데 우리교회가 사랑의 손길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약 6개월 지나서 소천 하였습니다. 허 선교사님이 우리교회에서 설교한 것을 듣고 찾아오신 분이 두 분이나 계십니다. 이런 설교를 하는 분을 초청한 교회가 어디냐고 해서 찾아온 것입니다. 목숨 걸고 선교하다가 폐암으로 돌아가신 분이나 이름도 빛도 없이 복음을 듣고 믿으며 복음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된 것인지 오늘 찾아본 말씀들이 그런 내용입니다.

 

빌립보서 4:3절입니다.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복음에 동역한 자들의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된 자들은 복음을 듣고 믿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함께 형제 된 자며 함께 수고하며 함께 군사 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며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에 동참이 된 것인지 함께 맛보고 함께 누리며 함께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